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첫째 날 그녀와의 만남

노르웨이 피오르드 크루즈

by 은주

영어에 ‘포쉬(Posh)’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에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라이프스타일’로 정의되지만, 그 어원은 크루즈에서 비롯되었다. <Port Out, Starboard Home>, 가는 길엔 좌현(Port), 돌아오는 길엔 우현(Starboard) 쪽 객실을 예약하라는 뜻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항해할 때, 햇볕을 피하려면 가는 길엔 좌현, 오는 길엔 우현 쪽 객실을 선택해야 했다. 물론 이 객실은 추가 요금을 내야 했고, 그래서 크루즈에는 '클래스'가 존재했다.


10여 년 전,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노르웨이 출신 니콜라이 욘센이 소개한 ‘피오르드 크루즈’. 그 방송 이후, 내 마음속에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는 버킷리스트가 하나 생겼다.

사는 게 바빠 잊고 살았다. 올 1월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본 크루즈 광고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신랑은 크루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돈으로 클래스가 나뉘는 분위기를 불편해했다.

하지만 "내 열 가지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못 이뤘다"는 내 볼멘소리에 결국 예약을 하게 됐다.


타이타닉호의 출항지였던 사우스햄튼 포트에 도착했을 때, 정박해 있는 그녀를 보고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약간의 묵념과 함께 영어에서는 왜 배를 “she”라고 부를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영국인 누구에게 물어봐도 명확한 대답은 없었다. 아마도 대부분이 남성이었던 선원들에게 배는, 지켜야 할 그녀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탄 배는 P&O 선사의 IONA(아이오나)라는 이름의 배였다. 총 5,200명의 승객과 1,800명의 승무원 그리고 2,614개의 객실, 8개의 레스토랑이 배안에 있었다. 영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크루즈선이었다. 참고로 1914년 타이타닉호는 승객 2,400명, 승무원 900명 규모였다.

처음 경험하는 크루즈 여행은 시작은 매끄럽지 않았다. 주차 예약 안내를 사전에 받지 못한 관계로 배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20분은 걸어야 하는 곳에 겨우 주차했다.

크루즈에서는 정보가 곧 권력이라는 걸 그때부터 알게 됐다.

예전에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공간은 정보들이 공개되지 않아서 여전히 아는 사람만 찾을 수 있었다.

5,200명이 동시에 체크인해야 했기에, 우선 체크인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했다.

정오에 탑승한 후, 출항 시각인 오후 6시까지 아이오나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짐을 풀고, 가져온 와인을 냉장고에 넣자 객실 담당 승무원이 인사를 왔다.

필요한 것을 묻기에 "얼음"을 부탁했고, 그는 단 한 번도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그의 서비스 덕분에 이안과 나는 객실 발코니에서 매일 오후 4시에 진 앤 토닉을 즐기는 작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객실에서 바라본 바다

오후 5시 30분, 출항 파티가 가판에서 열렸다. 역시 정보 부족으로 놓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매일 객실에 비치되는 신문, <Horizon>을 구멍이 나도록 읽었다.

다음 날의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야외 월풀욕조 시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루를 ‘계획’하며 살았다. 휴가를 위해 왔는데 여전히 계획이라니 좀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제야 비로소 선상에서의 하루가 온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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