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르 속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노르웨이 피오르 크루즈

by 은주

안전벨트 없는 바이킹을 타는 듯했다. RIB (Rigid Inflatable Boat)이라 불리는 고속 고무보트를 처음 탄 날이었다. 큰 배가 들어갈 수 없는 게이랑에르 피오르드의 깊은 협곡을 가기 위해서다. 현광색 구명복과 방수복, 보안경을 쓴 16명의 ‘미니언즈’가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U자형 계곡의 입구에 도착하자 보트는 속도를 올렸다. 아침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보트 위에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손마디는 하얗게 변해 있었다. 파고드는 찬 바람은 날카롭고, 물안개는 촉촉했다.

피오르드의 공기는 맑지만 싸늘했고, 산의 높이는 안개로 인해 가늠조차 안됐다.

수직으로 솟은 절벽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어두운 청색의 물은 SF 영화 속 깊은 바다처럼 보였고 물아래는 용이 잠들어 있는 듯 고요하고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아침 햇살은 산 너머에서 스며드는 중이며, 안개를 뚫고 절벽 사이를 가르며 피오르를 비추기 시작했다. 초록빛 산허리, 하얀 물줄기를 뿜어내는 일곱 자매 폭포, 그리고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작은 집들. 그 모든 것들이 차례차례 물안개를 밀어내며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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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위, 믿기 어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깎아지른 절벽, 그 높은 곳에 집이 세 채, 각각 다른 봉우리에 얹힌 듯 서 있었다. 사람이 살기엔 너무 높은 자리였다. 가이드는 이곳이 한때 염소를 키우고 우유와 버터를 만들어 팔던 농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높은 곳에 터를 잡은 건 국세청에서 찾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징수하는 세금을 피해 올라올 수 없는 곳에 살았다. 국세청은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그들을 내려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농장주는 산길을 따라 걷다가 마지막 40분은 암벽등반으로 집에 도착했다는데 상상이 되지 않았다. 주인과 국세청 직원의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이 집들은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버려진 느낌이 아니다. 심지어 정돈된 앞마당, 막 칠한 듯한 지붕을 가지고 있었다. 추운 노르웨이 날씨에 1층은 가축을 키워 온기로 방안을 데우게 했고 2층부터 사람이 거주했다.

봉우리 위의 집들은 꼭대기에서 묵묵히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람, 햇살, 이끼, 비, 산, 바다.. 그 안에서 이 세 채의 집은 여전히 산을 지키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이 집들을 지킨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식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일곱 자매 폭포에 도착하자 보트의 속도가 잦아들었다. 양옆으로 솟아오른 절벽에서 수십 개의 폭포들이 하늘에서 바다로 흘러내린다. 이름은 일곱 자매 폭포지만 실제는 여덟 가닥의 물줄기이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비단처럼 부드럽고 가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거센 물기둥과 안개, 포효하는 소리가 피오르 전체를 뒤흔들었다. 폭포 아래로는 물보라가 일고, 정적 속에서 폭포만이 드럼처럼 리듬을 연주했다. 처음 발견 당시는 일곱 줄기였지만 이제 지구 온나화로 여덟 줄기 인걸 보며 마음이 무거웠다. 빙하의 눈물에 인간이 미안하다는 작은 사과를 건넸다.

그 맞은편 절벽에는 ‘신랑 폭포’가 외롭게 떨어져 있었고. 일곱 자매 폭포를 향해 구애하는 듯했다. 물줄기는 크지 않지만, 절벽을 따라 구불구불 내려오는 그 곡선이 조심스러웠다. 그의 구애는 이루어졌을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브뤼달 폭포(면사포)’를 발견한 후 이루어졌을 거라는 답을 얻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얇은 물줄기들이 절벽을 타고 떨어졌다. 물살은 면사포처럼 투명하고 섬세했다.

안갯속 피오르드 속에서, 삶의 소란이 잠시 멈춘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의 조급한 발걸음, 끝없이 쏟아지는 인터넷 정보들, 상처 주는 주고 상처받는 일상들이 물, 바위, 고요만이 존재하는 다른 세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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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물줄기 소리와 달리, 피오르드의 안개, 바다, 절벽은 서로를 깨우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의견이 같지 않으면 비난하고 반목하는 나의 세상과 달리, 서로 비난하지 않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는 속삭임이다.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위로가 이곳에 있었다. 내가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 작은 존재 안에 원망, 시기, 분노, 사랑, 슬픔을 다 담고 사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위로를 건넨다. 세상과 분리된 것 같은 노르웨이의 깊은 골짜기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치유해 준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침묵이 무엇보다도 큰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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