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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CCTV

영국 남자, 한국 여자

by 은주

창문 너머로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한밤중 작은 동네가 술렁였다. 저녁 일곱 시만 넘어도 인적이 드문 마을인데, 밤 열 시 사십 분에 들려온 소음은 낯설었다. 붉은 불빛이 커졌다 작아졌다. 커튼을 살짝 걷자, 경찰차 위 불빛이 네온사인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두 대나 들어온 걸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늦은 밤 구급차는 가끔 보았지만, 경찰차라니 불길했다.


다음 날, 형광 조끼를 걸친 건장한 경찰관 둘이 집 앞에 나타났다. 잘못한 일은 없지만 괜히 긴장됐다. 하지만 영국 특유의 동그란 경찰관 모자를 머리에 썼다기보다는 얹어놓은 듯한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참았다. 거친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그는 물었다. “어젯밤 낯선 사람 못 보셨나요?” 설명이 서툴러 이안을 불렀다. 우리 집 차고 지붕을 넘어 옆집 욕실로 들어간 흔적이 있다는 것이다. 옆집 차고와 우리 집 차고는 나란히 붙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쉽게 기어오를 수 있었다.

아파트에 살다 신혼 초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차고 사용이 익숙지 않아 문을 열어둔 채로 잠든 적이 있었다. 그래도 아무 일 없는 동네라 늘 안전하다고 믿었다. 뒤숭숭한 마음으로 새벽에 문을 확인하러 나가는 내가 낯설었는지 이안이 문단속은 자신이 하겠다고 일어났다.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둑은 잡았대?”

“아니. 사망 사고도 아니고 잡기 힘들지. 노트북이랑 보석 몇 개가 사라졌다더라고.”

“기분이 더럽겠다.”

물건의 손실보다, 누군가 자신의 공간을 허락 없이 뒤졌다는 사실이 더 소름 끼쳤다.

옆집은 은퇴 후 노년을 즐기던 부부였다. 남자는 하얀 수염을 기른 KFC 치킨 집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를 닮았고, 부인은 ‘호호 아줌마’처럼 환한 웃음이 매력적인 분이었다. 유기견 봉사를 같이 다니는 모습을 가끔 문밖에서 지켜보곤 했다. 강아지 만두와 함께 산책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고작 “Sorry to hear about the burglary. Are you okay?” <도둑이 들었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세요?>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도 부부가 여행을 간 사이에 도둑이 들었다. 우리 집이 아님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다. 부부는 곰곰이 생각하다 우유 배달을 끊기로 했다. 여행 때마다 배달을 중지했으니, 그들이 여행을 가는 사실을 아는 건 배송 업체뿐이라는 것이다. 듣는 순간, 겁이 났다. 우리도 얼마 전부터 그 업체로부터 우유 배달을 받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전화번호가 두 개씩 눌러졌다. 옆집에 도둑이 들어 배달을 취소한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이유였다. 각박한 세상에 한몫 보태는 것 같아 미안했다.


얼마 후, 옆집 부부가 샴페인을 들고 찾아왔다. CCTV를 설치하려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문제는 그 화면이 우리 집 차고와 정원까지 비추게 된다는 것이었다. 매일 강아지와 뛰노는 모습, 여름이면 정원에 텐트를 치고 캠핑하던 모습까지 찍힐 걸 생각하니 불편했다. 자기 집에서조차 행동이 제약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두 번이나 도둑을 맞은 이웃의 사정을 생각하면 마냥 반대할 수도 없었다. 망설이는 나와 달리, 이안은 흔쾌히 설치하라고 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마찰이 많이 생긴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의 이야기가 되니 이기적인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함께 산다'라는 말의 의미를 머리로만 생각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전형적인 영국 개인주의자라고 여겼던 그가, 그날은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사람으로 보였다. 오히려 자신을 이타적이라고 믿는 이들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날 바로 내 맘속에 먼저 들었던 생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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