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이탈리아 남부 2019년 9월 9일~23일
내년을 기약했지만, 서로 바쁜 일상에 밀려 2년이 흐르고 말았다. 엄마와 우리 자매들은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다시 모였다. 그 사이에 엄마는 84세가 되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보러 갔던 운전 담당 지현과 통역 담당 은주는 피렌체에서 나폴리로 이동했고, 엄마와 네비 담당 은경은 프랑스에서 나폴리로 향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의 감동은 언젠가 브런치에 기록할 예정이다.) 그때는 누구도 이탈리아 남부가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20년, 전 세계적인 이상 질병으로 하늘길이 막혔고,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던 근육으로 인해 엄마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걸음을 걷지 못하는 고통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은 나폴리를 시작으로 카프리섬, 푸른 동굴, 폼페이, 소렌토, 포지타노까지 이어졌다. 그 기억들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엄마는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으시려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애청자가 되셨다. 그 프로그램에서 여행한 곳이 나오면, 그곳 이름을 외우려고 애쓰셨지만, 꼬블랑 말은 여전히 외우기 힘드시다고 하셨다.
나폴리에서는 하룻밤만 머물 예정이라, 방 두 칸과 작은 부엌이 딸린 숙소를 예약했다. 나폴리역 근처의 밤거리는 북부와는 달리 술 취한 사람들과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남부 해안 도로를 따라 운전하는 것은 운전을 좋아하는 지현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며 엄마는 어릴 적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엄마의 고향은 음악시간에 배운 것처럼 복숭아꽃 와 살구꽃이 피는 산천이 아니었다. 평야로 둘러싸인 별것 없던 고향을 왜 그리 그리워하셨는지,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내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민족의 비극인 6.25 전쟁을 겪고, 산업화를 지나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을 보며, 엄마의 인생과 닮았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머리에 드는 지식은 돈과 달라서, 누가 훔쳐 가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나누어주면 달아나지 않으니"라고 하시며, 엄마는 딸들이 많이 배우고 많이 나누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셨다.
파리 유람선만 타본 엄마를 위해, 소렌토에서 푸른 동굴로 보트를 대여해 들어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사실, 입장료가 비싼 푸른 동굴보다 보트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초록 동굴을 더 추천한다. 파도가 거세게 입구를 막아 못 들어간 적이 있었던 푸른 동굴을 이번엔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는 4인용 작은 보트를 옮겨 타는 사람들, 팁을 요구하는 사람들, 입장료를 걷는 사람들로 장터처럼 북적였다. 파도가 너무 거세서 동굴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동굴 안은 그야말로 고요하고 잔잔했다. 뱃사공은 노래 한 곡에 입장료만큼 팁을 요구했는데, 그가 아니었더라면 험한 바다에서 빠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20유로를 주었다.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살았다는 안도감과 이런 험한 일을 돈을 주고 당해야 하냐는 엄마의 말에 우리는 모두 빵 터졌다.
그날의 청명한 날씨와 짭조름한 바다 냄새 유쾌한 지여사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