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고객, 비슷한 사람들
일을 하다 보면 많은 고객들과 만나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많은 남자 고객들은 이 일의 수입과 할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왜냐하면 자기도 할까 말까 고민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준비까지 다 해 놨는데 막상 콜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고객도 만난 적이 있다. 하려고 했으나 욱하는 성질이 있고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술 취한 사람 비위 맞춰주는 일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한 사람도 있다.
욱하는 성질 없는 사람이 있나?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 또한 조울증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분이 왔다리 갔다리 하기도 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는 분노 조절 장애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걸 잘 참아주고 그러려니 하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자존심... 그것은 아무리 버리려 해도 꾸역꾸역 되살아나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닌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닐까.
사업이 잘 안 풀려서 궁지에 몰리거나 직장에서의 비전이 보이지 않고 생존이 위태롭게 느껴질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하고 고민하기 마련이다. 결국 가장 먼저 떠오르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도 투자 금액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노가다와 대리운전 일 것이다. 운전면허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고,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 시작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웬만한 사람들이 한 번씩 다 생각은 해 보고,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을 만큼 장벽이란 게 없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또 은근히 쉽게 진입하지 못한다. 바로 마음의 장벽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일은, 다른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자기가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자괴감이 생기는 일이다. 왜 그런 마음을 갖냐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자괴감 갖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그것이 원하는 대로 뿅 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벗어나고 싶지만 쉽지 않어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표정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러면 다른 이는 이 일을 할 사람이냐? 하고 반추하게 만든다. 주변에 우울함을 전염시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갑지 않다.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짜증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라지지 않는, 약간 삐져나왔을 뿐인 자괴감을 그것조차 절대 가지지 말고 내비치지 말라며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도 배려와 예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자신은 극복하고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질지 몰라도, 다른 모든 이들이 다 그처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보고 그냥 수많은 직업 중에 하나로, 운전은 자신 있다며 진입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장벽이라는 것이 사치와 허세로 느껴질 만큼 궁박한 상황에 몰려서 선택의 여지없이 일단 뭐라도 해야 해서 진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간만 보거나 하려다가 막상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더 좋은 선택지가 생긴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선택할 것이고, 이 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몇 개의 특수한 직업 빼고는, 사명감과 충성심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
수호 기사 등장
이 일에 대한 소명의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 일과의 의리를 지키기라도 해야 하는 듯, 마치 고객의 평생 수호 기사인 것처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풍무동에서 강남으로 택틀을 하다가 우연히 만났던 기사인데, 겨울이 거의 끝나고 2024년의 봄이 막 들이밀기 시작하던 때 즈음이었다.
180을 충분히 넘을 듯한 장신의 키에 롱코트를 입고 배용준 목도리를 한 채 세련된 하얀 테의 안경을 끼고 있었다. 약간 작곡가 삘도 나고, 그때는 프리미엄 기사의 존재를 모르던 때라 ‘어얼, 무슨 대리기사가 이렇게 멋져?’ 하고 속으로 혼자 생각했었다. 살짝 삐져나온 한 가닥 코털이 아니었다면 완벽했는데, 마지막에 약간 아쉬웠다. 역시 남자는 마지막에 코털을 점검해야.
그도, 투덜거리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냐는 표정을 갖고 주변에 짜증과 힘 빠짐을 선사하느니, 지금 자신의 일을 더욱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명분을 갖기 위해 그러는 것 일 것이다. 그래야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좀 더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프로페셔널한 직업인이 맞고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남들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내일 장사를 접을 계획을 가지고 있더라도 오늘의 장사를 위해 평생 할 것처럼 말을 하고 의욕을 보이는 것이 프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