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피오르 크루즈
‘잠시 후, 본 크루즈는 게이랑에르피오르드를 시작으로, 순뉠브스피오르(Sunnylvsfjorden)를 지나 스토르피오르(Storfjorden)까지 약 1시간 30분 동안 피오르드를 항해할 예정입니다.’
출항 이후 단 한 번도 방송하지 않던 선장이 안내 방송을 했다. 진 앤 토닉 한 잔을 들고 여유를 즐기던 그 순간,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이 크루즈는 각자의 쉼과 생활을 존중해, 불필요한 방송을 지양해 왔다. 그래서일까. 이것이야말로 이번 7박 8일 일정 중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직감했다.
나는 가장 좋은 전망대, Crow’s Nest로 향했다. 자리는 이미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 술을 들고 오가는 웨이터들, 책을 읽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렇게 넓은 공간이었지만, 빈 두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오른쪽 끝으로 갔다가 왼쪽 끝으로 돌아오는데 두 명이 자리를 뜨는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앉아 있는 4인용 테이블. 그곳에 비어 있던 두 자리.
배는 계속해서 명화 속 한 장면처럼 흘러가고 있었고, 나 역시 감상할 자리를 찾아야 했다. 나는 이미 반쯤 걸터앉은 상태였다.
“여기 자리 없으면 우리 좀 앉을게요.”
“없어, 앉아.”
우리의 다급함을 이해하듯 웃으며 얼른 안으라고 손짓까지 하면 말한다.
지금 펼쳐진 이 피오르드는, 인생으로 치면 퇴직 후 건강이 저물기 전의 가장 황홀한 시기이고, 프리미어리그로 치자면 첼시와 토트넘의 빅매치 같은 구간이었다.
정확히 어디가 어디인지, 경계는 모호했다. 아침에 미니언 복장을 하고 다녀온 게이랑에르에서 한 굽이만 돌아 나오자, 순뉠브스피오르(Sunnylvsfjorden)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폭은 게이랑에르피오르와 비슷했지만, 깊이는 두 배였다. 물은 강처럼, 움직이지도 않은 채 고요히 흘렀다.
폭포들로 분주한 게이랑에르와 달리, 순뉠브스는 느긋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평가하긴 어렵다. 각자의 방식으로, 둘 다 피오르의 일인자였다. 햇살은 수면 위로 일렁이며,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항로는 마침내 큰 피오르드, 스토르피오르(Storfjorden)로 흘러들었다. 길이 약 110km, 노르웨이에서 다섯 번째로 긴 피오르드의 끝자락이자, 완전히 열린 공간이다. 섬과 산이 얽히고설켜, 드넓은 수평선이 펼쳐졌다. 바다와 산은 더 이상 나뉘지 않았다.
하늘, 산, 물. 이 세 가지 색만이 세상을 지배했다. 주변은 높이 500m에서 1,800m에 이르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들과 병풍처럼 펼쳐진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들. 용이 잠든 듯한 검은 강물, 그 속에 숨어 용의 아기들이 살 것 같은 길고 뾰족한 절벽 사이로 둥그스런 산맥들이 있었다.
다채로운 꽃도, 형형색색의 집도 없다. 그저 푸르고 간혹 초록을 띠는 산맥뿐이다. 자연은 경쟁하지 않는다. 조화롭게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빙하가 깎아 만든 협곡은, 아무 말 없이 그 모든 시간을 품은 채 흐르고 있었다.
물결 하나 없는 고요한 수면 위. 눈이 부셔서 눈물이 고인 건지, 아니면 '비정상회담'을 보고 가고 싶은 곳 아니 잊고 있었던 곳을 10년 넘어 찾아낸 감동 때문인지 모른다. 바쁘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있었던가.
복잡한 감정 속에서 누군가 연주하는 조용히 흘러나온 피아노 선율. 크루즈의 꼭대기, 19층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산맥과 나란히 걷는 듯한 풍경. 우리 배 옆으로 작은 보트들이 흔들리며 스쳐 지나갔다. 그 출렁임만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었다.
큰 산맥이 사라지면 또 다른 큰 산맥이 나타난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지는 그 단조로운 풍경이 눈으로, 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우리 인생도 어쩌면 단조로운 것이 지루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 아닐까? 새로운 것만이 특별한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