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깡 깡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는 이 곳은 산 속이다.
정확히는 산에 둘러쌓여 있는 나의 고향, 뛰어 놀고 넘어지고 치이고 불장난으로 태워 먹은 논과 밭과 산이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곳.
군데 군데 들어 차 있던 사람만 없어 졌거나 바뀌어 있는 이 곳에서 구슬 땀을 흘려 가며 고추 말뚝을 박고 있는 소리
깡 깡 깡
나는 시골이 싫었다. 신나게 뛰어 놀던 이 곳이 치열한 삶의 현장 이라는 것을 설피 알게 되었던 그 날 부터 였을 것이다. 지팡이로 굽은 등을 지탱하며 성치 않은 무릎을 움직여 뙤약볕 아래로 덤덤히 걸어 나가시던 할머니의 뒷 모습은 이제 아버지의 자리가 되었다.
외면하고 무시했다
나는 절대 이 답답한 산골에서 땅만 쳐다보며 살지 않을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논을 삶고 모를 내고 둑을 쌓고 물꼬를 트고 풀을 뽑고 약을 치고 꽃을 따고 비닐을 씌우고..따고 뽑고 걷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지옥 같은 계절들이 지나면 차고 긴긴 외로운 밤의 나날들이 가득하여 차라리 치열했던 지난 여름이, 가을이 나았다며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날을 찾아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 무지한 세월이 한장 하고 두장 하고 수 십 수 백장이 넘어가면 쇠한 몸뚱이를 부둥켜 세워 서낭당 너머로 보이는 작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 숨을 짓는다.
눈 깜빡 할 새 였노라고.
지나온 푸르렀던 계절들에 대한 소회 치고 참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간결한 그 한 마디가 이 시골생활이 줄 수 있는 전부라고 믿었다.
깡 깡 깡
손바닥은 쓰리고 어깨는 결리고 허리는 우리고 아..다행히 구름이 잔뜩 끼어 햇볕은 따갑지 않았다.
축축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 염소 똥 냄새가 섞여 오는 것은 조금 불쾌하지만 이따금씩 사람처럼 울어대는 염소들의 합창을 듣고 있노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저 건너 흰색 강아지는 어찌나 멍청한지 잠깐만 안보였다 나타나면 왈캉왈캉 짖어댄다. 느그 주인분이 도시 나가면 니놈 밥 주던 사람이 바로 우리 아부지다 인석아..언젠가는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알아서 좀 잘 하자 꼬리도 좀 흔들고 임마..
깡 깡 깡
꼬박 1박 2일을 말뚝만 박아댔다.
이제 제법 요령이 생긴다. 이걸 끝내고 가지 않으면 늙으신 아버지가 이어서 말뚝을 박으실 테고 그러면 힘에 부쳐 힘들게 힘들게 일을 끝내도 짜증만 늘 것이다. 애꿎은 어머니한테 앙탈이나 부리시겠고 그러면 어머닌 서운함에 삐져서 나한테 전화를 거시겠지. 느이 아부지가 오늘 나한테 어쩌구 저쩌구..
아이고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다 끝내고야 말겠다!!
깡 깡 깡
잡념은 사라진다.
깡 깡 깡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라..노래방 같은 곳에 안 가 본지가 10년은 된 것 같다.
깡 깡 깡
흥이 난 김에 유튜브를 뒤져서 좋아했던 노래의 플리를 만들었다. 세상이 좋아지니 이런 깡촌에서도 유튜브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깡 깡 깡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어깨도 들썩 거려 본다. 궁댕이도 씰룩거리고 크게 따라도 불러 본다.
괜찮다. 아무도 없다. 어쩔 것인가 저 산에 참새들이 비웃을 게냐? 저 아래 염소가 코웃음을 칠 게냐?
아니면 흰개 니가 조롱해 볼 테냐? 그것도 춤이냐고, 노래라고 부르는 것이냐고.
니가 해 봤자 왈왈왈이지 뭐.
깡 깡 깡
돈, 나이, 건강, 사람, 도시.
그 모든 관계들에서 오는 피곤한 스트레스는 온데 간데 없다. 그저 나와 말뚝과 망치 그리고 노래가 있을 뿐..
그래! 이 맛이야! 이게 일이지!
깡 깡 깡
스무 고랑이 넘는 고추 밭에 말뚝을 박는다.
깡 깡 깡
내려치는 망치에서 전해지는 진동과 소리, 저릿저릿한 육신의 비명들, 흐르는 땀방울에 섞여 나는 퀴퀴한 아저씨 냄새.
깡 깡 깡
나를 잊는다.
저 밖에서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깡 깡 깡
나를 찾는다.
나는 이렇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소리내어 웃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깡 깡 깡
수십 년 전 이 곳에서 뛰어 놀던 그 아이는 여전히 이 곳을 사랑한다.
깡! 깡! 깡!
다 박았다!!!!!
아 근데 고추망도 씌우라네..아오..빌어먹을 촌구석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