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하루프의 <밤에 우리 영혼은>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2017년

by 노용헌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노년기 남녀의 사랑을 명배우 제인 폰다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그려냈다. 노년의 사랑을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로는 <죽어도 좋아>, <장수상회>, <디어 마이 러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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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애디 무어는 루이스 워터스를 만나러 갔다. 오월,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바로 전의 저녁이었다.

두 사람은 시더 스트리트에서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살았다. 느릅나무와 팽나무들, 그리고 한 그루 단풍나무가 길가에 늘어서서 자라고 거기서부터 이층집들 앞까지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었다. 낮 동안 더웠으나 저녁이 되며 선선해졌다. 보도를 따라 나무그늘 아래를 걷던 그녀의 발길이 루이스의 집 쪽으로 접어들었다.

루이스가 문을 열고 나타나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들어가 얘기 좀 해도 되겠어요? (P7)


“가끔 나하고 자러 우리 집에 와줄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요.

뭐라고요? 무슨 뜻인지?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혼자 된 지도 너무 오래됐어요. 벌써 몇 년째예요. 난 외로워요. 당신도 그러지 않을까 싶고요. 그래서 밤에 나를 찾아와 함께 자줄 수 있을까 하는 거죠. 이야기도 하고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눈빛이었다.

아무 말이 없군요. 내가 말문을 막아버린 건가요? 그녀가 말했다.” (P11)


왜 날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많이 알지도 못하는데요.

내가 아무나 골랐을 거라 생각했어요? 누가 됐든 밤에 따뜻하게 해줄 사람을, 함께 이야기나 나눌 늙은이를 대충 찍은 줄 알았어요?

그렇게는 생각 안 했고요. 다만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당신을 선택해서 유감이에요?

아니에요. 그런 건 전혀 아니고, 그냥 호기심이죠. 궁금했을 따름이에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사람이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군요.

그런 사람이라고 난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줄곧 당신을 내가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짐작해왔어요. 당신은 날 어떻게 생각했어요? 생각을 하거나 했다면요. (P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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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당신 생각을 했어요. 그가 말했다.

어떻게?

아름다운 여자로. 속이 찬 사람으로. 개성 있는 인간으로.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죠?

당신이 사는 방식 때문이었죠. 칼이 죽은 뒤 살아온 모습 말이에요. 당신에게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에요. 내 처가 죽고 어땠는지 잘 아는 내 눈에는 당신이 나보다 잘해내고 있는 게 보였고, 그게 경탄스러웠어요.” (P29)

고마워요. 하지만 그 사람들로 인해 나는 상처받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함께하는 밤들을 즐길 거예요. 그것들이 지속되는 한.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말해요? 일전에 내가 그랬듯 말하네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기를 원해요. 그녀가 말했다. 이미 말했듯, 난 더 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요. 그건 잘 사는 길이 아니죠. 적어도 내겐 그래요. (P33)


“통화도 한 번 안 했어요?

안 했어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 같군요.

아니에요.

그렇게 들리는 걸요.

잘 대해주지 못했어요.

그건 옳은 말이에요.

그게 후회가 돼요.”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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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이라든지 행실이 나쁜 아주머니로는 생각 안 했었는데.

행실이 나쁜 게 아니야. 무지한 소리다.

그럼 대체 뭔데요?

자유로워지겠다는 일종의 결단이지. 그건 우리 나이에도 가능한 일이란다.

십대 소년처럼 구시네요.

십대 시절에도 이러지 못했다. 그럴 엄두조차 못 냈지. 하라는 일만 하며 자랐으니까.” (P62)


“그래서 말인데, 이럼 어떨까요. 이왕 소문도 그런 판에 대낮에 버젓이 도심으로 나가 홀트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메인 스트리트를 활보하면서 여유롭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언제 그러고 싶은데요?

이번 토요일에요. 카페에 사람이 가장 많을 정오 무렵 어때요.

좋아요. 준비하고 기다릴게요.

먼저 전화할게요.

밝고 화사한 옷을 입을까 봐요.

바로 그거에요. 루이스가 말했다. 난 빨간 셔츠 입을까요?” (P6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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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뭐에 대해서요?

여기 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여기서 밤을 보내는 게요.

견딜 만하게 됐어요. 이젠 정상으로 느껴져요.

정상, 그뿐이에요?

당신과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는 줄 알아요. 진실을 말해 봐요.

진실은, 이게 좋다는 것. 아주 좋다는 것. 이게 사라진다면 아쉬울 거라는 것. 당신은 어떤데요?

아주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요. 좀 신기해요.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P104)


모르겠어요. 일종의 위협처럼 느껴졌던 게 아닐까요. 시에 대한 나의 사랑을, 그것에 빠져 나 홀로 고립되어 지내는 시간을 질투했던 것도 같아요.

당신이 시를 쓰고 싶어 하는 걸 지지하지 않은 거군요.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홀리를 기르는 일 말고는,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함께 만나는 여자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과 의견들을 승인받은 거예요.

어쨌든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좋겠네요.

시기가 지난 것 같아요. 이제 당신이 있잖아요. 나는 우리 관계에 대해 퍽 열정적이거든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요? 뭘하고 싶었는지 얘기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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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 빗소리를 들었다.

우리 둘 다 인생이 제대로, 뜻대로 살아지지 않은 거네요. 그가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순간은, 그냥 좋네요.

이렇게 좋을 자격이 내게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요. 그가 말했다.

어머, 당신도 행복할 자격 있어요. 그렇게 안 믿어요?

지난 두어 달, 그리된 것 같아요. 이유는 뭔지 몰라도요.

이게 얼마나 지속될지 여전히 회의적인 거죠?

모든 것은 변하니까요.” (P111)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옛날만큼은 아니에요. 일종의 내세를 믿게 됐거든요. 우리 본래 자아로, 영적 자아로 돌아가는 거라고. 거기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냥 물리적 육체에 깃들어 살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런 게 안 믿어져요. 애디가 말했다.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죠. 맞으면 좋겠어요.

뭐 언젠가 알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그래요, 아직은 아니죠. 애디가 말했다. 나는 이 물리적 세계가 좋아요. 당신과 함께하는 이 물리적 삶이요. 대기와 전원, 뒤뜰과 뒷골목의 자갈들, 잔디, 선선한 밤, 그리고 어둠속에서 당신과 함께 누워 있는 것도요. (P14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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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육체 위를 한동안 떠돈다고들 하는데 다이앤의 영혼도 그랬나 싶어요. 홀리는 제 엄마가 방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고 나도 그랬던 것 같아요. 확실치는 않아요. 뭔가를 느꼈어요. 일종의 방사 같은 것을요. 하지만 아주 미세했어요. 어쩌면 무슨 숨결, 기미 같이요. 나도 몰라요. 어쨌든 적어도 이제 다이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곳, 더 높은 영역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어요. 그건 내가 믿는 것 같아요. 그러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내게서 원했던 걸 얻지 못했거든요. 삶이, 결혼이 어때야 한다는 관념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우리의 삶과 결혼은 거기서 멀었어요. 그런 점에서 나는 그녀를 실망시킨 셈이죠. 다른 남자였어야 했어요.

또 스스로에게 가혹하게 굴고 있네요. 애디가 말했다. 원하는 걸 다 얻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대요? 혹시 있대도 극소수일 거예요. 언제나 마치 눈먼 사람들처럼 서로와 부딪치고 해묵은 생각들과 꿈들과 엉뚱한 오해들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거예요. 물론 아직은 당신과 나는 그렇지 않아요. 당장은, 오늘은 아니에요. (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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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내 말 잘 듣게. 자네 생각이 그렇다니 유감이로군. 자네 아들이나 어머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추호도 없어. 하지만 자네 어머니가 그러라고 하기 전까지는 떨어지지 않겠네. 그리고 자네 어머니 돈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할 말이 남았다면 내일 하기로 하지.

루이스가 허리를 굽혀 애디에게 입을 맞추고 나갔다.

네가 수치스럽다. 애디가 말했다. 할 말이 없어. 이 모든 게 구역질이 나고 한없이 슬프구나.

저 사람을 만나지 마세요.

그날 밤 애디는 시트로 얼굴을 덮고 창 반대편으로 돌아누워 울었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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