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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브로브니크(Dubrovnik) - 엄마와 서커스

크로아티아

by Eunju song Mar 15.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아름다운 바다, 한가로운 오후,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 고요한 마음의 휴식처인 스플리트를 뒤로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두브로브니크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를 숨은 보석 같은 바닷가에서 밥에 햄, 마약계란을 쓱쓱 비며 김과 함께 먹었다. 점심은 소박하지만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그럼에도 사발면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길바닥에 앉아서는 물도 안 마시는 엄마는 바닷가 바닥에 앉아 먹는 도시락이 재미있는지 연신 수다에 빠져 있었다.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하니 해가 졌다.  대도시답게 주차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엄마를 우선 숙소로 모시고 차는 1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곳에 세워 두었다. 계단이 많은 두브로브니크는 엄마에겐 좀 힘든 곳이기에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을 우선 파악해야 했다.


다음날의 구시가지 산책은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현지 예술가들의 거리 공연을 구경하던 중, 엄마는 어릴 적 서커스 공연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주셨다.

‘너는 서커스 잘 모르지? ’

겨울 시골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봄, 여름, 가을은 농사일로 바쁘지만 겨울은 사랑방에 모여 군고구마를 먹으며 수다를 떨거나 바느질을 했다.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서커스가 장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때부터 며칠 동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몰래 쌀 한 되를 보자기에 넣어 동생들과 구경을 가는 것이 겨울철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현금이나 카드를 주고 표를 사는 것이 아닌 곡물로 표값을 대신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사라진 서커스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엄마는 정부가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계신다.


다음날 오전, 한번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기 쉽지 않은 계단 지옥을 내려가며 수영복과 물놀이 용품을 단단히 준비했으나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은 바다가 아닌 절벽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돌았던 반대편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없을 거라는 생각에 포기한 것이 아쉬웠다. 결국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지 못하고 마지막 저녁을 허비해 버렸다.


인간 네비 언니의 정보력으로 두브로브니크의 숨은 선셋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길 찾기가 쉽지 않았고, 운전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차가 다니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좁은 1차선 도로에  언제 차가 내려올지 모르는 긴장된 순간을 지나면 두브로브니크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올라가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해가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지붕,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맞닿은 하늘은 붉은 오렌지 빛으로 바다를 물들이며 점차 도시의 색을 바꾸었다.  하늘이 붉은색으로 커져가더니 도시 전체가 바다 위에 황금빛 불이 붙은 것처럼 빛이 났다. 탄성이 나왔다.  우리의 크로아티아의 추억을 잊을 수 없게 완성해 주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어느 여행이건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다. 첫날의 항공기 부도 사건으로 원래의 계획이었던 저녁 7시 비행기 대시 낮 12시 비행기로 변경된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다. 인간 네비 은경은 다시 그녀의 길을 갔고 우리는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번엔 이태리 남부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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