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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해서 인간이다

인간의 한계

by 김경섭

불완전해서 인간이다


인간의 한계


나도 대단할 거 없고, 너도 대단할 것 없다


대단한 실력자나 초인적인 노력파를 보면, 겸허해지고 나에 대해서 반성하고 때로는 좌절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끝없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고 다 거기서 거기다. 어떤 한 장면에 쫄아서 실체보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위압감을 느끼지만, 결국 그도 사람일 뿐이다.


재벌 회장이 조 단위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 사람들은 주눅이 들고 범접할 수가 없지만, 돈만 많을 뿐이지 나머지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약간 뛰어나거나 별 차이 없거나 때로는 더 형편없기도 한 그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나 나나 매일 대소변을 봐야 하고 인간 보편의 두려움과 찌질함을 가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그도 죽고, 나도 죽는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대철학자도 결국 인간이다


절대 법칙과 절대 진실 같은 것은 없다. 결국 다 각자의 목소리이고 자신의 의견일 뿐이다. 동양철학이든 서양철학이든 그 안에서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대 철학자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일 뿐이다. 긴 시간에 걸쳐서 검증되고 살아남은 위인들의 말이기 때문에 무게와 힘이 더 실리고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일 것 같은 아우라가 형성되지만, 그들도 결국 인간일 뿐이다. 긴 시간에 의한 신비감과 권위가 더 해 졌을 뿐, 그들의 말도 인간들의 한 시각일 뿐이다.


그 위대하다는 철학자들도 저마다 다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말했다고 해서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도 인간일 뿐이고 인간의 결정적이고 태생적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가장 공부를 많이 했고 가장 성공해서 사회적 정점에 이른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이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두고 다투는 대통령 후보 토론을 봐도, 가장 공부를 많이 하고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이미 사회적 성공을 다 이룬 사람들인데, 한 사안에 대해서 전혀 다른 입장과 견해,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한 사안을 두고 전혀 다른 곳을 진실이라고 지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능력이 있고 똑똑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국회의원들도, 세치 혀로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고 말로는 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무대포 무논리로 어처구니없는 자신감에 기만 쎈 사람들도 많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과 확신에 찬 눈빛 그리고 주장의 논리를 들어보면 다 그럴듯하다. 각자의 주장은 다 그럴듯한데, 그 주장들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충돌한다.


좋은 학교를 나오고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하고 보통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저마다 인생의 승리자로서 기세등등한 확신의 눈빛을 가지고 자기주장을 하고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파고든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전혀 다른 진실의 기반에서 주장이 출발한다. 그 밑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다들 매우 다르게 받아들이고 전혀 다른 진실을 본다.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고 해당 사항이 없는 한 방향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주장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여태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나 온전히 의지하고 믿고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사실도, 그렇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닌 태생적이고 본질적인 특성이자 한계이다. 이토록 무엇이 진실이고 맞는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역시 또 “과연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의 본질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사람들은 종교와 예술은 믿음과 감성의 영역이고, 과학은 이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잘못된 믿음과 편견들로부터 벗어나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찰과 실험에 의해서 확보해 낸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우드 러셀 핸슨은 「과학적 발견의 패턴」에서 과학자들의 실험과 관찰 결과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입증하고 싶어 하는 이론에 따라 달라진다는 ‘관찰의 이론 의존성’을 주장했다. 쉽게 말해서 과학자들 역시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고 그것을 뒷받침할 근거만 찾는다는 것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에서도 더 합리적이고 우월한 이론에 의해 이성적이고 점진적으로 패러다임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혁명처럼 마치 종교의 개종과도 같이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했다. 그것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주장하던 기득권을 가진 선배 과학자들이 다 죽고 난 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후배 과학자들이 비로소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학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자들의 사회적 주관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서 바뀌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을 해서 귀납적 결과를 얻어내서 그에 따른 이론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실상은 자신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그것에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파이어 아벤트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과학에서도 엄격한 합리적 이성의 검증으로 이론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이거나 정치적인 시각 등의 비이성적인 이유로 이론이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과학 역시 믿음과 도그마가 작용하고, 냉정한 관찰과 엄격한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 속에서 우연히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로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는 않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는 것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성과 합리성의 마지막 보루라고 믿었던 과학자들 마저도 그렇다. 결국 모든 인간은 확증편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조금 더 심하고 덜 하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믿음. 선입견. 확증편향. 시뮬라크르. 기호 가치. 관찰의 이론 의존성.

결국은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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