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작가 인터뷰를 하다가, “나에게 성공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전 질문 대본을 준 것이 아니어서 갑작스런 질문에 멋있는 대답을 준비해놓지 못한 나는, 잠깐 있어 보이는 답변을 찾으며 버벅거리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그냥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버는 것 아니겠냐?”라고 뻔하고 속물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운, 아무튼 가오는 안 나는 대답을 했다.
그때 나는 대답하면서, ‘아니 몰라서 물어? 이런 뻔한 대답 아니면 가식적인 대답 밖에 나올 게 없을 텐데, 이런 통속적인 질문을 소모적으로 왜 하나?’ 하고 속으로 툴툴 댔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터뷰어는 정말로 내게 예술가로서 무언가 심도 있고 자신의 진지한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답변을 기대했던 것 같다.
인터뷰어도 미대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미대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고민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더 현실적인 일을 하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비합리적이고 무모해 보이는 이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이유가 정말로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런 뻔한 대답을 할 사람이라면, 이렇게 힘들고 보상의 가능성이 희박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언가 자신의 궁금증을 해갈시켜 줄 그런 대답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멋있는 생각과 대답을 찾지만, 그것이 가식적이기는 싫다. 그것은 티가 난다. 그럴 바에야 솔직하게 천박한 것이 차라리 낫다. 그래서 어렵다. 가식적이지 않고 공감이 되면서도 멋있고 좀 더 창의적이고 만족스러운 답변이 없을까? 솔직하기만 하고 뻔한 대답은 진부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 전에 밑바탕에 깔려 있는 그냥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마누라가 도망가지 않고 미안하지 않을 만큼만이라도 집에다 돈도 좀 갖다 주고, 내가 한 일들이 헛짓이 아니고 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정도?
결국 뭐 똑같은 이야기를 약간 다른 것처럼 조금 더 길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것뿐이네. 더 깊고 수준 높은 답변은 나에게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약간의 재치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반적으로 성공이라는 것은 꿈을 이루고 돈을 많이 버는 것 정도일 텐데,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가장 공통적이고 솔직한 것이지만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좀 천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 조금 더 깊이가 있고 무언가를 해갈시켜 줄 대답을 원하는 인간의 심리가 있다.
물질적인 욕망만으로는 왠지 불만족스럽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수준이 높고 깊이가 있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있다. 허영심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지적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런 표현만으로는 충족이 안 되는 어떠한 욕망이 있기는 있는데, 인간의 그런 욕망의 부름에 의해 태어난 것이 예술이다.
그렇게 인간의 욕망을 더 수준 높은 것으로 대체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예술인데, 예술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파고 파고 파 들어가 보면 결국 또 그저 그런 욕망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