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을 선택하다.

by 리나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점심 무렵,

합천 해인사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그 당시 나의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와이프를 도와서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게 된 지 6년 차,

아무 생각 없이 룰루랄라 하고 아빠가 된 지 만 4년 차,

둘째 아이가 그 해 12월에 태어났으니, 와이프의 뱃속엔 둘째가 있었을 터였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나는 내 가족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평범한 고민을 몇 년 동안 했었고,


그 첫 번째 시도인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는 것은 내 결혼 때문에 시작부터 망가져 있었다.

한 가정을 먹여 살리면서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유학 가서 공부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게 마무리하고 와서도 대학교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로선 그 당시 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대학교수가 되는 길을 접어야 했다.


그 두 번째 시도는 "카이로프락틱 의사가 되고 싶다" 였는데,

당시 전통무술과 대체의학에 흥미가 있었고, 카이로프락틱이라면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문화센터에서 배운 것만으로는 돌팔이가 될 것 같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은 당시 내 상황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워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세 번째 시도는 "요가지도자가 되고 싶다"였다.

그 당시 한국에서의 요가 이미지는,

팬티만 입은 마른 아저씨가 유연성 곡예를 한다는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웰빙과 아름다움이라는 긍정적인 것으로 막 탈바꿈을 했던 시점이었다.

그 요가 붐의 중심에 있던 분이 원정혜 스승님이셨고, 그분의 요가수업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막연하게 요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지도자 과정을 밟게 되었다.

나는 그때 매우 겸손하면서도 오만한 성격이었는데,

이 말의 의미는 겉으로 보이기엔 겸손함을 하나의 습관처럼 두르고 있었고,

속으로는 "나 정도 되면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으면 훌륭한 요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고 생각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곳은 히말라야 전통요가를 수행하는 곳이었고,

1년 동안 좋은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내 생각은

겨우 1년 공부해서 요가 지도자가 되겠다고? 10년 해도 될까 말까 할 것 같은데...

로 바뀌게 되어 요가원의 원장으로 먹고 살겠다는 나의 오만함은 초장에 잘 퇴치되었다...


결국 평범한 한 가장의 느지막한 진로찾기는 뭔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는 말이다, 하핫.




당시 6년 동안 해왔던 학원 수학강사라는 직업은 내게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당시에도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느꼈고,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도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나는 학원 수학강사 따위가 아니라 대학교수가 될 사람인데,

어차피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는 편이고, 수학에는 재능도 없는데,

이런 생각으로 살았으니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했을리가 없지 않나, 하하.


그러나 2009년에 나의 모든 장밋빛 희망들이 깨어져 나간 후에,

나는 6년 동안 수없이 "이건 내가 할일이 아니야" 라고

깔봐왔던 학원 수학강사의 일을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진지하게 마주볼 수 밖에 없었다.


잠깐, 그러나 내가 선택했다는 것이 학원 수학강사라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에 나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뭘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교육이 무엇인지 잘은 몰랐지만,

최소한 학원에서 아이들을 혼내가면서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지금도 그럴테지만, 한국의 수학 선생님들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수학은 암기다" vs "수학은 개념이다"


수학은 암기라고 하시는 선생님들은, 수학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풀어야 하기 때문에 문제의 유형이나 이런 것들은 열심히 외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다.


수학은 개념이다 라고 하시는 선생님들은, 수학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면 수학문제를 제대로 풀어낼 수 없기 때문에 문제를 그냥 외우지 말고 개념을 이해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학원의 수학선생님들은 보통 "수학은 암기"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아이들을 잡을 수 밖에 없다. 당시 학원들은 대부분 이랬었다. 아마 지금도 이럴 것이다. 나는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고, 혼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학원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성적이 더 잘 나왔고, 내가 가르친 아이들은 항상 시험을 망쳤으며, 어머님들은 "당신의 방식이 틀렸다" 고 나를 비난했고, 심지어 학생들조차 책상 위에 "이게 학원이냐" 라고 낙서를 남기기도 했었다. 그것은 학원생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졌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솔직히 말해서 학원강사로서의 내 스펙은 나쁘지 않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은 된다. 그렇게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내 안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스펙에, 다른 학원처럼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친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스파르타식으로 아이를 가르친다면, 최소한 아이가 공부를 못 하는 이유가 학원 강사에게 전가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커리큘럼을 못 따라오면 아이가 공부를 게을리 하는 것이고, 커리큘럼을 따라오지만 성적이 안 나온다면 아이가 머리가 나쁜 것이 되니까. 학원 강사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애들을 혼내가면서 가르쳤다고 느끼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자식 탓을 하지, 강사 탓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몇명의 성공사례만 건져도 학원강사로서의 내 평가는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성공한 학원강사로서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내 추측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다시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점심 무렵, 합천 해인사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나는 앞으로 학원강사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2009년 4월 28일을 계속 언급하는 이유는,

그 날이 내게 여러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의 의미만 해도 글 몇개는 써야할 것 같지만, 여기서는 학원강사의 입장으로서만 보자.


우선, 그 때 차 안에 나와 같이 있던 분은 내 스승님이셨다.

물론 그 이후로도 한동안 나는 그분을 스승님이라고 부르진 않았지만, 호칭이 뭐가 중요한가.


나는 그때 스승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다른 학원처럼 똑같이 스파르타식으로 한다면, 최소한 지금보단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때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당신이 하던 대로 그렇게 부드러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


원하는 답을 듣지 못 한 나는, 스승님에게 당황하여 다시 여쭈어 보았다.


아니, 저기 그... 그렇게 하면 어머님들도 저를 무시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도 금방 학원을 그만둘 것 같은데요. 그럼 돈도 못 벌고 학원이 망하지 않을까요.


그렇다. 나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때 스승님이 해주셨던 답변은 현실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 했지만, 내가 길을 망설일 때마다 나를 바로 잡아 주었다.


만약 아이들이 금방 그만두고 나간다면, 괴로운 학생시절 속에서 그 아이가 당신 곁에서 잠시 쉬었다 간 거라고 생각하라. 그 아이가 부모님의 공부 압박 속에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당신 곁에서 있는 기간은 오아시스와 같을 것이다.


스승님의 이 답변을 들었을 때, 내 안에서는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딱 찝어서 표현하자면 허탈함을 느꼈던 것 같다. 답변이 도움이 안 되어서 나오는 기분 나쁜 허탈함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심각한 고민들이 겨우 저 말 한마디로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에 느꼈던 허탈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아이들을 돈으로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스승님은 또 말씀하셨다.


당신이 생각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보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나중엔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방법을 갖게 될 것이고 그건 당신의 무기가 될 것이다.


그래, 그렇다.

2009년 4월 28일 화요일, 그날 나는 교육자로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후 십여년이 넘도록 내 교육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처음 몇년 동안 나는 교육자로서 매우 허접했으며,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혔을 때, 스승님은 내 방식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교육방식


이 표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어떤 의미인지 한참동안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이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학 교육방식은 아이들이 불행하지 않게 수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나의 요기(Yogi, 요가수행자)로서의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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