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예술가, 사기꾼
미친놈과 예술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이해가 잘 안 가고,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이 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셸 푸코는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오늘날에는 미친 사람을 그저 비정상적이고 정신이 나간 사람으로 보지만 유럽의 16세기에는 미친 사람을 어떤 심오한 진리와 연결된 사람으로 봤었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의 인식의 트렌드 변화와 프레임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미친 사람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태도에도 과거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복합적이고 이중적이다. 푸코의 말대로라면, 과거보다 오늘날의 시선에 부정적인 느낌의 비중이 높아졌을 뿐이다.
미친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있다. 그것을 보통 ‘광기’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비슷한 것을 예술가에게서도 보고, 그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짓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친놈과 예술가는 같다.
꽤 오래전에 첫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다. 내 작업실에 우연히 들어온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돈은 좀 벌고 사느냐?, 돈이 안 되는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돈이 안 되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나이도 적지 않고 가족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말들을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나와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내가 전혀 어렵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꽤 무례할 수도 있는 말들을 내 심장 과녁에 쏘아 댔다.
사실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런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여?…’, ‘이해도 안 가고 그닥 공감도 안 되고, 아무리 봐도 돈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런 쓸데없는 것 같은 짓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들 말이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작가이거나 또는 거대한 권위와 자본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들 앞에서는, 뭐 하는 짓인지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것은 짓이 아니라 어떤 숭고한 행위로 비쳐진다.
무언가 어려운데 당당한 것이 존재할 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 “혹시 나는 닿지 못하는 어떤 것에 저 사람은 닿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경외감과 굴복감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그런 것인가?” 하는 신비스러운 마음과 “별 것 없고, 그저 정신이 나간 것뿐이다.” 내지는 “미친 척하는 것이다.”의 의심스런 생각이 다양하게 섞여서 존재한다.
양 극단의 그 모순적인 감정은 꽈배기처럼 회오리치며 동시에 존재한다. 경외감과 무언가 농락당하고 있는 것 같은 불쾌감, 신비감과 별 것 없을 것이라는 짐작.
그것은 포커 게임이나 섯다 놀이를 할 때, 흔들리지 않는 포커페이스나 타짜 고수를 마주할 때의 느낌과도 비슷할 것이다.
자 거기다가 또 하나의 막강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사기꾼’까지 넣어보자. 예술가와 미친놈과 사기꾼. 사전적 정의도 다르고, 우리는 그것들이 구분되고 그것들 사이에 명확한 경계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경계선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 파고 파보면 그 경계선은 흐려진다. 결국 그 경계선은 허상이다.
결국 그들 사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 구분이 되고 규정이 되어 있을 뿐이지 안으로 본질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구분이 애매해진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라고 결과적으로 인정을 받고 판명이 났다고 해서, 그 작가와 작품을 이루는 본질들이 완벽하게 진실이고 좋은 것일 수만은 없다.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무결점일 수는 없고 100% 진실로만 구성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대한 예술가라고 해도 인간일 뿐이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사기꾼으로 규정된 사람도 100% 거짓으로만 구성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진실과 거짓과 애매한 것들이 카오스처럼 섞여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아마도 그 사람은 거짓의 비중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사기꾼으로 규정이 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억울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참과 거짓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믿음이 있을 뿐이다. 그 지점에서 예술과 종교는 같다.
카드 속에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예술가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행동이나 작품을 하는 것을 자주 떠올린다. 우리는 무언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것에 대해 위축됨과 동시에 신비감과 동경을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그저 아무 의미 없는 것인지, 당장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무언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수준 높은 것인지를 식별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별 의미도 없이 신비감만 조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고 아무것도 없다고 확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집단지성의 힘에 의존하려 한다. 몰라도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리 없는 유명하지 않은 작가라면 별 신경 안 써도 된다. 하지만 유명한 작가라고 하면, 모르면 나중에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알면 아는 척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난해하고 도무지 와닿지 않는 무언가를 고난이도 수수께끼 문제 풀듯이 끙끙거리며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심사와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고, 누구도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믿음과 이해한 척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더 이상 질문이 생기지 않는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더 깊이 체험한 누군가의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 던져진다면 그 완벽함이라는 것은 나약하게 허물어질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난이도가 낮고 대중성이 높은 문제도 그렇고, 더 깊이 들어간 문제들을 대할 때는 각자마다의 이해가 있을 뿐 완벽한 이해는 누구도 불가능하다.
애당초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니 답을 몰라도 괜찮다. 애써 답을 아는 척할 필요도 없고, 모른다고 무식하단 소리 들을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정도의 문제인식 정도로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