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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8. 2024

히라노 게이치로의 <한 남자>

영화 <한 남자>  2023년

2018년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2022년 일본 영화. 이시카와 케이 연출, 츠마부키 사토시, 안도 사쿠라, 쿠보타 마사타카 주연이다. 2023년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초청작, 일본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작으로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엄청난 불행이라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기 쉽다. 행복한 사람은 이를테면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불행을 경험했던 사람은 진실한 소망으로서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할 만큼 엄청난 불행은 아무래도 두 번 세 번 끈질기게 같은 사람을 쫓아다니는 들개 같은 데가 있다. 사람들이 액막이굿을 하거나 개명을 하는 것도 그런 식으로 잇따라 불행이 덮쳐들 때다.          (P19)


즉 리에의 인생은 누가 생각하더라도 뭔가 지금과는 다른 것이 되었어야 했다. 동창에서부터 이웃 어른에 이르기까지 단 한 사람도 그녀의 행복을 의심한 자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어린 아들을 잃은 데다 이혼까지 하고 고향에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엾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보람 없음에 무어라 말할 수 없이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그런 곳이었나, 하고 불안해졌던 것이다. 거기에 또다시, 재혼한 남편마저 겨우 3년 9개월 만에 앞세우고 말았다. 그런 리에의 남편이라는 의미에서도 다니구치 다이스케를 사후에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P21-22)   

       

‘사랑에 과거란 무엇일까....’

기도는 리에의 사망한 남편에 대해 생각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자문해보았다.

‘현재가 과거의 결과라는 건 사실일 것이다. 즉 현재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준 과거 덕분이다. 유전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른 환경에서 살았다면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해 타인이 얘기하는 것은 그 과거의 모든 것도 아니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말로 설명된 과거는 과거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실제 과거와 다르다면 그 사랑은 뭔가 잘못된 것이 될까?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모든 것이 쓸모없는 일이 되는가? 그게 아니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것인가.’              (P59)     


기도는 재일 3세지만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딱히 ‘민족의식’에 관한 얘기를 한 적도 없고, 코리아타운이 아닌 가나자와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李)’라는 성을 쓰던 시절부터 차별이라는 건 거의 경험한 적이 없었다. ‘기도(城戶)’라는 일본 성을 쓰게 된 것은 그가 중학교에 입학한 때였지만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래도 뭔가 차별 같은 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본가는 한국요리를 전문으로 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이자카야를 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무렵에는 교사들이 가게에 자주 찾아와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다른 학년의 교사들에게도 잘 알려진 학생이었다. 

기도는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귀화했다. 한글도 못 읽고 한국에서 아버지 쪽 친척들이 놀러 와도 그저 외국인처럼 느껴질 뿐인 상태여서 부모님은 언젠가는, 이라고 별러온 모양이지만 기도는 사실 어느 쪽이든 전혀 상관없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수학여행으로 호주에 가게 됐을 때, 여권이 신경 쓰이면 귀화하는 게 어떻겠느냐, 라고 아버지가 권했기 때문이었다. 기도는 그 권고를 따랐지만 그때 아버지가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너의 ‘실감’이 없으니까 만의 하나 여행지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역시 보호해주는 건 일본 정부 쪽이다, 라고 했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너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현재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까, 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딱 한 번 말했을 뿐이고 기도도 되묻지 않았지만, ‘실감’이 아니라 ‘실체’라는 말일 것이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기도는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국민으로서의 ‘실체’가 그쪽에 없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벌써 20여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실감’이라는 이상한 단어는 그의 머릿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일종의 의인법으로 한국이라는 국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실감’을 갖고 있지 않다, 라는 기묘한 상상이었지만 거꾸로 그 자신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도 애초에 그가 느낀 것과 똑같이 ‘실감’이라는 뜻으로 말했던 것일까.

아버지가 국적에 대해 그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것은 그때를 포함해 딱 세 번뿐이었다. 

두 번째는 고교 시절에 진로를 망설였을 때였다. 아버지는 취직 차별이 있을 테니까 뭐든 국가 자격증을 따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기도는 이미 귀화도 했고, 무엇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어이없는 농담인가 하고 당황했지만, 아버지는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는 결국 문과계 학생이 흔히 그러듯이 매우 애매한 기준에 따라 법학부로 진학했는데, 대학 재학 중에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데는 아버지의 그런 조언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또 한 번 아버지가 아들이 출신에 신경을 쓴 것은 결혼 때였다.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외할머니가 꼭 한복 차림으로 식장에 참서하기를 원하니 아예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게 어떻겠냐고 어머니와 함께 제안했던 것이다.

기도는 어리둥절해서 그렇게까지 신경 쓸 거 없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신부 쪽 부모님이 그런 점을 사위를 위해서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고민한 끝에 신혼여행을 겸해 친척들끼리만 하와이에 가서 식을 올리고 귀국한 뒤에 레스토랑에서 작은 피로연을 열었다. 상견례 때도 결혼식 때도 기도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비굴할 정도로 장인 장모와의 대면에 긴장하는 것을 좀 창피하다고 할까 딱하다고 할까, 그런 복잡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P77-78)  

   

바로 얼마 전까지 기도의 국적에 대한 의식은 그런 정도였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심한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실은 별다른 차별을 겪은 기억이 없었다. 대학 입학으로 상경한 뒤에 심각한 차별을 경험했다는, 같은 재일 3세의 얘기가 언론을 통해 들려올 때면 그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 괜스레 주눅이 들기까지 했다.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 국내에서 일어난 반발이나 역사수정주의의 대두와 같은 정치 상황에 관해서도 둔감했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가 남들이 자신을 ‘조선인’의 범위로 바라보는 것의 의미를 불쾌한 기분으로 감지한 것은 동일본 대지진 후에 오래전 이곳 요코하마에서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조선인 학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였다.

나아가 쐐기를 박듯이 작년 여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에 상륙하면서 일본 국내의 내셔널리즘이 끓어오르고 극우의 배외주의 데모까지 보도되자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 안에 가고 싶지 않은 장소,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누구라도 — 일본의 어떤 국민이라도 — 경험하는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 뒤에 어떤 친절한 마음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 소식이 없던 대학 친구가 인터넷상에 기도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는 연락을 해주었다. 초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과 함께 ‘재일도 변호사로 인정해주는구나!’라고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링크를 타고 가보니 기도 자신도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한, 독신 시절에 담당했던 강도상해 사건의 용의자가 우연히 같은 배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스럽게 끄집어내서 미주알고주알 없는 사실까지 싸질러놓은 글이었다. 

기도는 당사자인 재일조차 알지 못하는 옛날 옛적의 그로테스크한 차별 표현을 미친놈처럼 왝왝거리는 그 글을 보면서 이건 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인간이길래, 라고 상처를 입었다기보다 그저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어린 시절의 사진과 함께 실렸고 간첩이라느니 공작원이라느니 매도되는 것을 목도하자 역시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기혼’이고 ‘아이가 한 명 있다’는 정보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는 마우스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릴 만큼 화가 났지만, 동시에 몸속에서부터 뭔가 기운이 빠지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점점 더 설 땅을 잃어버리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 빈틈에 차갑고 더러운 불쾌감이 스멀스멀 스며들어서 더 이상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기분이라는 것을 그렇게 액상의 뭔가로 감지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아직까지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얘기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말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평소에 한류 드라마에 빠져 있던 장모도 요즘들어 ‘헤이스트 스피치’ 보도에 내심 걱정하는 기색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때까지 어쩌다 맞닥뜨려도 뭔가 실수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던 주위 사람들의 뜻밖의 편견이나 차별 감정에 대해 요즘 들어 부쩍 과민해져버린 스스로에게 솔직히 지쳐 있었다.

북한에 대해서는 기도도 당연히 그 독재 체제를 비판하고 있고, 납치 문제는 언어도단이며 피해자와 그 가족을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그 문제가 재일 사회에 어떤 충격을 몰고 왔는지, 그리고 바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떤 깊은 상처를 입혔는지도 일단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 역시 조금 동떨어진 자리에서의 인식이었다. 일본 정부의 대책 없음에도 분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족성 같은 얘기가 나오면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 독재 체제 아래 어쩌면 자신과 같은 세대의 혈육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그를 항상 일종의 운명론적인 사색에로 빠져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남북통일을 바라는가, 라고 묻는다면 설명은 좀 부족하더라도 온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긴 그게 언제가 될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이건 언젠가 전후 보상도 해주고 일본도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P80-81)    

 

기도도 말없이 넘어가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침묵이 지나치게 길고 무거워졌기 때문에 대화가 묘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자신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80년대에는 그런 납치 사건도 꽤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번 일로 나도 좀 알아봤는데 오사카의 중화요리점 요리사였던 독신 남성이 일을 소개해준다는 꾐에 넘어가 미야자키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적이 있었어요. 그의 과거와 경력 등을 완벽하게 습득한 북한 간첩이 일본에 건너와 그 요리사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운전면허와 보험증 등을 취득하고 몇 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에 갔던 길에 체포되었죠.”

기도는 그렇게 타국의 간첩이 호적을 훔쳐서 현지인 행세를 한다는 뜻의 ‘업혀 가기’라는 경찰 용어를 이번 건을 조사하면서 처음 알았다.

“거봐! 그 ‘X’라는 사람이 사망한 것도 미야자키라고 했잖아?”

다카기는 자신의 생각이 뜻밖에도 적중했다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단골손님 두 명도 티 나지 않게 이쪽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어서 기도는 여기서는 더 이상 의뢰인의 프라이버시에 저촉될 만한 얘기는 계속할 수 없겠다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예, 그렇습니다. 다만 시대가 전혀 다르고, 우연히 같은 지역이었던 것뿐이에요.”

“하지만 지금도 북한 공작원들이 우리 주위에 우글우글할 걸?”

“글쎄요, 어떤 나라에든 정보국 사람들이 첩보 활동을 펼치고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 주위에 우글우글’할 정도는 아니죠.”

기도는 그만 지겨워져서 쓴웃음을 지으며 뺨에 힘을 줬다.

“북한 얘기예요? 아니면 한국 쪽?”

“아니, 그야.... 둘 다 아닌가?”

“그건 전혀 아니죠. 한국에서는 물론 역사교육으로 예전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해 가르치지만, ‘반일 교육’을 하는 건 아니에요. 애초에 현대사 쪽은 일본 학교와 비슷해서 시간적으로 별로 많이 가르칠 수도 없는 모양이고요.”

“근데 왜 그렇게 반일적이야?”

“누구 그런 지인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텔레비전만 봐도 그렇잖아요.”

“뭐, 서울에 여행이라도 가셔서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친해져 보는 걸 추천합니다.”

기도는 대화를 더 이상 험악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마지막은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하고, 미스즈에게 보드카 김렛을 한 잔 더 주문했다. 다카기도 기도의 맹렬한 말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P82-83)     


인생을 타인과 바꿔치기할 수 있다....... 그런 건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남편은 실제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죽음은? 죽음만은 어느 누구와도 바꿔치기할 수 없다. 

그녀가 그것을 몸부림치며 깨달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료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였다.          (P97)

리에는 결코 료의 죽음을 대신해줄 수 없었다. 병든 자식에 대한 그야말로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몸서리칠 만큼 강하게, 자신이 대신 죽어줄 수 있기를 빌었다. 그녀는 누구에게인지도 모른 채 오로지 그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료는 결국 자신의 죽음을 자기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 리에에게는 리에가 죽어야 할 죽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가 죽었지?’라고 리에는 마음속에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호적상으로는 ‘다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사람이 죽은 것이었다. 하지만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죽음은 오로지 그 본인밖에는 죽을 수 없다.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라고 리에는 죽은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결국 그가 누구의 죽음을 죽은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P101)     


영정 사진을 마주할 때마다 리에는 불러줄 이름조차 없는 그 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짓된 성실함이란 정교하면 정교할수록 도리어 진실과는 한층 더 멀어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P105)   

  

그는 결국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어찌어찌 변호사가 되었다. ‘이걸로 괜찮은 걸까?’라고 미래를 막연히 내다보며 자신이라는 인간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어떤 자인 것이라고 믿으려고 했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살기 위해서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탓에 희망이 있고 또한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5년 사이에 그는 그러한 사색을 다행히 이미 극복된 과거로서 되돌아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행이라고 느낀 것은 취직난을 겪은 그의 동세대 중에는 직업을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매슬로적인 이론대로 살지 못하고 사회적 아이덴티티와 수입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아직껏 불완정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게다가 그는 일방적으로 변호사라는 입장에서 그런 그들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진의 충격이 아무래도 진즉에 해결되었어야 할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그를 다시 불안에 빠뜨렸다.

그것은 예전 질문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나이에 걸맞게-언어로 하면 아주 작은 차이였지만-이렇게 다시 묻고 있었다. 즉 ‘이걸로 괜찮았던 것일까?’라고.

중년의 자연스러운 감각으로서 이름은 역시나 언제든 ‘기도 아키라’였지만 그 나름대로 다면적인 삶을 살아왔고 그는 이제 자신이라는 인간을 그러한 과거의 결과물로서 포착하고 있었다. 예전에 미래였던 인생은 상당한 만큼 이미 달성한 과거가 되어 그가 어떤 인간인지 대부분 판명되어가고 있다.

물론 좀 더 다른 삶의 방식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마 무한대의 다양한 가능성으로서. 그리고 그는 지금 나란 무엇인가, 가 아니라 무엇이었는가, 라는 것을 살기 위해서라기보다 오히려 어떤 인간으로서 죽을 것인가, 라는 것을 의식하며 다시 질문하도록 추궁당하고 있었다.         (P138-139)   

  

그러한 동요 속에 그를 찾아온 또 하나의 불안이 간토 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기억의 재래이고 나아가 최근에 두드러지는 극우의 배외주의였다.

그가 살아가는 일상은 그 자신이 직업적으로 그 유지를 위해 노력하는 법질서에 의해 실현되고 있었다. 그와 가족의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지고 그들은 주권자로서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것이 일시적으로라도 무효화되는 파멸적인 시간, 파멸적인 공간이 예외로서 발생한다면? ‘조선인을 죽여라!’라고 백주에 당당히 길거리 한복판에서 외치는 선동가들에게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둘러싸고 사색해온 것 같은 섬세하고도 복잡한 질문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 예외 따위, 이미 필요 없는 게 아닐까, 데모의 목소리에 자극받은 누군가가 이 일상의 한복판에서 갑자기 마음먹고 나서기만 한다면 ‘조선인’을 죽이는 일 따위 언제라도 가능할 터였다.               (P140)   

  

지진 피해 이후 내셔널리즘의 발호에 불쾌감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꼭 재일이어서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사무실 동료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극우들뿐이라면 그렇다쳐도 모두가 10대 때부터 수많은 서적을 애독했고 경의를 품어온, 누구보다 성실해야 할 출판사들까지 ‘혐중’이니 ‘혐한’이니 하는 책을 간행하고 서점에 그런 책이 넘쳐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염세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다.          (P146) 


“.... 아무튼 다양해요.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상처입고 할 만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물론 즐거운 일, 기쁜 일도.... 나는 코리아타운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일본 동네에서 일본인과 똑같이 컸기 때문에 따돌림 같은 경험도 없었어요. 내 출신을 최근까지 스티그마로 의식해본 적도 거의 없었고.”

“스티그마가 뭐였더라....?”

“아, 스티그마는 타인의 차별이나 악감정이나 공격의 재료가 될 만한 특징이에요. 그 특징이 딱히 나쁜 것이 아닐 때도. 이를테면 얼굴의 멍이라든가 범죄력이라든가 출신지라든가.”

“스티그마가 그런 거였군요.”

“네에, 그런 것이 강조되면 그 사람이 가진 다른 다양한 면이 무시되고 말겠지요. 인간은 원래 다면적인 존재인데 재일이라는 출신이 스티그마화 하면 이것도 저것도 다 그걸로 규정되는 거예요. 나쁜 의미뿐만이 아니라 솔직히 나는 재일 동포끼리 우리 재일이잖아, 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건 우리 똑같은 이시카와현 사람이잖아, 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가가 거지’라는 자학 소재를 들으면 뭐, 그럴싸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매사에 그런 잣대를 들이대면 좀 그렇죠. ……변호사잖아, 일본인이잖아, 라는 식의 규정도 다 마찬가지죠. 아이덴티티를 하나의 뭔가로 묶어놓고 그걸 타인이 쥐어 잡고 흔든다는 건 정말 못 견딜 일이에요.”           (P162~163)     

“아뇨, 3승 4패가 좋아요. 내가 이래 뵈도 엄청난 비관주의자예요. 진짜 비관주의자는 명랑하다, 라는 게 내 지론이죠. 애초에 좋은 일을 전혀 기대하지 않으니까 아주 조금만 좋은 일이 생겨도 진짜 기쁘거든요.”            (P163)     


비통함은 하루하루 형태가 뭉그러지고 소리도 없이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 속에 방울방울 떨어져 나가 최소한 마음만은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자신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들었지만 죽음 이후의 무서운 외로움과는 또 다른, 슬금슬금 스며드는 듯한 외로움을 이따금 몸속 깊은 곳에서 느끼곤 했다.              (P188)   

  

기도는 광고 표현의 예술성이라는 통념이 뇌리를 스쳤지만 그다음에는 오히려 예술 표현의 광고서이야말로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라고 생각을 수정했다.

그래픽 디자인의 목적은 이벤트가 됐든 상품이 됐든 뭔가 존재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려고 하는 것이다. 알리지 않고서는 그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묵살되고 만다. 포스터는 ‘여기에 이것이 있다!’라는 것을 아름다움의 힘을 빌려 호소하는 것이고, 그 결과 그 표현은 예술의 영역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이란 실상 자본주의와도 대중 소비사회와도 관계없이 애초에 광고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불타오르는 듯한 해바라기 꽃병이 있다. 초원을 말이 달려간다. 쓸쓸한 생활이 있다. 전쟁의 비참함이 있다. 스스로 증오를 떠안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한다..... 모든 예술 표현은 결국 그런 것들을 광고하는 것이 아닐까.            (P215)

기도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을 고수해야 할지 어떨지 망설이면서 그들이 ‘광고’하려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보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범행 자체를 부인하는 그림은 의외로 적었다. 적어도 자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항변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는 국가에 의해 무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지른 죄를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작품을 그린 사형수는 자신의 존재의 흔적을 이윽고 소멸해버릴 육체가 아닌 또 다른 외부에 어떻게든 담아두려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조차 살인범으로서 처형될 때 이 세계에서 깡그리 말살된다. 그들의 ‘뜻밖의 일면’이었다. 만일 인격을 따로 떼어낸다면 길동무로 함께 희생될 그 인격의 존재를 그들은 죽음의 공포의 밑바닥에서 필사적으로 광고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P216-217)


‘X’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기도는 자기자신까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애초에 리에에 대한 동정에서 시작한 조사였고, 그래서 ‘X’에게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그녀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게 아니라면 잇따라 불행을 겪은 그 싱글맘이 너무도 딱한 것이다.  

하지만 기도는,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던 ‘X’에게 뭔지 모를 동경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X’에 대한 관심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딱히 현실에 절망한 게 아니더라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은 것은 단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운명을 짊어진 인간이 흔히 품을 수 있는 바람이 아닐까. 막상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기는 무모함이 없어서 그것은 단지 꿈꾸는 단계에 머물 뿐이다. 그는 재일이라는 출신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감추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의 처지를 이래저래 상상해가며 가엾어했지만, 그것도 ‘X’가 실은 리에 같은 여성에게 사랑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P233~234)     

기도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몸을 수그리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 끝이 자신의 양손과 발을 응시했다. 인간의 마지막 거처일 터인 내 몸이 지옥, 이라는 건 과연 어떤 고통일까. 내 몸이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인생이란.

“우리는 그냥 무심코 아버지 닮았네 어머니 닮았네,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근데 그걸 못 하는 거예요. 아버지를 닮았다는 건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얘기니까. ……그러니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를 않죠. 자신의 몸도 언젠가 미쳐 날뛰어 컨트롤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엄청 불안한 거예요. 애초에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얘기하면서 따돌렸거든. 보통 사람은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일 생각은 안 한다, 근데 자신은 저질러버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 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코토는 어떻게든 제 몸에 고통을 주려고 했어요. 남에게서 얻어맞거나 트레이닝으로 계속 못살게 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거죠. 복싱으로 자신의 폭력 충동을 조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그런 동기였군요.”                   (P260~261)     


하라 마코토 본인이 육체를 갖고 이 세계에 존재할 때에는 그러한 과거는 단지 사라져갈 뿐이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우고 싶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살아가려고 하는 실체로서의 그에게는 과거란 무거운 짐이자 족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실체가 없어진 지금,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줄 수 있다면 그의 전체는 회복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드러난 한 인간이 ‘하라 마코토’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도는 명백히 지금까지 정보의 단편에 휘둘리며 그 자신이 몹시 불안해했던 것에 비해 형태가 만들어져가는 하라 마코토의 존재와 호응하듯이 자신이라는 인간도 말끔히 정리되어 하나로 빚어져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P270~271)     


쓸쓸함.... 그렇다. 한심하게도 그는 최근에 자신의 가슴속에 똬리를 튼 감정을 민망해하는 일도 없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젊은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중년의 바닥모를 쓸쓸함에 조금만 방심하면 마구잡이의 써늘한 감상(感傷)이 틀어막을 도리 없이 그를 적셔오는 것이었다.           (P271)     

기도는 항상 자신의 재일에 대한 시선이 <안나 카레리나> 속에서 레빈의 농민에 대한 시선과 거의 동일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만일 누군가 당신은 농민을 사랑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레빈은 선뜻 대답할 말은 찾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농민에 대해서도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는 것이다. 물론 선량한 그는 남을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농민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농민을 뭔가 특별한 존재로 내걸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식의 행동을 그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단순히 농민과 함께 살고 농민과의 사이에서 전면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스스로도 농민의 일부라고 느끼고 있어서 자신에게서든 농민에게서든 어떤 특수한 장점이나 결점을 찾아내려 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농민의 건너편에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는 그가 사상적으로 친근함을 품은 사람들이 재일 문제에 관여하려고 할 때에는 번번이, 레빈이 형 코즈니셰프를 ‘시골생활을 자신이 싫어하는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서 사랑하고 추켜세우려고 했듯이 그는 농민에 대해서도 자신이 싫어하는 계층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로서 사랑하고 있었다’라고 비판했던 것과 동일한 불편함을 느꼈다.           (P285-286)   

  

기도는 무엇보다 어떤 하나의 카테고리에 인간을 몰아넣는 발상이 싫었다. 재일이라는 출신이 번거롭기만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재일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쁜 사람도 있고, 또한 그 좋은 사람에게도 단점이 있고 나쁜 사람에게도 아마 그가 알지 못하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레빈이 코즈니셰프를 ‘형이건 그 밖의 수많은 사회활동가들이건 결코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공공복지에의 사랑에 눈뜬 게 아니라 이 일에 관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이성의 판단에 따라, 오로지 그것 때문에 이 일에 관여해온 것이다’라고 평가한 것은 그야말로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아내가 기도의 ‘공공복지에의 사랑’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유였다. 

그는 지금 다시 그 모순을 깨닫고 소파에서 한쪽 무릎을 껴안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물론 자기 자신이 당사자일 때는 문제가 더더욱 복잡하다. 하지만 귀화 이전부터 거의 완전하게 일본인으로서 성장해온 그는 애초에 자신이 코리아타운의 재일 문제의 당사자인지 아닌지, 그것조차 심히 미심쩍었다. 그는 자신과 그들 사이에서, 레빈이 온종일 녹초가 되도록 농민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한 뒤에 맞이한 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밤에 느꼈던 ‘명랑한 공동 작업’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에 눈뜨는 날이 오리라고는 아무래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P286-287)

간토 대지진의 기록들을 몇 가지 읽어봤는데 조선인 살해 사건으로 입건된 것만 53건에 달하고 당시 사법성에 의하면 그 피해 사망자 수가 233명으로 나와 있다. 실제로는 –- 다른 설도 많지만 –- 아마 그 몇 배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중국인도 함께 살해되었다. 게다가 그 살해 방법 또한 왜 이렇게까지? 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잔혹한 것이었다. 

그는 그만한 수의 참살 사체를 상상하고, 존재를 빼앗긴 그들의 그 차가움이 직접 피부에 와닿는 듯한 오싹함을 느꼈다. 분명하게 이건 내 동포들이다, 라는 마음이 들었다. 사법연수원 동기의 돌연사로 교토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던 날, 돌아오는 신칸센 안에서 느낀 깊은 불안이 다시금 떠올랐다. 세상에 태어난 뒤로 육체의 형태와 체적으로 딱히 누군가의 허가를 필요로 하는 일 없이 공간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던 자신이라는 영역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 될 듯한 압박감. 그는 재일로서 그런 피해자 감정에 자신이 지금 거의 동일화해가고 있음을 의식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미 일본 국민인 그는 가해자로서 그 역사적 책임을 낱낱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P288~289)     


“정말 특이한 운명이긴 한데…… 그 사람의 인생이 당신에게 뭐였어?”

아내다운 직설적인 질문에 기도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글쎄…….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저 의뢰인의 처지가 딱해서 맡아준 일거리였을 뿐이야. 근데 점점 타인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에 흥미가 생기고 그가 그토록 버리려고 했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거, 현실도피인가? 재미있는 소설이라도 읽는 기분이었던 모양이야.”            (P293)     

“따지고 보면 전부 내가 구체적으로 맞붙어야 할 문제들이야. 하지만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때마다 몸이 몹시 힘들어져. 나 자신의 존재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고. 그런데…… 아까 얘기한 인물에 대해 조사하는 동안만은 왜 그런지 마음이 풀렸어.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타인의 삶을 통해 간접적으로는 내 인생을 마주할 수 있었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고. 하지만 직접 생각하는 건 아무래도 힘든 것 같아. 몸이 거부해버리는 통에. 그래서 아까 소설이라도 읽는 것 같다고 말했던 거야. 다들 자신의 고뇌를 단지 자신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잖아? 누군가 심정을 의탁할 타인을 원하고 있지. 뭐, 내가 매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당신이 옆에서 힘들었을 거야.”          (P295)    

 

아무도 타인의 실제 과거 따위, 분명하게 안다고 할 수 없다. 내 눈앞에 없을 때 그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아니, 설령 눈앞에 있더라도 그 본심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자만인지도 모른다.                (P303)     

“글쎄요, 다이스케 씨의 인생과 뒤섞어갔는지 아니면 동거한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과연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요. 처음 만나서 현재의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그다음에는 과거까지 포함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죠. 근데 그 과거가 생판 타인의 것이라는 걸 알았다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미스즈는 그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얼굴로 말했다.

“알게 된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사랑하는 거 아닐까요? 한 번 사랑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몇 번이고 다시 사랑하잖아요. 여러 가지 일을 함께 겪으니까.”          (P323)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호적 바꾸고 1년쯤 지나면 진짜로 그 사람이 돼요. 누가 다니구치라고 하면 솔직히 나한테 하는 얘긴가, 하고 어리둥절해요. 과거도 함께 모두 다 바꿔버렸으니까. 나도 호적 바꾸기 전에는 다니구치 집안 사람들을 미워했지만 이제는 아예 남의 일이에요. 페이스북에서 교이치를 얼핏 봤는데 뭐, 시골 온천여관의 한심한 사장으로만 보이더라고요.”

“예전 일, 가끔 떠올리기도 해요?”

“인간관계도 다 끊고 그 지역 떠나버리면 저절로 잊어버려요. 아니, 그냥은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죠. 안 좋은 과거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남의 과거를 덧쓰는 거예요. 지울 수 없다면 뭐가 뭔지 모를 때까지 덧그리면 되죠.”             (P328)     


유토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에는 이 ‘벚나무’는 남편이 ‘내 나무’라고 정했던 그 나무를 말하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리고 실제로 작년 여름에 유토 혼자 고분군 공원에 찾아가 이런 경험을 했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공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나무 아래서 매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홀로 그 허물을 응시하고 있었을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리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조숙한 재능’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문학이 아들에게 구원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 그것은 리에가 결코 생각해낼 수도 조언해줄 수도 없었던, 아들 스스로 발견해낸 인생의 곤경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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