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강조의 무용성
공부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무의미 해진다. 공부가 안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안 하는 사람들이 공부가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에게는 안 맞는 것이다. 해보려고 해도 잘 안 들어오고 집중이 안 되고, 애써 노력해도 결국은 코풍선에 침 흘리고 있고, 술도 안 먹었는데 블랙아웃 현상이 자꾸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신력이 약하다고 뭐라 할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인 것이다. 반대로 공부를 집중해서 막 열 시간씩 하는 사람은 참을성이 강하고 진득해서 라기보다는, 그럴 수 있게 공부와의 호환성이 좋게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공부 또한 재능과 소질이 많이 좌우한다. 인내력과 정신력은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이다.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그냥 막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술술술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육식동물은 노력해서 고기 취향을 갖게 된 것이 아니고 육식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태어난 것이고 초식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고기를 먹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초식동물에게 막 고기를 먹으라고 하고 고기를 잘 먹는 육식동물에게 고기를 먹는 근성이 좋다고 하고 그것을 잘 못 먹는 초식동물에게 정신력이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생긴 대로 살 수밖에 없다. 노력을 해봐도 잘 안 된다면, 현재에 만족성을 높이고 후회와 반성, 자학을 좀 더 줄이고 자신의 특수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현명하고 덜 불행해지는 방법이다.
미술은 암기과목이다
대학교 때 교양 수업으로 수강했던 미술사 수업의 대부분 내용은 선생님이 그림에 대한 지식적인 부분과 스테레오 타입의 감상 내용을 외워 와서 학생들에게 제시해 주는 식이었다. 미술 역사라는 과목의 특성상 객관적인 지표와 연도적 기준 등을 암기해서 지식화 하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감상마저도 일방적으로 주입받고 암기한 것을 꺼내서 그저 나열하고 있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 또한 마치 암기과목인양(미술은 암기과목 맞다!) 그저 남의 감상평을 받아 적고 자기화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게 맞는 것인가?” 하고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미술에 대한 지식’, ‘안목’이라는 것이 대개 이런 식이다.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할 때는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과 교집합이 형성되어 소외감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만한 대중적 작품을 선택하고, 어느 정도 지나서는 남들은 잘 몰라서 나만 알고 있다는 잘난 척을 할 수 있을 만한 작품에 닿아서 지적으로 보이는 남의 평론을 자기화하기.
자기 생각과 의견은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없고 헛다리 짚거나 공격당할까 봐 두렵다. 알쏭달쏭 도대체 뭔지를 모르겠는데, 전문가인 것 같은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해석을 이야기하면(사실 그도 누군가의 표현을 그저 외웠을 확률이 높다.), 이미 기가 죽어서 그의 말이 사실이겠거니 하고 그것을 또 자기화하고 묻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또,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바보처럼 보일까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이 감지되는 누군가에게 가서, 전에 누군가가 그에게 그랬듯이 한 수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럴 필요 없는데, 각자 자유롭게 꼴리는 대로 해석하고 마음대로 받아들여도 되는데,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저 위에 무형의 미술 헤게모니가 은연중에 작동하고, 많은 사람들은 입력되고 명령된 대로 행동하는 로봇 마냥 영혼을 헌납한 채 가장 안전한 것 같은 곳으로 휩쓸려간다.
미술? 별 거 없다. 쫄지 않아도 된다
더 거창하고 심오한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을 것이라고 쫄 필요도 없고, 기대 안 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의도확대의 오류’이다. 느껴지면 느껴지는 것이고 안 느껴지면 안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지는 것처럼 기대하는 게 적을수록 더욱 즐기고 만족하면서 감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별 거 없다고 생각해도 된다. 작품에 대해서 설명하는 사람들이 외워서 말하는 사람 기 죽이는 단어들에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들도 그냥 쥐어 짜내서 써낸 것들을 기계처럼 외워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역할과 책임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조형 이미지를 말의 언어로 변환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야 말로 참 예술적 경지라고도 할 수 있다. 작품 설명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별 거 없어요. 그냥 당신이 느끼는 것이 다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앤디 워홀과 프랭크 스텔라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지만.
누구나 어떤 자리에 가면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책임을 다 하지 못하면 비난이 날아온다.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애써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