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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9. 2024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여명>

영화 <콜레트>  2018년

콜레트(Colette)는 2018년 개봉한 영국, 미국의 전기 영화이다. 워시 웨스트모얼랜드가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았으며, 리처드 글랫저 역시 각본에 참여했다. 프랑스의 소설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생애를 다룬 작품이다. 2018 선댄스 영화제에서 전세계 최초 상영했다.

     

....씨.

당신은 나보고 당신 집에서, 그러니까 사랑하는 내 딸 곁에서 한 일주일 머물다 가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그 아이와 함께 살고 계시니 내가 그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그 아이를 보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그래서 그 아이를 보러 오라는 당신의 초대가 얼마나 감동적인지도 잘 아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말입니다. 왜냐고요?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서요. 그것은 친구가 내게 준 매우 귀한 식물인데,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곳의 기후 조건하에서는 사 년에 한 번 밖에 꽃이 피지 않는답니다. 그런데 나는 이제 많이 늙었어요. 내가 없는 사이 그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운다면, 이제 다시는 그것의 개화를 볼 수 없을 것만 같군요........

그러니 나의 진솔한 감사와 더불어 당신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나의 아쉬운 마음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시도니 콜레트, 출생명 랑두아’라고 서명된 이 편지는 어머니가 내 두 번째 남편에게 쓴 것이다. 그 이듬해 어머니는 칠십칠 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나 자신이 주위의 모든 것들보다 열등하다고 느낄 때, 보잘것없는 나 자신에 대해 위기감을 느낄 때, 근육은 팽팽함은 잃어버리고 욕망 또한 강렬함을 잃게 되었을 때, 고통조차 강도를 잃어 예리한 칼로 도려낸 듯한 아픔을 느끼지 못할 때, 나는 그러나 다시 일어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편지를 쓴 여인의 딸이다. 이 편지, 그리고 아직 내가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편지들을 쓴 여인의 딸이다. 이 편지는 단 열 줄로 그녀가 칠십육 세의 나이에도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음을, 그러나 선인장의 개화가, 열대의 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모든 것을 중단시켰음을, 그것이 사랑하는 딸을 향한 마음조차 무력하게 만들었음을 가르쳐주었다. 수치스럽고 인색하고 옹색한 작은 마을에 살면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들, 부랑자들, 그리고 임신한 하녀들에게 자기 집 대문을 열어주던 여인, 나는 그런 여인의 딸이다. 수십 번이나 다른 사람에게 줄 돈이 없어 절망하던 여인, 극빈자의 아궁이 곁에서 힘없는 빈 손 위로 배내옷도 없이 벌거벗은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알리기 위해 눈보라 속을 뛰어다니며 부자들의 대문을 두드리던 여인, 나는 그런 여인의 딸이다. 꽃이 필 거라는 확신 앞에서 주름을 활짝 펴고 떨리는 마음으로 선인장 잎 사이를 바라보던 여인, 일흔다섯 해 동안 지치지도 않고 꽃을 피워왔던 여인, 내가 바로 그런 여인의 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점점 더 그녀와 닮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너무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돌아온다면 그녀는 과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녀 자신이 예전에 그랬듯이, 모두 잠든 새벽에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홀로 망을 보며 서 있곤 하는 나를 갑자기 찾아온다면 몰라도 말이다.            (P9-11)     

   

여자들은 행복한 사랑을 해본 횟수만큼 많은 고향을 가지며, 사랑의 고통이 치유되는 하늘 아래서 매번 새로 태어난다.             (P19)     

  

우리의 삶에서 가장 진부한 것 중 하나인 사랑, 그 사랑이 내게서 멀어져간다. 모성애는 또하나의 진부함이다. 그 둘로부터 해방되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즐겁고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의 전 남편중 하나인 그 남자의 충고는 아주 적절했다. “그런데 당신은 사랑이나 불륜, 약간 근친상간적인 애정관계, 결별 같은 것들을 다루지 않는 책을 쓸 수는 없소? 인생에서 그것들 말고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요?” 그가 나를 떠나 다른 연인과의 약속장소로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 그는 멋있고 매력적이었으니까 — 아마도 그는 소설 속에서건 소설 밖에서건 무엇이 사랑의 자리를 대신 할 자격이 있는지를 내게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떠났고, 지금 이 순간 어두운 책상 위에서는 옛날에 쓰던 그 파란 종이가 마치 형광등 불빛처럼 내 손을 이끈다. 그 파란 종이 위에 나는 또다시 사랑에 바치는 이야기를, 사랑의 회한에 대한, 사랑에 눈 먼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는 구제불능인 모양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르네 네레가 되기도 했고, 마치 미리 예감한 듯 레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제 나에게는 법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친숙한 하나의 이름, 본래의 내 이름밖에 없다. 내 이름에 이르기 위해, 내 이름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삼십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가? 결국 별로 비싼 값을 치른 건 아니라고 믿게 되리라. 유일하게 한 남자 안에 머문 채, 자식이 있건 없건 노처녀 같은 순진함으로 땅 속에 묻힐 때까지 그 남자만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런 여자, 당신은 내가 그런 운명의 여자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직도 과거의 위험을 회상하면서 몸서리칠 수 있다면, 햇빛과 물에 그을린, 통통한 거울 속 나의 분신은 그런 운명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 것이다.           (P25-26)      

새벽 세시는 들판에서 새벽을 맛보는 사람들을, 새벽이 오는 푸른 창 밑에서 몰래 만남을 약속하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만든다. 텅 빈 투명한 하늘, 벌써 찾아온 짐승들의 졸음, 꽃잎을 다시 움츠리게 하는 냉랭한 긴장감, 이런 것들은 열정과 타락을 방해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관대해지지 않고서도, 과거에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죽이지는 못했다고 선언할 수 있다. 고통을 겪는 것..... 그렇다. 나는 고통을 감내할 줄 알았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나는 이제 그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어쩌면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위엄이 결여된 열중의 한 방식일지도. 한 남자로 인해 여자가 되었을 때, 한 여자로 인해 남자가 되었을 때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는 무척이나 싫어하는, 그러나 이제 곧 나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노쇠나 질병보다 더 존귀하지도 고차원에 속하지도 않는다. 나는 미리 코를 막는다...  사랑에 애끓는 이들, 질투로 괴로워하는 이들.... 그들에게서는 분명 같은 냄새가 날 것이다.              (P27-28)     

어머니는 점점 더 불안해하면서 정결하게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였다. 그녀는 본래 일찍 일어났지만 이제 더 일찍, 그리고 점점 더 일찍 일어났다. 그녀는 울타리가 쳐진, 포도넝쿨과 비스듬한 지붕이 있는, 인기척 없는 작은 땅으로 이루어진 그녀만의 세상을 원했다. 그녀는 제비와 고양이와 벌 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은빛으로 빛나는 레이스처럼 엉킨 바퀴모양의 거미줄 위에 버티고 서 있는 커다란 거미만이 존재하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밀림을 원했다. 매일 아침 차가운 이슬이 티티새의 부리로부터 불규칙하게 물방울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시간이 되면, 이웃집 덧문이 벽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그녀가 다시금 빠져들고 있던 탐험가로서의 몽상을 방해하곤 했다. 그녀는 여섯 시에, 나중에는 다섯 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말년에 이르렀을 땐 캄캄한 한겨울밤 삼종기도 종소리가 울리기도 훨씬 전에 붉은 작은 램프에는 불이 들어왔다. 아직도 캄캄한 그 시간, 어머니는 노래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일어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면 어머니는 노래를 멈추었다. 종달새가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을 향하여 올라가듯 어머니는 끊임없이 시간의 사닥다리를 올라갔다. 시작이 시작을 소유하려고 애를 쓰면서.... 나는 취기와도 같은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녀는 수평선의 붉은 빛을, 붉은빛이 돌기 전의 창백한 유황빛을 탐색하였다. 그녀는 맨 처음 나온 벌이 촉촉한 날개로 기지개 켜기를 바랐다. 해돋이가 몰고 온 여름바람은 아카시아향과 나무 타는 연기의 신선한 맛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이웃집 마구간에서 나는 말들의 울음소리와 땅을 긁는 소리에 누구보다도 먼저 화답했다. 어느 늦가을 아침, 그녀는 우물가의 양동이 위에 살짝 앉은 첫 얼음을 손톱으로 깼다. 오직 그녀만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던 그 얼음판을......                   (P34-35)     

저녁나절의 공기는 서늘하여 오한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그 오한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차가운 공기는 드러낸 맨살 위에 새 옷을 걸친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밤이 깊어질수록 너그러운 마음을 품게 한다. 만일 나의 관용적인 태도를 신뢰한다면, 이 순간은 아마도 내가 위대해질 수 있는, 용감해질 수 있는, 무엇이든 감행하며 심지어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리라.... 하지만 매번 나는 그 순간을 놓친다. 위대해진다? 누구를 위해서? 감행한다.... 더 이상 무엇을 감행한단 말인가?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다는 것, 그것은 최악의 교만이었음을 사람들은 내게 충분히 알려주었지.... 땅바닥에 누우니 기분이 좋구나.... 그러나 내 이마에 그늘을 드리울 만큼 큰 식물들, 내 손길을 요구하는 동물들의 발 동작들, 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밭고랑들, 답장을 기다리는 정겨운 편지들, 어두운 밤을 비추는 붉은 램프와 나의 글씨로 채워야 할 윤기 나는 종이의 공책, 이 모든 것들에 붙들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매일 저녁 그렇듯이... 벌써 새벽이 가까웠구나! 요즈음 밤은 은밀한 애인처럼 갑작스레 왔다가 거의 머물지 않은 채 떠나가버린다. 밤 열시다. 네 시간만 지나면 이제 밤은 끝이리라. 무시무시하게 커다랗고 둥근달이 하늘을 지배할 것이다. 그 거대한 둥근 달이 내겐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P66-67)     

새벽이다. 오늘 새벽에는 꽃잎이 나부끼듯 비가 흩뿌리고, 하늘은 정겨운 구름들로 가득하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새벽이다. 손을 짚고 일으키면, 빛에 밀려나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부터 시커먼 바다와 주사위 모양의 집이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 보인다. 바다 위로는 벌써 제비들이 날아다닌다. 아직은 명확하게 무슨 색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색채로만 드러나는 주사위 모양의 집, 그곳에는 외로운 청년 하나가 사소한 비밀을 간직하고 잠들어 있다. ‘솔리테르(Solitaire)’라고 쓰는, ‘외로운’이라는 단어의 철자는 예쁘게 생겼다. 머리글자인 ‘S’는 마치 누군가를 보호하는 뱀을 닮았고, 다이아몬드가 발산하는 것 같은 강렬한 광채를 띠고 있다. 비알의 강렬한 광채.... 불쌍한 사람.... 나는 왜 ‘불쌍한 엘렌 클레망...’ 이라고는 외치지 못하는 걸까? 그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싶다.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아주 교양 있는 친구들의 집에 머문 적이 있었다. 스스로 프랑스를 떠나 망명중이었던 그들은 모로코의 넓은 땅을 부지런히 관리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파리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 달려들어 흥미롭게 읽어대는 기이한 습관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이 파리를 못 잊듯이, 남자인 당신은 내게 조국과도 같은 그런 존재인가? 존재의 근원인 남자여, 당신은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인가? 그렇다 해도 안 될 건 없다. 그러나 나의 걱정거리인 한여름의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은, 전등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와 함께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 굵은 진주목걸이도 끊어뜨릴 듯 도도한 티티새의 노래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온다. 아직은 밤이라 소나무 향기가 은은히 풍겨오지만, 이제 곧 해가 뜨면 그 향기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아직 잠이 덜 깬 바다로 나가서 해초를 뜯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어린 귤나무를 보호하려면 해초로 밑동을 싸주어야 하니까!.... 검푸른색 바닷물 속을 맨다리로 걷다보면, 발가락에 칠한 매니큐어는 어느새 벗겨져버린다.         (P83-84)     


나는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은 다 싫어한다. 책을 쓰는 일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제멋대로인 남자를 길들이는 일도, 헤어진 속옷을 기우는 일도, 플럼 케이크에 들어갈 건포도를 고르는 일도 모두 다 인내심을 요구한다. 나는 훌륭한 요리사도 좋은 아내도 될 수 없었을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매듭을 푸는 대신 줄을 끊어버린다.             (P109)    

나는 그의 말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새벽의 푸른빛이 그의 이마와 편편한 뺨을 은은히 비추었다. 서서히 지나가는 푸른빛 위로 오렌지색 램프의 붉은 불빛이 겹쳐졌다. 울타리 안의 새 한 마리가 잠에서 깨어 길게 울음소리를 냈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소리여서, 마치 그 새가 나를 잠에서 깨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는 비알은 하얀 옷을 입었지만 여전히 밤에 속하는 듯 시커메 보였다. 날이 샘과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나’가 내 안에서 슬그머니 잠을 깨어 엉큼하게 다시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좀더 잘 살펴보기 위해 그것을 한껏 이용했다. 몸과 몸의 만남에 대해 열정적이고, 몸이 말하는 것을 사랑의 약속으로 해석하는 데 선수인 ‘또 하나의 나’.... 매일매일 해수욕을 하면서 그의 벗은 몸을 보아왔기에 나는 그의 몸 윤곽들에 친숙해졌다. 이집트인 같은 어깨, 원통형의 단단한 목, 그리고 무엇보다도 온몸에 흐르는 윤기와 헝클어진 듯하고 신비로운 분위기.... 그런 몸을 가진 그는 쾌락을 기준으로 한 계급사회, 다시 말해서 동물적인 계급사회에서 우월한 계급에 속할 만하다....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면서, 나는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총동원하여 금지된 구경거리가 부여한 흥분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듯이 “기껏해야 지푸라기가 탈 뿐이니까....”          (P131-132)     

그녀의 감식력, 감춰진 보물을 볼 수 있는 능력.... 지팡이 하나로 지하의 수맥을 찾을 줄 알았던 그녀는 숨어서 빛을 발하는 것을 향해, 햇빛이 없는 곳에서 말라가는 물을 향해, 잠들어 있는 광맥을 향해, 그 속에서는 아무것도 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땅 속 깊은 곳을 향해 곧바로 가곤 했다. 그녀는 들었던 것이다. 물의 흐느낌 소리를, 땅 속에서 울리는 긴 울음소리를, 한숨 소리를....

그녀라면 비알에게 불쑥 “비알, 날 좋아해?”라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말은 모든 것을 퇴색시키니까.... 그러고 나면 무엇이 남나? 회한? 후외? 그저 평범한 청년이라고?... 사랑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다. 어머니의 그 주인공에게 “모직물 상인이여, 나를 사랑하나요?”라고 묻겠는가? 그렇게 서둘러서 모든 것을 밀고 나가야 하는가? 내가 어렸을 적 일곱시경에, 햇빛이 아직은 낮게 떠 있고 종달새는 여전히 지붕 위에서 줄 지어 있으며 호두나무 밑에 서늘한 그늘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에 경탄하면서 일어날라치면 어머니의 외침소리가 들리곤 했다. “일곱시! 세상에, 벌써 일곱시라니! 늦었다. 늦었어!” 결국 나는 절대로 어머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것일까? 자유로이 높게 날고자 했던 어머니는, 한 사람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에 대해 “너무 경박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내 몫이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이해할 뿐이다. 다급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은 집안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옛날 버릇없는 아이들이었을 시절에 우리가 ‘푸른 냄비 숭배’라 부르던 가사 일에 대한 집착과 맹종을 넘어서야 할 바로 그 시점에 이르렀나보다. 어머니는 — 그리고 나도 — 내 손을 거쳐간 모든 것을 내가 바라보고 만지는 것만으론 만족하지 않으리라. 때때로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고, 이 땅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내게 양보하고 떠났지만 겉으로만 죽음 속에 묻혀 있을 뿐인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한 또는 슬픔이 마음으로부터 끓어오르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마치 쾌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용수철 달린 나이프의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얇은 칼날을 향해 내뻗던 이태리 남자의 하얀 손이. 그 옛날 아버지의 질투는 얼마나 날 불편하기 했던가.... 나는 절대로 멈추지 않았던 그 발자취를 조용히 따라간다. 정원에서 지하창고로, 지하창고에서 우물로, 우물에서 쿠션과 펼쳐져 있는 책들과 신문 잡지들로 어지러운 소파로, 내가 지나간 이 길을 위해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최초의 햇빛이 비친 그 길 위에서. 나는 모직물 상인에게 — 아니 비알에게, 아무튼 두 사람 모두 완벽한 연인의 전형이니까 — 왜 아무런 질문도 해서는 안 되는지를, 주위의 모든 것들을 추방하고 비난하고 금지해버리는 그 사랑이라는 것의 진정한 이름이 왜 ‘경박함’인지를 배우고 싶다.            (P162-163)     

새벽 동이 터오고, 바람은 잦아들었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새로운 향기가 느껴진다. 아니면 내게만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일까? 나만 이 세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고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은 가능하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손, 열심히 써내려가다 멈추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며 또다시 써내려가는 이 손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새로운 흥분으로 인해 차갑기만 하다. 인색했던 사랑은 마지막으로 움푹한 내 손바닥을 아주 미미하고 작은 보물들로 채워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 울긋불긋하지만 원자만큼이나 아주 작은 것, 풍요롭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것, 내 손바닥에 담긴 이것들을 나는 마당에 내려놓으련다. 농부들이 수확한 곡물들을 타작마당에 내려놓을 때처럼 의기양양하게....

새벽이 온다. 그 어떤 악마도 새벽이 가까이 오는 것을, 새벽의 창백함을, 새벽의 푸른빛의 미끄러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중히 새벽을 품고 오는 반투명한 악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숨이 막힐 듯, 안개가 펼쳐놓은 서글픈 푸른빛은 자욱한 안개 속으로 스며든다. 별로 졸리진 않다. 몇 주 전부터 낮잠만으로도 충분했다. 자고 싶은 욕구가 다시 나를 사로잡는다면, 아주 달고 깊게 잠을 잘 것이다. 얼마 전부터 리듬이 끊겨버린 내 삶의 윤활유가 다시 발견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 또 기다림.... 기다림이란 우아한 예절과 사양할 줄 아는 최고의 멋을 가르치는 그런 좋은 학교에서만 배우는 것이다.             (P174-175)   

  

창백한 푸른빛이 내 방으로 들어오고, 아주 연한 붉은빛이 그 푸른빛을 어지럽힌다. 새벽이다. 새벽빛은 밤으로부터 빠져나와 긴장한 듯 찬란하게 흐른다. 내일 아침 이 시간에 나는 첫 번째 포도 수확을 위해 포도송이를 따고 있을 것이다. 내일 모레 이 시간이면, 이 시간보다 일찍. 나는..... 아니 그렇게 앞서가지 말자. 그렇게 서두르지 말자!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순간의 목마름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를! 창에서 뛰어내린, 아직 정체불명의 이 새벽이라는 친구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변화하는 형태를 완성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그것은 땅에 닿은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내가 그 과정에 참여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그것은 숲이 되었고, 물보라가 되었고, 별똥별이 되었고, 무한히 펼쳐지는 책이, 포도송이가, 배가, 오아시스가 되었다......                   (P175-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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