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여행
이태리 남부의 9월은 가을이라 하기엔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같았다. 태양은 한낮의 땡볕처럼 내리쬐고, 공기는 무겁게 느껴졌다. 소형차를 빌렸지만, 포지타노의 좁은 도로에서 운전하는 일은 미로 속을 헤매는 듯했다. 일 차선 도로에 대형 관광버스와 마주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대편은 절벽이었기에, 조금만 실수해도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지현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정말 깻잎 한 장 차이로 버스 운전기사가 지나간 거 알아? 난 긁히겠구나 생각했는데 말이야.”
24년 운전 경력의 지현이 조차 당황한 듯 보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산악 지역 특유의 험한 지형은 마을을 탐험하기 위해 차를 이용하는 것조차 도전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아말피 해안을 따라 펼쳐진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감탄을 자아냈다. 구불구불한 해남의 고랭지 밭을 닮은 도로를 따라 달리며, 바다가 숨었다가 다시 나타났다 하는 모습이 바다와 숨바꼭질하는 것 같았다. 절벽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궁금해 골목길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거리마다 묻어 나오는 삶의 흔적을 느꼈다.
엄마는 계단이 많고, 도보가 많은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쉽게 피로를 느끼셨다. 2년 전에는 조금 힘들어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종종 “여기서 좀 쉬자”는 말을 하셨다.
저녁식사를 위해 포지타노의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예상대로, 주차장은 없었고 1차선도 채 되지 않는 도로에는 차를 댈 만한 공간이 전혀 없었다. 주차장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던 우리는, 결국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늘 하루가 길었던 엄마에게는 그 계단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남부의 여행지들은 대부분 도보로 다닐 곳이 많고 계단이 많았다. 그래서 지현과 나는 모든 일정에 차량을 빼러 가고, 엄마와 언니는 한 곳에서 기다렸다. 엄마는 이런 상황을 미안해했다.
젊은 시절에 여행하지 못한 엄마가 딸들에게 의지해 여행을 즐겨 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몸이 마음 같지 않았다. 엄마의 그 마음이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제 엄마와의 여행도 점점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저녁이 다가오면, 포지타노의 마을은 황홀하게 빛난다. 일몰 후, 하늘은 붉게 물들고, 바다 위로 길게 늘어진 햇살은 마을의 집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하루를 정리하는 순간, 포지타노는 더할 나위 없이 빛나며 마을을 환히 비춘다. 그 어두운 시간 속에서 빛나는 포지타노의 모습은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는 듯했다.
엄마의 나이대가 되었을 때, 포지타노처럼 어둠 속에서 더 밝게 빛나는 하루를 살기를 꿈꾸며, 남은 모든 날의 매일이 가장 빛나는 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