영화 <안티고네> 2020년
<안티고네>(1992), <안티고네>(2015)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가 쓴 희곡으로,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가 주인공이다. 안티고네의 자매를 매장하는 문제에 관한 안티고네와 테베의 참주 크레온 간의 갈등을 극으로 풀어냈다.
영화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 싶은 이민가정의 소녀 안티고네가 오빠를 탈옥시키려고 감옥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신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2009년 캐나다 몬트리올 공원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진압 사건에서 시작됐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이 경찰의 총에 이민자 한 명이 사망하고 그의 형제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뉴스에 나온 여동생의 인터뷰를 보고 영화로 제작하게 됐다.
[배경]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시조 카드모스에서 비롯되어 랍다쿠스와 라이우스, 그리고 오이디푸스로 이어진 테베 왕가 혈통의 마지막 후손이다. 시조 카드모스는 용의 이빨을 들판에 뿌려 거기서 나온 용사들과 함께 도시국가 테베를 창건했다. 오이디푸스의 몰락 후 테베는 그의 두 아들이 교대로 통치하기로 했으나, 먼저 통치권을 획득한 동생 에테오클레스는 임기 막바지에 양위를 거부하고 형인 폴리네이케스를 국외로 추방한다. 아르고스로 망명한 폴리네이케스는 그 도시의 공주와 결혼한 후 동맹군을 얻어 잃어버린 왕위를 되찾기 위해 테베를 침공하지만, 전투는 테베의 승리로 끝나고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전투 중에 서로를 죽이고 만다. 두 형제의 죽음으로 그들의 자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혈육이 되었고, 오랜 국난에 시달려온 테베의 통치권은 이제 두 자매의 외숙부이자 오이디푸스 왕의 통치시부터 재상으로 재임해온 크레온에게 넘어간다. (P53)
안티고네 이스메네, 사랑하는 이스메네. 핏줄과 자궁을 함께 나눈 내 혈육, 내 누이야. 우리 아버지께서 불러들인 그 모든 비참한 운명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 가운데 어느 하나 우리를 비켜간 것이 있었니? 끝없이 이어진 불행과 파국과 모욕과 수치, 어느 하나 너와 내가 겪지 않은 것이 있었니?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또 하나의 가혹한 타격이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지려 하고 있어. 왕위에 오른 외숙부 크레온님께서 온 도시에 칙령을 내렸어. 알고 있니? 아니면 아직 듣지 못한 거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끔찍한 저주를 받았는지.
이스메네 아니, 언니.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도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두 오빠가 골육상쟁 끝에 서로의 목숨을 빼앗고 같은 날 같은 시에 우리 두 자매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 외에는. 아르고스에서 온 적군이 밤 사이에 물러갔다는 것 외에는. 하지만 더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어. 슬픈 일이건 기쁜 일이건. (P56-57)
안티고네 죽은 두 오빠를 모두 묻어 줘야 해. 새 왕은 한 오빠에게는 명예를 허락했지만 다른 오빠에게는 불명예를 안겨주었어. 에테오클레스를 위해서는 망자에 합당한 예식에 온갖 영예로운 의식을 더해 장례를 치르게 했어. 그러나 폴리네이케스를 위한 왕의 칙령은 어떤 매장도 어떤 애도도 금한다는 것. 그 시신을 슬픔의 눈물로 씻지도 말고 땅에 묻지도 말라는 것. 죽음의 들판에 버려진 채로 굶주린 새떼의 먹이로 주라는 거야. 우리의 고매한 숙부 크레온님께서 그런 명을 내렸다는 거야. 모든 시민에게, 너와 나를 포함해서, 어떻게 우리에게까지 그런 명을 내릴 수 있지! 그래서 곧 이 광장에 와서 칙령을 직접 발표한다는구나. 만인 앞에 선포하여 어느 누구도 그 명을 가벼이 여기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야. 왕명을 조금이라도 어기는 자는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돌로 쳐 죽일 거라 공언한다지. 그러니 이제 우리가 고귀한 혈통의 후예인지 아닌지 결연히 증명해 보일 때가 왔어. (P58-59)
안티고네 강요하진 않아, 아니,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날 돕겠다고 한들 받아들이지 않겠어. 너는 네 선택을 한 거니까. 그러나 난 오빠의 시신을 찾아 묻어줄 거야. 이 경건한 범죄의 대가로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걸로 만족해, 죽은 오빠 곁에서 나도 함께 영원한 안식을 찾을 테니까. 내 사랑에 오빠도 사랑으로 답해줄 테니까. 인간이란 산 자들과 지내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을 망자들과 지내는 법, 난 그분들과 영원히 함께 할 거야. 하지만 이스메네, 너는 네가 선택한 대로 신들이 정한 성스러운 법을 저버려도 좋아. (P63)
송가 2 인간의 언어는 얼마나 유려하고 그 사유는 얼마나 빨리 날며 그 정신은 얼마나 신묘한가? 이 모든 재능으로 인간은 차가운 서릿발에 떨고 혹독한 비바람에 시달리는 대신 견고하고 찬란한 도시를 건설했으니,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하게 하는 인간의 지혜는 한이 없도다! 비록 죽음의 신만은 피할 길 없다 해도 온갖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로다!
답가 2 인간이 성취한 지혜와 업적은 실로 놀라우나 그로 인해 선에도 이르고 악에도 이르는 것이 또한 인간! 인간사회의 법도를 지키고 신들이 정한 의로운 길을 걸을 때 인간의 삶은 명예로우나, 마음의 중심을 잃고 죄와 손을 잡을 때 인간의 삶은 치욕을 면치 못하리니! 신들이시여, 내 마음이 그와 같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그렇게 불경한 자가 나와 한 지붕 아래 거하지 않게 해주소서! (P86-87)
합창대장 이 무슨 악령의 장난이란 말인가? 이는 우리 모두 잘 아는 안티고네가 아닌가? 하지만 어떻게 나더러 이 일을 믿으란 말인가? 오, 불행한 아비의 불행한 딸 안티고네여! 이 무슨 일이오? 정녕 당신이란 말이오? 왕의 칙령을 어길 만큼 그렇게 미친 자가? 이 도시의 통치권에 도전할 만큼 그렇게 무모한 자가?
파수병 여기 그 일을 행한 자가 있습니다요. 바로 이 여인입니다. 이번에는 시신을 매장하고 있는 현장에서 바로 붙잡았습지요. 그런데 크레온님께서는 어디 계신지요? (P90)
안티고네 그 칙령은 제우스신께서 선포하신 법이 아니니까요. 또한 망자의 영토를 다스리는 그 어떤 신들도 그런 법을 인간에게 내리지는 않으실 거니까요. 더욱이 저는 인간인 당신이 내리신 칙령이 하늘의 법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늘의 법은 인간의 문자로 쓰여 있지 않으며 그렇기에 오히려 불변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은 오늘이나 어제를 다스리지 않고 인간의 시간을 넘어선 영원을 다스립니다. 인간이 알 길 없는 태초에 탄생한 영원한 법이지요. 내가 인간이 두려워서 그런 신들의 법을 어기고 영원한 심판대 앞에 서겠습니까?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당신의 그 칙령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면 난 오히려 그것을 큰 기쁨으로 반길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 헤아릴 수조차 없는 비참한 불행을 겪어온 사람에게 죽음은 오히려 자비이지요. 그러니 이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은 내게는 작은 슬픔도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 어머니의 아들이 죽어 땅에 쓰러졌는데 그를 돌보지 않고 그를 땅에 묻어주지도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슬픔이 될 겁니다. 내 자신의 운명 따윈 아무 것도 아니지요. 그런 심정을 당신은 어리석음이라 생각한다면, 그렇지요, 바보가 날 어리석다 하는 거지요. (P95-96)
안티고네 두 오빠 모두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의 자식이었습니다.
크레온 반역자인 형제를 존중한다면 애국자인 형제를 모욕하는 격이다.
안티고네 테베를 위해 싸우다 죽은 오빠도 땅 속에 묻혀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크레온 암! 그렇게 생각하고말고, 반역으로 죽은 형제가 자신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말이다.
안티고네 그 죽은 형제는 다른 사람 아닌 자신의 혈육이었단 말입니다!
크레온 형제 하나는 테베를 공격하다 죽었고 다른 하나는 테베를 구하고 죽었다.
안티고네 그렇다 해도 죽음의 신은 같은 장례를 요구합니다.
크레온 선한 자는 악한 자와는 다른 명예를 요구하는 법이다.
안티고네 누가 압니까? 죽어서는 두 형제가 이미 화해를 했을지.
크레온 죽음이 적을 친구로 만들진 못한다!
안티고네 설령 두 오빠가 서로를 증오한다고 해도 저는 두 오빠를 똑같이 사랑합니다.
크레온 그렇다면 너도 따라 저승으로 가거라! 그곳에서나 네 사랑을 베풀어라! 내가 살아있는 한, 여자의 주장이 득세하진 못하리라. (P100-101)
티레시아스 저는 제게 내린 계시를 말씀드릴 뿐입니다. 오늘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저는 신들의 목소리를 듣는 제 기도의 자리, 천상의 소리를 지상에 전하는 새들이 날아드는 그 자리에 나아갔습니다. 그곳에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는 중에 무시무시한 외침소리가 들려왔지요. 새들이, 새들이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았지만 저는 그 새들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서로를 할퀴고 서로의 숨통마저 끊으려든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격렬하게 부딪히는 날개소리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지요. 저도 덜컥 겁이 나더군요. 그래서 황급히 제단에 불을 피오고 희생물을 올려놓았지만 제대로 타오르질 않았습니다. 고기에서 배어나온 기름이 불씨를 커트려 자욱한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희생물의 쓸개에서 터져 나온 담즙이 허공중에 높이 솟구치는가 하면 고깃살은 타들어가는 대신 뼈로부터 미끄러지듯 떨어져서 하얀 뼈들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그토록 기이하고 불길한 전조가 무엇을 뜻하는지 저는 저를 예언자의 길로 인도한 분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길을 인도하듯 저 또한 다른 사람에 의해 이 길로 인도를 받았지요. 그 전조가 뜻하는 것은 이제 큰 역병이 이 도시를 덮쳤다는 것이며 그 역병의 근원은 바로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이 도시의 모든 성소와 제단들이 폴리테이케스의 시신을 뜯어먹은 들개들과 새떼에 의해 오염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상의 신들은 우리의 기도소리에 귀를 닫고 아무리 귀한 희생물을 올려도 타지 않을 것이며 신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신성한 새들은 쉰 목소리로만 울게 될 것입니다. 그 새들이 인간의 피를 탐식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왕이시여. 살아 있는 어떤 인간도 과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명하고 신중한 자라면 악의 길에 빠졌을 때 자신의 길을 돌이켜 보고 과오를 바로잡을 줄도 알지요. 어리석은 자는 그렇게 돌아볼 줄 모르고 제 길만을 가는 완고한 자입니다. 망자들에게 예를 베푸십시오. 한 번 쓰러진 자를 다시 내리치는 일을 삼가십시오. 이미 죽은 자를 다시 죽인다면 그게 무슨 용맹이겠습니까?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지혜에서 비롯되고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충고야말로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지요. (P141-143)
크레온 나는 죽기를 기도할 뿐이오. 그것 외에 내가 바라는 것은 없소.
합창대장 그렇다면 그 기도를 멈추십시오. 기도하지 않아도 필멸의 인간에게 고난과 죽음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크레온 날 여기서 데리고 나가주시오. 눈이 멀어 아들을 죽이고 아내를 죽인 어리석고 허영심에 찬 이 사람을. 오, 내가 어디를 둘러본들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겠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운명이 내게 떨어진 지금.
크레온과 병사들 궁정으로 퇴장
합창대 (노래한다) 지혜야말로 행복의 근원이요 신에 대한 공경이야말로 행복의 조건이로다. 교만한 자의 기세등등한 언행은 그 교만만큼이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니, 인간이 지혜를 얻는 것은 어찌 늘 이리도 늦단 말인가. (P167-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