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3

삶의 난이도가 급 하락 하게 된 건에 대하여

by 연필소년

취업을 했다.

귀향을 했고 농사일을 하고는 있지만 젊음을 올인 하기엔 아직 완벽한 시골 사람도 아니거니와 더부살이로 들어온 나 까지 합세해서 수익을 내기엔 우리 과수원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닌 탓에 (아부지 피셜) 20년 만에 돌아온 여운이 빠지기 전에 여기저기 이력서를 찔러 넣었다.


운 좋게 경력을 살려서 일 할 수 있는 곳에서 나를 써 주시겠다고 하니 분골 쇄신할 마음으로 입사를 했고 농사일도 허투루 배울 순 없으니 격일 근무로 빡시게 스케줄을 잡아 일을 시작했다. 하루는 회사에서 하루는 밭과 들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주변에선 왜이리 무리를 하냐고 쉬엄쉬엄 하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 오기도 한다.


이제 한 달 좀 넘었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인생의 난이도가 하락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스스로 보기에도 전보다 일은 많이 하고 잠은 적게 자는데 몸도 마음도 편하기 그지 없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말이다. 고향이라는, 가족과 함께라는 버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래서 사람들이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 하는 것일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꼬박꼬박 삼시세끼를 먹는데도 살은 벌서 7키로나 빠졌다. 못 먹고 힘들게 일 하던 불과 몇 달 전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일상이다.


고향 이라는 곳의 특수한 마법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체감적으로는 확실히 느끼고 있다. 이러다 거대한 불행이 하나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 때때로 엄습해 올 만큼 말이다.


복숭아를 따고 선별도 하고 포장도 하고 택배도 하고 공선장도 갔다가 시내 가서 어머니 이비인후과도 모셔다 드리고 시장에 들러서 장도 보고 면사무소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와서 조금 쉬고 소독도 하고 풀도 깎고 선별장 정리도 하고 참깨도 베서 널어넣고 고추도 따서 건조기에 집어 넣고 이거저거 정리하고 저녁 먹고 잠에 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해서 또 다시 24시간 동안 근무를 선다.


혹시 노후에 쓸 체력을 모두 끌어다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바쁘게 살고 있지만 힘들다는 느낌은 없는 신비함.


그토록 원했던 삶이 저 먼 곳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는 허무함.

성공을 좇아 애써 무시했던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의 소중함.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부한 클리셰가 사실은 모두 진실 이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는 요즘이다.


노인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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