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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헌 Nov 21. 2024

허먼 멜빌의 <수병, 빌리 버드>

영화 <빌리 버드>  1962년

<수병, 빌리 버드>는 1797년의 영국 해군반란 사건을 소재로 선과 악 및 그에 따른 문제를 다룬 진정한 인간 본연의 자세를 추구한 작품이다.

멜빌이 죽은 뒤 33년 만인 1924년에야 유작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그가 평생 여러 작품에서 천착했던 ‘신과의 다툼’을 완결하는 내용으로, 작가의 ‘정신적 자서전’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타락 이전의 아담에 비유되는 수병 빌리 버드와 악의 구현체인 하사 클래가트,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킬 능력을 지닌 함장 비어, 이 세 인물을 대비함으로써 사회적 권위와 개인적 자유, 구체적 정의와 추상적 선 사이의 대립과 충돌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아직 증기선이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에 흔히 보던 풍경이다. 지금보다 더 빈번하게 보던 풍경이다. 웬만한 항구의 부두를 따라 거닐다보면 이따금 전함의 수병이든 상선의 선원이든 상륙허가를 받아 뭍에 올라온, 구릿빛 살갗에 나들이 옷차림인 뱃사람 패거리가 눈길을 끌곤 했다.

때때로 뱃사람들은 일행 중 인물이 빼어난 한 사람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늘어서거나 호위대처럼 그를 에워싸곤 했다, 그런 인물은 마치 황소자리에서 알데바란 별이 새끼별을 거느리듯이 동료 뱃사람들을 몰고 다녔다. 바로 그런 튀는 인물을 낭만적으로 여기던 시절, 전함대나 상선단에서는 그를 이른바 ‘멋쟁이’로 부르곤 했다.             (P243)     

그의 도덕적 성품이 육체적 겉모습과 조화되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만약 그의 남성적 매력과 힘이 진정한 도덕성으로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그 잘생긴 수병은 자신보다 뒤처진 동료들의 진심어린 흠모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중요한 변화와 함께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푸른 눈의 빌리 버드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후일 ‘꼬마 버드’로 불리게 된 그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18세기가 막을 내려갈 즈음, 영국 전함의 앞돛대 망루병이었다. 그는 상선을 타고 고국으로 향하던 중 내로해협(Narrow Seas)에서 그 절박한 시기에는 흔히 있듯이 적정한 인력을 충원받지 못한 채 전선으로 나가야 했던 74개짜리 포문 제국전함 벨리포텐트 호에 강제징집되어 복무하게 되었다.              (P246)  

   

절차가 끝나자 선장은 침묵을 깼다. 그의 어조에서는 대위를 책망하는 느낌이 풍겼다. 

“대위 양반, 당신은 내게서 가장 멋진 친구, 정말이지 보석 같은 친구를 빼앗아가는구려.”

“예, 압니다.” 대위는 술잔을 다시 끌어당기며 대꾸했다. “그럼요. 알고말고요. 거참, 미안하게 됐습니다.” “실례지만 대위 양반, 당신은 몰라요. 자, 보시오. 내가 저 젊은 친구를 이 배에 태우기 전에는 앞갑판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 쥐새끼 소굴이었소. 여기 ‘권리’(Rights)호 갑판은 정말이지 암흑시대였단 말이오. 담배를 피워도 진정이 되지 않을 만큼 나는 속이 탔소. 하지만 빌 리가 오고 나서는 태평성대였소. 그는 마치 아일랜드 사람들의 싸움판에 뛰어들어 화해시키는 가톨릭 사제 같았다오. 그가 선원들에게 설교한 것도, 어떤 특별한 말이나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에게서 저절로 흘러나온 덕목이 마치 시큼한 맛을 없애는 설탕처럼 되었다는 말이오. 그들은 마치 말벌이 당밀에 끌리듯 빌리에게 매료되었소.             (P249)     

빌리는 사물을 나무 궤짝에서 자루로 옮겨 넣었다. 젊은이가 소형 범선에 옮겨 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내려간 대위는 ‘인간의 권리’호를 떠밀고 떠났다. 선장과 선원들은 뱃사람의 풍습에 따라 ‘권리’라고 줄여 불렀지만 그 상선의 정식 이름은 다름 아닌 ‘인간의 권리’였다. 던디 항 출신의 완고한 선주는 토머스 페인의 열렬한 신봉자였는데, 프랑스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트의 비판에 응수하여 페인이 얼마 전에 출간하여 널리 읽히고 있는 책 제목에서 배이름을 땄다.                 (P252)   

  

“그럼 자네의 출생에 관해 뭐든 아는 게 있나?”

“아뇨, 장교님.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브리스톨에 사는 어떤 착한 분의 집 문고리에 비단헝겊으로 댄 예쁜 바구니가 걸려 있었고, 그 안에 있던 저를 그분이 주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웠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신참을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장교가 말을 이었다. “그래, 주운 사람치고는 정말 잘 주었구먼. 사람들이 자네 같은 사람을 더 많이 주워서 나에게 보내주면 좋겠군. 우리 함대에는 자네 같은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거든.”

그렇다. 빌리 버드는 버려진 아이였고 아마도 사생아였을 테지만, 결코 비천한 출신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종마(種馬)처럼 고귀한 혈통의 징표가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P258-259)    

 

첫번째 봉기, 즉 스핏헤드 봉기에서는 정부와 반란 지도자 사이에 몇 차례 협상이 벌어졌고, 정부가 아주 잘못된 일부 행위를 불문에 부친다는 양보가 따르자 일시 진화되었다. 그러나 노어 반란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규모 반란인 데다 반란자들이 내건 무리한 요구조건이 폭덩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반란이 표방한 정신과 명분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내건 붉은 깃발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결국 반란은 평정되었지만 그나마도 수병들이 확고한 충성심에 불타 있었고, 영향력 있는 승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충성심을 되찾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노어 반란은 건강한 신체에 전염성 열병이 침투하여 잠시 몸을 떨게 했다가 이내 물러나버린 것과 비슷한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다. 

어쨌든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반란에 가담했던 이들 수천 명 중에는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이든 아니면 호전적인 본능의 소산이든, 아니면 둘 다의 이유이든 나일 강에서 넬슨에게 승리의 화관을, 그리고 트라팔가르에서 역시 넬슨에게 해군 최고의 영예를 안겨주는 데 한 몫 크게 했던 수병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 반란 가담자들에게는 이 두 해전, 특히 트라팔가르 해전은 당당하고 완전무결한 사면장이 되었다. 해군의 영웅적인 장렬함과 혁혁한 전과를 기록하는 모든 사람에게 두 해전, 그중에서도 트라팔가르 해전은 인류의 연대기에서 가장 빛나는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P266-267)     

그러나 빌 리가 자신의 그물침대를 매달아놓고 있던 74포전함의 함상에서는 최근에 대반란이 일어났음을 상기시키는 수병들의 수상한 동태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장교들의 태도 또한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었다. 전함에 배속된 장교들은 전반적인 몸가짐이나 행동거지에서 대체로 함장의 기품을 닮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지휘관이 지닌 탁월한 지도자의 성품은 자연스럽게 장교들에게 전승된다.

정식 명칭으로 해군대령 에드워드 패어팩스 비어 함장은 마흔 살 남짓의 독신자로, 쟁쟁한 뱃사람이 많았던 그 당시에도 명성 높은 인물이었다. 지체 높은 귀족가문과 연줄이 닿아 있기는 했지만 오로지 그 연줄에 힘입어서만 진급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실전경험이 풍부했고, 각종 보직을 맡으면서 언제나 부하들의 복지를 배려하는 장교로 처신하면서도, 규율 위반에 대해서는 단호했고, 업무지식에 통달했으며, 결코 무분별하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과도할 정도로 용감무쌍했다. 서인도 해상에서 로드니 제독이 드 그라스를 상대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을 때, 그의 전속부관으로 영웅적인 용맹을 과시한 덕분에 대령 함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P275-276)  

   

어떤 사람이 아무리 무해한 존재하고 해도 그 무해함 때문이 아니라, 그의 순진함이 다른 사람에게 불러일으키는 자연스럽고도 내밀한 반감보다 더 신비한 요소가 어디 있겠는가?

결코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성가시게 하지 않고 함께 지낼수는 없는 일이다.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 바다에 나가 있는 대형 함선 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온갖 계급의 다양한 사람이 상시 접촉하며 산다. 행여 성질을 돋우는 사람을 피하고 싶으면 그를 요나처럼 바다에 던져 넣거나 아니면 자기 스스로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이 모든 것이 특정인에게 닥칠 때는 성자의 경우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이러한 단서들만으로는 정상적인 사람이 클래가트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 클래가트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중간 사각지대’를 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기위해서는 우회로를 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P299-300)    

 

“그래, X말이지. 그는 여인네가 부채로 두들기는 정도로는 깰 수 없는 단단한 호두라고,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어떤 제도화된 종교도, 더욱이 단일한 체계의 어떤 철학도 결코 신봉하지 않아. 그래서 말인데, 그의 은밀한 내심에 들어가 미로를 탐색하고 다시 나오려면 이른바 ‘세상에 대한 지식’말고는 마땅한 단서가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하거든, 적어도 내겐 말이야.”

“글쎄요.” 하고 내가 답했다. “X는 어떤 사람에게는 특이한 연구대상일지 몰라도 그도 사람이고, 이른바 ‘세상에 대한 지식’이란 따지고 보면 인간의 본성과 그 다양한 양태에 대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피상적인 지식으로, 통상적인 목적에만 소용이 닿는 것일 뿐이야. 그러나 더 심오한 목적을 위해서는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같은 한마음 속에 공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서로 관련이 거의 없거나 아니면 전혀 무관한 별개 지식 분야가 아닐지, 나로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네. 아니 보통 사람들에게는 풍진세상을 부대끼며 살다보면 그게 선이든 악이든 몇몇 특출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섬세한 정신적 통찰력을 무디게 만들게 되는 법이지.....”         (P300-301)     


플라톤의 공인된 번역에 포함되어 있는, 그가 손수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개념용어 목록에는 ‘본성적 타락. 본성에 따른 타락’이라는 항목이 나오는데, 이 개념은 비록 칼뱅주의적 냄새를 풍기기는 하지만 결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칼뱅의 교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이 개념은 특정 개인들에게만 적용할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교수대나 감옥은 이런 유의 타락 사례를 그다지 많이 제공해주지 아니한다. 어쨌든 그러한 타락 사례는 그 속에 야만스러운 천박성이 섞여 있지 않기에 어떤 경우에나 지성의 지배를 받는다. 따라서 두드러진 사례를 찾으려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만 한다. 특히 문명은 엄격할수록 타락을 부추긴다. 타락은 멀쩡한 겉모습 속에 숨어든다. 타락은 침묵의 보조수 역할을 하는 부정적인 덕목의 성격을 띤다. 타락은 술이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타락은 어떠한 악덕이나 사소한 죄악에도 물들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그 안에는 이런 것들을 배제하는 자존심이 있다. 타락은 금전을 밝히거나 탐욕에 물들지 않는다. 요컨대 여기에서 타락이란 천박하거나 관능적이지 않다. 진지하지만 신랄하지 않다. 인간에게 아첨하지도 않지만 인간을 매도하지도 않는다.                (P302-303)     

클래가트의 외모는 못생긴 편이 아니고 턱만 빼고는 준수하다는 것을 앞서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장점에 대해 그 자신도 관심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언제나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는 데 신경을 썼다. 하지만 빌리 버드의 모습은 실로 영웅다웠고, 클래가트처럼 창백한 지성의 면모는 없었지만, 비록 원천은 달랐을지 모르나 클래가트처럼 안으로부터 빛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장밋빛으로 물든 뺨을 밝게 빛냈다. 

두 사람이 서로 뚜렷하게 대조되었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앞서 이야기한 장면에서 선임 위병 하사관이 그 수병에 대해 “멋지게 생긴 놈이 행동도 멋지군”이란 속담을 들먹였을 때, 그 소리를 들은 젊은 수병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애초부터 빌리에게 반감을 품게 만들었던 그의 빼어난 인간적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은연중에 노출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P305-306)

     

이 대목에서 비어 함장은 좀 성급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봐. 그냥 똑바로 말하게나. 강제징집되었다고!”

클래가트는 말씀대로 하겠다는 몸짓을 하고는 말을 이어갔다. 아주 최근에 그(클래가트)는 포열갑판 위에서 문제의 그 수병 주모 아래 모종의 음모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분명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에 대해 보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 문제의 그자의 거동을 관찰한 결과 그 음모가 거의 실행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덧붙이기를, 이렇듯 주된 음모자 당사자에게 중대한 결과를 미치게 될, 그리고 외람스럽지만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는, 최근 발발한 그 엄청난 폭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해군 지휘관이 필연적으로 느낄 불안감을 가중하는 경향이 있는 보고를 드리게 된 데 대하여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P332) 

    

바로 다음 순간, 한밤중에 발포된 대포에서 화염이 번쩍 비쳐 나오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빌리의 오른팔이 뻗어나왔고 클래가트는 갑판 위에 쓰러졌다. 고의적으로 그랬든, 아니면 그 젊고 강건한 수병의 키가 더 컸기 때문이었든, 그의 주먹은 선임 위병 하사관의 그토록 멋지고 지성의 면모를 풍기는 이마를 정통으로 맞혔다. 클래가트의 몸뚱이는 마치 무거운 판자가 똑바로 서 있다 쓰러지듯이 길게 뻗어버렸다. 한두 차례 숨을 헐떡이던 그는 움직임이 없어졌다. 

“이런, 젠장.” 비어 함장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울 만큼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여기 와서 도와주게.”              (P343)     

무지개에서 보라색이 끝나고 오렌지색이 시작되는 선을 과연 누가 정확하게 그을 수 있겠는가? 색상 차이는 분명하게 알 수 있지만, 한 색깔이 정확하게 어느 선에서 인접한 다른 색깔로 섞여 들어가는가? 정신상태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누가 봐도 명확한 경우는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물론 소수의 전문가가 상당한 보수를 대가로 그 일을 하겠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 정도가 다른 여러 경우에 정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누군가가 보수를 받고 그런 일을 하려 하거나 실제로 한다는 사실밖에는 더 언급할 말이 없다.             (P349)  

   

벨리포텐트 호 선상에서 벌어진 그 사건에 앞선, 그리고 그 사건의 배경이 된 상황이 얽힌 가운데 사건을 공식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인 군법에 비추어볼 때 클래가트와 버드의 행위에는 사실상 무죄와 유죄가 서로 전도되었다. 법의 관점에서 볼 때 비극의 희생자는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했던 자였고, 그 무고한 사람이 저지른 행위는 전혀 논란의 여지없이 해군에서 볼 때 군사범죄 가운데 죄질이 가장 나쁜 범죄였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사건에 내포된 본질적인 선과 악, 그것이 분명하면 할수록 충성스러운 해군 지휘관의 임무는, 바로 그러한 본질적인 차원을 바탕으로 사건을 판단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는 한,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P350)     

이런 낌새를 눈치챈 함장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별안간 어조를 바꾸어 계속했다. 

“마음을 좀 안정시키기 위해 사실관계를 되짚어보세. 전시에 해상에서 전함의 수병이 상급자를 폭행하고 그 결과로 생명을 빼앗았다. 결과는 차치하고라도 폭행한 사실만으로도 전시군인복무령(Articles of War)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요. 더군다나.....”

“네, 함장님.” 해병 중대장이 감정에 휩싸여 끼어들었다. “어떤 점에서는 그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버드가 반란도 살인도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P363)  

   

요컨대 빌리 버드는 공식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활대 끝에서 교수형에 처해지도록 선고되었는데, 이미 밤이 늦었으므로 처형은 다음 날 이른 아침 당직시간에 행하도록 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사건에서 흔히 그렇듯이 즉시 형이 집행되었을 것이다. 전시에는 육지에서나 해상에서나 즉결심판으로(육지에서는 이따금 장군이 고개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사형이 선고되면 판결과 동시에 상소도 없이 곧바로 집행된다.              (P368)     

형이 집행되는 순간에도, 그리고 뒤이어서도 침묵, 바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뱃전을 때리는 소리나 조타수가 잠깐 한눈파는 바람에 야기된 돛이 펄럭이는 소리로 더욱더 두드러졌던 침묵, 그처럼 강조되었던 침묵은 무슨 말인지 입으로 옮기기 힘든 소리로 서서히 무너졌다. 누구든 열대의 산악에서 퍼붓는 소나기, 평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소나기로 갑자기 불어난 격류가 흘러가는 콸콸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지금 들려오는 이 소리가 어떠한 것인지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배의 상갑판에 도열한 사람들에게서 나왔지만 소리의 시원은 아주 먼 곳이라고 느껴진 것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웅성거림 때문일 것이다.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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