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피오르 크루즈
RIB 투어를 마친 후, 게이랑에르 피오르를 선실 안에서 바라보며 커피를 만들었다. 반대편 객실 창밖으로는 노르웨이의 작은 피오르 마을, 헬레쉴트(Hellesylt)가 보였다. 커피 광고 속 한 장면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여행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눈과 마음이 분주해졌다.
흰 비단 같기도, 신부의 드레스 자락 같기도 한 폭포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리 쪽으로 향했다. 교회를 기점으로 한 바퀴 도는 산책 코스를 걸으니 40분 정도 걸렸다.
산책 중,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된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 베니스에서 보았던 피에타상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런 전시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마을 풍경 속, 그 오토바이는 어쩐지 이질적이었지만 동시에 특별했다.
잠시 생각했다. "톰이라는 크루즈도 있나?" 영어 오류 같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알고 보니, 노르웨이 헬레쉴트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2023)의 촬영지였다. 헬세트코펜(Helsetkopen) 절벽에서 톰 크루즈는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 아래로 질주하다 중간에 오토바이를 버리고 몸을 던지는 전설적인 스턴트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헬세트코펜까지는 하이킹으로 갈 수 있고, 총길이 12km, 소요 시간은 약 6시간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꼭 하이킹 프로그램을 찾아봐야겠다. 전기 자전거 투어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사전 예약을 못한 게 아쉬웠다. 피오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
내려오는 길에 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블랙커피 한 잔을 시켰다. 짝꿍 이안은 퇴직 후 경제 관련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쉬러 왔다면서도 휴대폰을 계속 만지작거린다. 혹시 인터넷이 되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어디를 가든 무료 와이파이 스팟을 찾는 모습에서 금단현상이 일어난 듯하다.
의외로 노르웨이 커피는 꽤 맛있었다. 아마도 여행이 주는 여유가 커피 맛을 배가시킨 걸지도 모른다. 조금 걷다 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브라운 치즈 사와.”
여행 전, 언니가 스치듯 말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캐러멜 색의 치즈가 빨간색과 노란색 포장으로 진열장 한 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기 상품 같았다. 글도 모르고,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에 구글 번역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휴먼 찬스’.
“인기 있는 치즈는 어떤 거예요? 빨간색이랑 노란색 차이는?”
영어를 능숙하게 스는 직원이 미소 지으며 "한국에서 왔어요?"라고 물었다. 빨간색이 더 진하고, 더 인기 있다고 친절히 설명해 줬다. 덕분에 여러 개를 샀다. 원래는 한 개만 살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손님에게 지갑을 더 열게 만드는 건 회사 입장에선 큰 자산일 것이다. 영어에선 ‘그녀는 우리 회사의 자산이다’라는 표현도 있으니까.
돈을 높은 가치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존중받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사회를 소망해 본다. 헬레쉴트에서의 단 하루,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