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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ul 20. 2020

취준생의 요령

창비 문학3 기고

대기업의 인사 담당자 출신 유튜버는 취준생에게 말한다.     


경험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팀플 경험 하나만 있어도 됩니다.     


취준생에게 필요한 건 긍정력(力)이다. 자소서 속 우리는 모두 팀플에서 리더이거나 리더가 될 자질이 있거나, 적어도 누군가의 아주 충실한 팔로워다. 내가 불성실한 팔로워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유형의 취준생은 속도보다는 작업물의 퀄리티를 높이는 꼼꼼한 스타일로 포장하면 된다. 결국 긍정력은 ‘못해도(한 건 없어도) 괜찮아’라는 자기 위안의 일종이다. 마음속에 떡하니 자리 잡은 단단한 초조와 불안을 긍정으로 포장하지 않으면 취준을 이어갈 수가 없다. 긍정만이 취직의 길이다. 그래야 계속할 수 있고 그래야 언젠가 (어디든) 취직도 할 수 있다. 자타공인 부정인인 나는 취준 생활을 하면서 뜬금없이 긍정인이 되었다. 유튜버가 한 말이 결정적이었다.     


기업은 긍정적인 사람을 뽑아요.     


나의 모든 초점은 회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맞춰져 있었다. 표정부터 바꿨다. 길을 막는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나 외설적인 농담을 던지는 교수에게 쏠쏠히 제 역할을 했던 나의 또렷한 무표정에는, 옅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처음에는 살짝 웃는 일에도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시간은 역시 약이다. 뽑히고 싶은 열정적인 취준생과 뽑히게 만들 긍정적인 컨설턴트에게 둘러싸인 환경에서 프로 취준생으로 무럭무럭 자라다보니, 오마이걸 효정의 방긋방긋 웃는 얼굴을 보며 ‘나 같아도 저런 사람 뽑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처음 GSAT(삼성 인적성 시험)나 CJAT(CJ 인적성 시험)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기업은 왜 사람을 뽑기 위한 채용이 아니라 탈락시키기 위한 시스템을 만들었냐고 비난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지원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기업도 자원이나 시간 절약이 필요했겠지’라고 생각하고 만다. 비관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아차하며 취준생의 본분으로 돌아간다. 회사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좋게 말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을 통제하는 힘’을 차근차근 길렀다. 가끔은 기업이 국민의 정신을 어디까지 개조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아차!).     


3월경 학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에게 딱 맞는 자리에 사람을 구하는 학교 선배가 있다며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들어보니 연봉은 조금 (많이) 아쉬웠지만 취준이 길어진 탓에 기준이 내려가기도 했고 무엇보다 직무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고 전문성도 살릴 수 있어서, 늙어서도 혼자 벌어먹고 살 수 있겠다는 판단이 얼핏 섰다. 연락이 닿은 선배는 면접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고, 지방 사람인 나는 바로 서울에 올라갔다. 선배는 짧은 시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프로젝트 자체가 지연되었고, 자신도 이 프로젝트를 위해 이직했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4월의 총선도 문제였다. 해당 업무는 대기업의 외주를 받는 일이라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시작하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나에게 면접비를 건넸다. 오만원. 옆 사람과 허벅지를 맞대고 일반 버스로 왕복 10시간을 오가야 천 6백원이 남는 금액. 그래도 분위기를 보아하니 개인적으로 준비한 돈 같았다. 선배의 인성에 감동해 같이 일하고 싶은 마음만 더 커졌다. 목전에 다가온 기회가 코로나로 인해 날아가버리자 없어질 위기에 있는 직무는 여러모로 나와 꼭 맞는 자리인 것만 같았다.     

채용도 날아가고 공고도 안뜨도 시험도 취소되고 스터디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건 나에게 긍정력을 불어넣어줄 유튜버다. 어느 순간 이들은 취준 멘토를 넘어 인생 선배가 된다(내가 보는 유튜버는 모두 이랜드 출신이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떻기에 이토록 주체적인 스타 유튜버를 배출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이랜드 입사를 꿈꿨을 정도다).     


이제 기업들은 공채를 없앨 거예요. 경력이 답입니다. 작은 기업이든, 계약직이든 일단 들어가서 경력을 쌓으세요.     


그들만 믿고 직무와 연관된 것이라면 중소기업이든 아르바이트든 가리지 않고 지원했고, 기대보다 많은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시대에는 면접도 사이버다. 하루는 Google Meets로 하루는 Zoom으로 면접을 봤다. 화면 속 면접관은 버벅거리는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의 대답을 노트북에 기록해야 하는데 타자 소리가 방해될 수 있으니, 자신의 음성 시스템을 잠시 꺼놓겠다고. 그의 클릭 한번으로 타자 소리는 물론 기기 간의 연결을 증명하는 미세한 기계음까지 사라졌다. 각자 카메라가 아닌 모니터를 보았기 때문인지 서로의 시선들도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나는 나를 보지 않는 면접관의 무덤덤한 얼굴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과 일하기 힘드냐는 그의 물음에는 ‘모든 일에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때 내가 옅은 미소를 띠었던가?     


여전히 대면 면접을 보는 곳도 있었다. 내가 지방 사람인지도 몰랐는지 바로 다음 날 오전 10시로 면접 시간이 잡혀 있었다. 당일 오후로라도 시간을 늦추고 싶었지만 의욕이 없어 보일 것만 같았다. 알겠다고 말한 뒤 ‘감사합니다!’라는 을의 느낌표 끝맺음도 잊지 않았다. 당장 서울행 기차표를 끊고 아는 언니에게 재워 달라고 부탁하고 서울 친구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돌렸다. KTX에는 에스컬레이터의 한줄 서기처럼 사람들이 창가 쪽에만 줄줄이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사람과 건물과 나무와 그밖의 무수한 것들이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재빠르게 지나갔다. 검은 터널에 들어간 내 오래된 핸드폰은 서울 친구들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가방 앞주머니에는 일회용 마스크 3개와 면 마스크 1개가 들어 있었고, 나는 잠깐 졸았는지 살짝 몽롱해졌다.     


부산에 돌아오자 그때 만났던 서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태원에 감염자가 있었다고. 우리는 이태원 술집에서 일루미나티에 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모르는 권력집단이 국가를 넘어, 세상을 넘어 우리의 생각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우리는 억압당하고 있다고. 일루미나티의 회원이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너무나 많다고. 개인들의 증언을 못 믿을 이유가 뭐냐고. 공인된 뉴스라고 진실만 이야기하냐고. 언론도 결국 권력집단 아니냐고.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 어쩌면 국민을 쉽게 조종하기 위한 개소리일 수도 있다고. 양쪽 벽에 거울이 붙어 있어 무엇이든 끊임없이 복제하는 그 컴컴한 지하 방에서 우리는 값싼 맥주를 마셨다. 소맥도 말아 마셨고, 담배도 피웠고, 취했고, 우울한 감성에 젖었다가 머쓱해져 격앙되는 편을 택했다. 다행히 우리는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누군가는 조사 대상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미쳐 돌아버릴 것 같아. 너무 슬프고 심란해’라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는 내가 굳건히 쌓아왔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평정심이 민낯의 언어 앞에 덜컥거리는 걸 느꼈고, 얼른 유튜브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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