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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Apr 16. 2024

다니엘 켈만의 <세계를 재다>

영화 <세계를 측정하는 방법>  2012년

독일 18세기의 위대한 두 인물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은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와 수학자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Johann Carl Friedrich Gauß 1777~1855)이다. 가우스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귀족 태생인 훔볼트. 그들은 당대의 세계를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을 대변한다.        

1828년 9월, 독일이 낳은 그 위대한 수학자는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독일 자연과학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회의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몇 달을 끌며 초청을 고사했지만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집요한 부탁에 못이겨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초청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제발 그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러니까 지금 침대에 몸을 숨기고 있는 남자는 바로 가우스 교수이다. 미나가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마차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갈 길이 멀다 소리를 듣고도 가우스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서 아내가 사라지길 바랐다. 그러나 다시 눈을 떴을 때에도 미나는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 그는 미나에게 그녀는 정말 성가시고 미련하며, 자신의 노년이 맞닥뜨린 불행이라고 퍼부어 댔다. 그런 말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이불을 젖히고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P7-8) 

    

타고 온 말에서 마구를 내려 새 말에 얹는 동안 그들은 한 식당에서 감자스프를 먹었다. 식당에는 그들 말고는 긴 턱수염에 뺨이 움푹 들어간 마른 남자밖에 없었는데, 그는 옆 탁자에서 슬그머니 그들을 훔쳐보았다. 육체적인 것은 정말 모든 굴욕의 원천이란 말야 체조 기구가 나오는 꿈을 꿔서 짜증이 난 가우스가 말했다. 나같이 똑똑한 정신은 이렇게 빈약한 육체에 감금되어 있는데 오이겐처럼 평균치의 머리를 가진 녀석은 절대 아프지 않다니, 이 얼마나 짓궂은 신의 장난이야.

저도 어렸을 때 심하게 천연두를 앓은 적이 있어요. 오이겐이 말했다. 거의 죽을 뻔한걸요. 아직도 여기 흉터가 남아 있잖아요!

아, 그랬지. 가우스가 말했다. 그걸 잊고 있었군. 가우스는 창문 앞에 서 있는 역마를 가리켰다. 부자들이 여행을 하려면 가난한 사람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니 정말 웃기지 않냐. 역마를 이용하면 매 역마다 말을 바꿔 탈 수 있지만 자기 말로 여행을 하자면 그 말이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

그래서요? 오이겐이 물었다. 

가우스가 말했다. 물론 좀처럼 생각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야 그것이 당연하게 보이겠지. 사람들이 젊을 때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기가 정작 나이 들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것까지 말이야.

지팡이는 대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거잖아요. 예전부터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요. 그렇겠지, 라고 말하며 가우스는 웃음을 흘렸다.              (P10-11)     

가우스는 자신이 모든 학문의 적이라 여기며 언제나 정복하기를 원했던 우연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가까이서 관찰해 보면 모든 사건의 배후에는 무한히 치밀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멀찍이 물러서서 보면 거대한 밑그림이 드러난다. 임의와 우연은 어중간한 거리에서 볼 때 생기는 문제, 거리의 문제다. 이해가 되느냐?

대강은요. 오이겐은 피곤한 듯 말하고 회중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시계가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새벽 3시 반에서 5시 사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가우스는 손으로 아픈 등허리를 꾹꾹 눌러 가며 계속 말했다. 그럼에도 확률의 법칙은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며 예외도 가능하다. 예를 들면 나같이 똑똑한 사람이 나타날 확률이나 바보가 도박에서 계속 돈을 딸 확률 같은 것 말이다. 가끔은 물리학의 법칙이란 것도 단순히 통계상으로만 적용되는 것, 즉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령이라든가 텔레파시 같은 예외 말이다. 

오이겐은 지금 농담을 하신 거냐고 물었다. 

그건 나도 몰라, 대답을 하고 가우스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P13-14)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25년 전에 감행했던 열대 지역 원정 때문에 전 유럽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는 뉴스페인(現 멕시코), 뉴그라나다(現 콜롬비아), 뉴바르셀로나, 뉴안달루시아(現 베네수엘라), 미합중국에 가 보았고 오리노코 강과 아마존 강 사이에 있는 자연 운하를 발견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했고 수천 가지 식물과 수백 가지 동물을 대개는 죽은 상태로 때때로 한 채로 채집했으며 앵무새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체를 파냈고 원정 중에 건너고 넘었던 모든 강과 산, 호수를 측량했으며 흙구덩이만 보면 기어들었고 온갖 장과(漿果)를 맛보았으며 누구나 상상하기 좋아하는 것처럼 나무에 기어올랐다.  

그는 형제중 아우였다. 낮은 귀족 계급의 부유한 남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일찍 사망했다. 아들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관해 그의 어머니가 자문을 구한 이는 다름 아닌 괴테였다. 

괴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의 다양함을 뚜렷이 보여 주는 형제. 즉 행위와 향유의 풍부한 가능성들을 가장 모범적인 현실로 만드는 형제. 그들은 감성을 희망으로, 정신을 여러 가지 생각으로 충족시키는 하나의 극작품과 같다. 

아무도 이 문장을 알아먹지 못했다. 어머니도, 마른 몸에 큰 귀를 가진 그녀의 집사 쿤트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쿤트가 이렇게 말했다. 이런 뜻일 것 같습니다. 실험이 중요하다. 한 아이는 문화적인 인물로 교육하고 다른 아이는 학문적인 인물로 교육해라, 뭐 그런.

그런데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지?

쿤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다음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동전을 던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P18-19)     


그들에게 물리학과 철학을 가르친 이는 임마누엘 칸트가 아끼는 제자인 마르쿠스 헤르츠였다. 그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헨리에테의 남편이었다. 그가 비커에 두 가지 액체를 따랐다. 액체는 잠시 후 순식간에 색이 변했다. 그는 가는 관에 수소를 흘리고 입구에 불을 붙였다. 펑 소리와 함께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가 말했다. 0.5그램, 불꽃의 크기는 12센티미터. 사물들이 놀라운 일을 보여 주면 우리는 언제라도 그것들을 측량해 봐야 한다.               (P21)     


훔볼트는 대학에서 인간의 신경이 가진 전도력에 관해 강의했다. 파리를 극점과 연결하는 경도의 마지막 구간을 측량하는 작업이 있을 때 그는 도시 외곽의 망가진 잔디밭 위에서 보슬비를 맞으며 그 일을 도왔다. 측량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모자를 벗고 서로 악수를 했다. 그 구간의 1000만 분의 1은 그 후 모든 거리 측량의 단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미터’라 부르기로 했다. 측량이 끝날 때마다 훔볼트는 항상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황홀경에 사로잡혔다. 흥분으로 인해 그는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P38)    

 

필라르트는 바람의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기구는 위로 올라가다가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갈 것이다. 그러다 기구 안의 공기가 차가워지면 다시 내려올 것이다. 갈매기 한 마리가 가까이에서 울부짖었다. 아직 아니야. 필라르트가 외쳤다. 아직 아냐. 지금이야! 그는 가우스의 옷깃과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움켜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멀리 굴곡을 이루고 있는 땅이 보였다. 저 멀리에 있는 지평선, 언덕의 구릉지가 안개 속에 반은 가려져 있었다. 위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아직도 타고 있는 불길 주위의 조그만 얼굴들, 그 옆에 도시의 지붕들. 굴뚝에서 퍼져 나오는 연기 구름. 길 하나가 초원 위로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위에 벌레같이 작은 당나귀가 보인다. 가우스는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내려다보겠지. 필라르트가 말했다. 

가우스는 대답을 하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떤 힘으로 공기가 그들을 이동시켜 주는가! 그리고 태양, 태양은 왜 이 위에서는 훨씬 더 밝은가? 그는 눈이 아팠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공간. 이 지점에서 저 지점까지 이어지는 직선, 이 지붕에서 저 구름, 저 태양, 저 지붕까지 이어지는 직선.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고, 면이 모여 물체가 된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물체의 섬세한 구부러짐은 여기 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필라르트가 손을 자신의 어깨에 얹은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계속 위로 올라갈 거야. 땅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위로 올라가는 거지. 언젠가 사람들도 이것을 체험하게 될 거야. 아주 일상적인 일처럼 누구나 날아갈 수 있을 거란다. 그러나 그때쯤엔 이미 나는 죽은 몸이겠지. 그는 흥분에 휩싸여 태양을 살펴보았다. 빛이 바뀌었다. 어스름이 마치 안개처럼 아직 밝은 하늘로 올라오는 듯 보였다. 몇 가닥 남은 마지막 빛, 지평선의 붉은 노을, 이제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별이 보인다. 저 아래에서는 별들이 이렇게 빨리 뜨지 않았다. 

우리는 벌써 내려가고 있다. 필라르트가 말했다. 

안 돼요. 가우스는 간청했다. 아직 안 돼요! 여기 이렇게 별이 많은데, 아직 이것들을 다 못 봤는데. 별들이 점점 많아져요. 모든 별은 죽어 가는 태양이에요. 모두 언젠가 사라지죠. 모든 별은 자신의 궤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태양 주위를 도는 모든 행성, 행성 주위를 도는 모든 위성에 공식이 존재하듯이 모든 궤도를 설명하는, 즉 모든 별을 도는 모든 별들의 모든 회전을 설명하는 그런 공식이 존재할 겁니다. 그 식은 무한히 복잡할 수도 있고 아주 단순할 수도 있어요. 오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눈이 아팠다. 오래전부터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땅에 닿을 거다. 필라르트가 말했다.             (P66-67)     


그리고 비가 오는 어느 날 그는 일을 끝마쳤다. 펜을 옆으로 치우고 요란하게 코를 풀고 이마를 문질렀다. 지난 몇 달간의 기억들, 모든 갈등, 결정과 생각들이 벌써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겪은 일 같았다. 그의 앞에는 그 다른 누군가가 남긴 원고, 빽빽하게 적혀 있는 종이 수백 장이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뒤적거리면서 자신이 이것을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했다. 어떤 영감도, 어떤 깨달음도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일에 매달렸던 기억밖에 없었다. 

출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별로 가진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바르텔스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다. 그런데 조판한 교정 볼 때 문제가 생겼다. 돌대가리 출판업자는 그것을 교정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가우스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치머만은 공작에게 편지를 보냈고 공작은 약간의 돈을 더 지원했다. 그렇게 <산술에 관한 논고>가 출판될 수 있었다. 그의 나이 스무 살을 넘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필생의 업적이 이루어졌다. 그는 자신이 오래 산다고 할지라도 이에 필적할 만한 것을 또다시 성취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P93-94)     

세아 신부가 말했다. 그는 상처받은 채 바로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넉 달 동안, 나중에 그 자신이 아마존이라고 이름을 붙인, 강을 따라갔지요. 가는 도중에 그는 지도를 그리고 산에 이름을 붙이고 기온을 기록하고 물고기, 벌레, 뱀, 인간의 특성을 파악했습니다. 그 일이 흥미로워서가 아니라 미치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후에 파리에 가서도 그는 그때의 기억에 관해서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답니다. 목구멍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 낮은 관목류에서 정확하게 목표를 겨냥하고 튀어나오는 독화살, 밤의 발광 현상, 특히 이 세계가 한순간 비현실적인 것으로 한발짝 나아갈 때 현실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변화들. 나무는 여전히 나무들처럼 보이고 느리게 소용돌이치는 물은 물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것을 어떤 낯선 것의 보호색으로 인식하게 되지요. 이 시기에 라 콩다민은 미친 아기레가 보고했던 운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 대륙에서 가장 큰 두 강의 연결로였습니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증명할 겁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거대한 강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입니다.            (P119)     


가우스는 유성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 것인지를 예고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상당히 큰 유성이 가우스가 예고한 날짜와 시간에 정확히 나타나자 그는 단박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천문학은 대중적인 학문이었다. 왕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으며 장군들은 천문학의 발전을 추구했고 군주들은 새로운 발견을 위해 상금을 고시했다. 신문은 마스케라인, 메이슨, 딕슨, 피아치에 관해 그들이 마치 영웅이라고 되는 듯 보고했다. 수학의 지평선을 영원히 확장한 사람은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었지만 별 하나를 발견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P146)     


궁정에서 서면상의 제안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궤도 계산 방법을 찾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요하나에게 말했다. 별의 궤도는 어떤 운동이 아니라 모든 물체가 진공 속에 있는 하나의 물체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필수부가결한 결과이다. 그래서 어느 물체를 공중에 내던지면 종이 위에, 그리고 공간 속에 만곡을 이루며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똑같이 생기는 선이 궤도이다. 그것이 중력의 수수께끼이며 모든 물체의 강인한 인력이다.               (P150)     


끝났소. 훔볼트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 5,700미터 고도에 있는 거라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소.

할렐루야. 봉플랑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와 본 사람이 되었소. 누구도 해수면으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본 적은 없소.

그러면 정상은?

정상은 올라가든 못 올라가든 상관없이 이것이 세계 기록이오.                 (P181-182)   

  

조만간 이 모든 것들이 하찮은 일이 될 것이다. 기구를 타고 떠다니고 자장의 나침반에서 거리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 측량 지점에서 다음 측량 지점까지 전기 신호를 보내 전기 강도가 떨어지는 정도를 보고 거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의 일들이 지금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해야만 한다. 진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측량 밴드, 육분의와 경위의를 사용해서 말이다. 게다가 수학적 방법만으로 측량의 부정확성을 배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매번 사소한 실수가 파국으로 이어진다. 아직 그 어느 땅의 정확한 지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P197)   

      

훔볼트가 말했다. 베를린에서 살게 되기까지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파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는..... 그는 얼굴에서 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코를 풀고, 그것을 접어서 매끈하게 주름을 편 다음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돈이 떨어졌습니까?

너무 과격한 표현이군요. 어쨌든 원정 기록을 출판하느라 자금이 완전히 소진되었습니다. 총 서른네 권에 달하니까요. 도표와 동판화, 지도와 삽화까지 넣었고요. 게다가 전쟁 중이라 물자도 부족하고 임금도 많이 올랐습니다. 저 혼자서 학회 하나가 하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시종 직을 맡아 궁정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매일 왕을 접견하지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그럼요. 가우스가 말했다. 

어쨌든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은 제 탐험을 인정해 줍니다! 나폴레옹은 저와 봉플랑을 항상 증오했습니다. 그가 이집트에 보낸 학자 300명이 한 일이 우리 둘이 남미에서 한 것보다 못했기 때문이지요. 파리에 돌아온 후 우리는 몇 달 동안 도시의 화젯거리였지요. 나폴레옹에게는 그것이 아주 못마땅했습니다. 뒤프레는 이 시기에 아주 아름다운 회상 몇 가지를 [훔볼트 — 위대한 탐험가]에 기록했지요. 윌슨의 [과학자와 여행가 — 중앙 아메리카에서 훔볼트와 함께한 여행]보다는 사실을 덜 왜곡한 책입니다.                   (P223-224)  

   

이 차는 러시아 황제가 보내온 선물입니다. 러시아의 경제부 장관이 나를 다시 러시아로 초대했지만 나는 물론 거절했습니다. 정치적 이유에서도 그렇지만 나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오이겐이 말했다. 러시아 황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악독한 전제군주입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에 놀라서 얼굴이 붉어졌다. 가우스는 몸을 구부리고 기침을 하면서 마디가 있는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식탁 아래서 오이겐의 발을 때렸다. 한 번 빗나가자 다시 한 번 때렸다. 오이겐은 몸을 움칠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그는 신호를 보냈다. 비서는 바로 받아쓰는 것을 중지했다. 왕정 복고는 식물의 노균병처럼 유럽을 잠식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나의 형님 역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군요. 청년기에 품었던 나의 희망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한쪽에는 폭정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바보들의 자유가 있습니다. 남자 세 명이 거리에 함께 서 있기만 해도 그들은 모반을 위해 규합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서른 명이 뒷방에서 유령을 불러내도 그것은 아무도 트집 잡지 않습니다. 줏대 없는 사람들이 나라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자유를 설교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들에게 얹혀삽니다. 유럽은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의 장이 되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저는 인도 여행을 준비하며 돈과 기자재, 지도를 수집했습니다. 그것은 내 평생 가장 훌륭한 도전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영국 사람들이 그것을 방해했습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말입니다. 나의 친구 볼리바르의 필생의 업적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어쨌든 라틴아메리카의 그 위대한 해방가가 나에게 어떤 칭호를 붙여 주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칭호인데요? 가우스가 물었다. 

남아메리카의 진정한 탐험가! 훔볼트는 자기 찻잔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 말은 고메스의 <훔볼트 남자>에 나와 있습니다. 평가 절하된 책이지요. 교수님은 지금 확률 계산에 전념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사망률 통계지요. 가우스가 말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역겹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할 수 있는 찻잔을 밀어 놓았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만들고 발견하고 자산을 획득합니다.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아이는 영리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을 수도 있죠.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늙고 어리석어지고, 병들고 죽어서 땅에 파묻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이 비로소 우리가 쉬운 길을 선택해 왔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전제 정치, 그 말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요! 전제 군주를 역시 살면서 고통받고 다른 사람들처럼 죽어 가는 가련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진짜 폭군을 자연법칙입니다.

이성이 법칙을 만듭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칸트 식 구닥다리 사고지요. 가우스는 머리를 흔들었다. 이성은 아무것도 만들지 못하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공간은 구부러져 있고 시간은 확장됩니다. 직선을 멈추지 않고 그리는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직선의 출발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는 창문에 낮게 걸려 있는 태양을 가리켰다. 이런 타는 듯한 행성의 빛조차도 직선으론 내려오지 않습니다. 세상은 아쉬운 대로 측량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가 어떤 것을 이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P225-226)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오이겐이 말햇다. 진짜 폭군은 자연법칙이 아닙니다. 나라 안에 거센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유는 더 이상 실러의 책에나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녀석들의 움직임이지. 가우스가 말했다.

나는 괴테와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실러는 제 형님과 더 마음이 잘 맞고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어리석은 녀석들의 움직임이지. 가우스가 말했다. 돈이나 명성은 물려받았을지 모르지만 지성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녀석들.

훔볼트가 말했다. 제 형님은 얼마 전에 실러에 관한 심오한 논문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문학에 별로 흥미를 못 느낍니다. 숫자가 없는 책은 나를 불안하게 합니다. 연극을 볼 때면 나는 항상 따분했습니다.

맞아요. 가우스가 외쳤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너무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것은 바로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일탈적 행동을 능력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들의 작품은 인간을 혼란스럽게 하고 양식화는 세상을 오염시키지요. 예컨대 판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무대 미술, 배경이 유화 물감으로 뭉개져 버린 영국 그림, 작가가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자신의 허튼 생각과 연결시키기 때문에 거짓 동화로 빠져드는 소설들.

끔찍하죠. 가우스가 말했다. 

나는 식물과 자연의 특징에 관한 도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그 특징을 지키도록 의무화해야지요. 연극에도 그와 비슷한 법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인물의 특징 목록을 작성하는 게 어떨까요? 작가들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다게르의 발명품이 완성되는 날이면 어쨌거나 그런 예술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릴 테지만요.         (P227-228) 

    

턱수염을 기른 사람이 말했다. 어떤 것도 청년들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아니라 적과 맞서야 합니다. 이 민족을 괴롭히는 것은 적의 강력함이 아니라 자신의 허약함입니다. 이것이 줄어들어 있습니다. 그는 자기 가슴을 쳤다. 숨을 쉴 수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원래의 의지와 순수한 경건함을 가지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영주, 프랑스 사람, 사이비 성직자가 여러분을 미혹하여 독일을 유약함에 빠지게 하고 자장가를 불러 엄지손가락을 빨며 잠들게 합니다. 그러나 청년들이여, 경건하고 순결하게 버티고 서시오. 생각을 하시오! 그는 주먹을 쥐고 이마를 두드렸다. 생각, 그것의 성스러운 단결은 어떤 악마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침내 진실한 독일 교회를 이끌어 내고 존재를 극복하게 될 겁니다. 청년들이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는 팔을 뻗었다. 천천히 무릎으로 걷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것은 육체를 파악하고 육체를 훈련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약을 통해, 뛰어내림을 통해, 턱걸이, 철봉 운동을 통해. 육체가 완전해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숨어서 여행을 다니던 중 나는 어떤 노인과 대학생, 독일인 아버지와 아들, 진실한 두 남자가 여권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시달리는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올바른 독일 사람으로서 나는 용감하게 개입했습니다. 그리고 신의 은혜로 폭정의 사슬을 제압했습니다. 매일 우리는 부당한 일들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알코올과 여자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에 전념하는 선한 젊은이들이 신선하고 경건하게, 즐겁고 자유롭게 기꺼이 독일의 수도사가 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부당함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프랑스 사람들을 몰아냈습니다. 이제는 군주를 몰아낼 차례입니다. 소위 신성 동맹은 더 오래 지속되어서는 안 됩니다. 철학은 현실을 붙잡고 흔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대가 다시 한 번 오기를! 그는 탁자를 내리쳤다. 그리고 오이겐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를 들었다. 턱수염이 난 사람은 조용히 서서 팔을 위로 뻗고 청중을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바뀌고 그는 뒤로 물러섰다.             (P239-240)     


가우스는 그가 정말 자금이 부족해서 돌아온 것인지 물었다.

왕의 명령 때문이었지요. 다게르가 말했다. 왕은 독일의 가장 유명한 신하가 외국에 머무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훔볼트는 궁정의 모든 편지에 건성으로 답을 했지만 마지막 편지에는 그가 다시 한 번 저항을 한다면 왕과 공개적으로 결별하게 되리라는 암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과 결별하기에는, 다게르가 웃었다. 저 아니든 신사는 자금이 부족했지요. 오랫동안 기대를 모았던 그의 원정 보고서는 독자를 실망시켰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없고 모험담도 없이 측량 결과로만 가득 채운 수백 페이지짜리 책. 그의 명성을 퇴색시키는 비극적 결과였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긴 사람들만이 결국 유명한 여행가로 기억되는 겁니다. 그런데 저 불쌍한 인간은 그런 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지요. 그는 이제 베를린에서 천문대를 세우고 수많은 계획을 시도하고, 시 고문관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젊은 학자들은 그를 비웃고 있고요.

물론 나는 베를린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릅니다. 가우스가 일어섰다. 그러나 괴팅겐에서 내가 만난 젊은 학자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던데요.

심지어 가장 높은 산을 정복했던 일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다게르가 이렇게 말하면서 가우스를 따라 출구로 나갔다. 그 사이에 히말라야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이 밝혀진 거지요. 저 노인에게는 심각한 타격이에요. 수년간 그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인도 원정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P247-248)     


이 가로등. 가우스가 말했다. 가로등을 가스로 밝힐 때가 곧 올겁니다. 그러면 밤이 없어지겠지요. 우리는 둘 다 보잘것없는 시대에 늙어 버린 겁니다. 이제 오이겐은 어떻게 될까요?

학교에서 퇴학당할 겁니다. 감옥에 갈지도 모르고요. 추방을 당할 수도 있겠네요.

가우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죠. 훔볼트가 말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봉플랑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슬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미나에게 알릴 일이 걱정이오. 미나는 어리석게도 그 아이만 의지하고 사는데.

몰락하려고 하는 것은 몰락하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아름답게 들리지는 않지만 그건 성공한 삶의 가장 혹독한 면, 말하자면 그런 삶의 잔인한 면일 뿐입니다.

나는 이미 오래 살았어요. 가우스가 말했다.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고향이 있습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딸이 있고요. 불행에 빠진 아들도 있습니다. 그 아들의 엄마 역시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최근 15년 동안 나는 언덕을 측량했지요. 그는 갑자기 멈춰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설명할 수 없군요.

나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훔볼트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기분이 가벼워지는군요.

아마도 이런저런 일들이 아직 가능할지 모릅니다. 자기, 공간의 기하학. 내 머리는 이제 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전혀 쓸모없지는 않을 겁니다.            (P270-271)     


훔볼트가 말했다. 운명이란 건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어떤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정말 운명이었다고 믿게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아서 억지로 운명이라고 믿었던 것에 끼워 맞춰야 하지요.              (P273)     


베를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차가 흔들거리는 바람에 그의 상태가 이전의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안 좋아졌을 때 그는 떨림, 앞뒤로 흔들림, 좌우로 흔들림에 대해 아주 깊이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며 공동 작용 속에서 부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것이 멀미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그는 최소 억제의 원리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개개의 움직임은 최대 허용 가능 한도 내에서 혹은 최소 억제 가능 한도 내에서 전체 시스템의 움직임과 일치한다. 이른 새벽 괴팅겐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베버에게 그것에 관한 메모를 보냈고 그는 지혜로운 논평을 붙여서 돌려보내 주었다. 몇 달 후면 그것을 주제로 쓴 논문이 발간될 것이다. 그렇게 그는 물리학자가 되었다. 

오후가 되면 그는 숲 속에서 오랜 시간 산책을 했다. 이제 그는 길을 잃지 않았다. 그는 이 지역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으며 모든 것을 지도에 담아 놓았다. 가끔 그에게는 자신이 땅을 측량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발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이 그를 통해서 비로소 현실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무, 이끼, 돌, 풀들로만 있던 곳에 이제는 직선과 각과 수의 그물망이 펼쳐졌다. 누군가에 의해 일단 측정된 것은 측정되기 전과 같이 존재하지 않고 그렇게 존재할 수도 없다. 가우스는 훔볼트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나무 아래로 비를 피했다. 풀잎이 흔들렸고 신선한 흙 냄새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는 이곳 이외의 어느 다른 곳에도 가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꼈다.          (P276-277) 

    

모스크바로 출발하기 전에 다시 우편물을 받았다. 자신의 고독에 관해 수다스럽게 떠들고 있는 형의 편지 두 통과 베셀에게서 온 한 통의 긴 편지였다. 그리고 자기 실험에 깊이 빠진 가우스의 엽서 한 장이 있었다. 나는 이제 이 일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나는 창문 없는 관측소를 짓게 했습니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문을 달고 자력을 띠지 않는 동으로 만든 못을 사용했습니다.

처음에 시 고문관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가우스는 그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우는 척하며 매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실험이 무역, 국가의 명성, 경제적 이익에 기여하게 될 점들을 꾸며 댔다. 시 고문관들은 결국 그에게 동의하고 천문대 옆에 관측소를 짓게 했다. 이제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증폭기 코일 속에서 진자 운동을 하는 긴 철침 앞에서 소일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것의 운동은 너무나 미세해서 맨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움직이는 편차의 섬세한 운동을 보기 위해서는 바늘 위에 장착된 거울에 망원경을 고정시켜야 했다. 훔볼트의 추측이 들어맞았다. 지장은 편차를 보이고, 그것의 강도는 주기별로 달라진다. 가우스는 훔볼트보다 더 짧은 간격을 두고 측정했다. 그는 더 정확하게 측량했으며 계산도 물론 더 잘했다. 훔볼트가 바늘이 매달려 있는 끈의 확장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기분 좋게 했다.

가우스는 석유램프의 희미한 빛 속에서 몇 시간이고 이 진자를 관찰했다. 어떤 소리도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필라트르와 함께 했던 기구 비행이 공간이 무엇인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면 이 실험은 그가 지구의 중심에 존재하는 흔들림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인간은 이제 산에 오를 필요가 없고 밀림을 통과하며 고통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바늘을 관찰하는 것은 곧 지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가끔 그의 생각은 가족에게로 향한다. 오이겐이 보고 싶었다. 오이겐이 떠난 이후로 미나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막내는 곧 학교를 끝마치게 될 것이다. 그 아이 역시 특별히 똑똑하지는 않다. 그 아이는 대학에 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간을 과대평가해선 안 된다. 적어도 베버와는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한 러시아 수학자가 유클리드의 기하학이 진리에 어긋나며 평행선은 서로 만난다는 가설을 표명한 논문을 그에게 보내왔다. 그가 이것은 자신에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답장을 쓴 이후로 그는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잘난 체만 하는 인간으로 통하게 되었다. 그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이 세상에 공표해서 유명해질 거라는 생각에 그는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듯한 낯선 통증을 느꼈다. 그렇게 나이가 들고 난 후에야 명예심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 것이다. 바늘을 응시하면서, 그것이 소리 없이 추는 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거의 숨도 쉬지 못할 때, 그는 문득 자신이 알 수 없는 시대의 마술사처럼, 오래된 동판화 위에 그려져 있는 연금술사처럼 느껴졌다. 왜 아니겠는가? 신과학(Scientia Nova)은 마술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은 항상 마술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P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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