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한국 여자
우리 집, 욕실 안으로 들어서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것은 도자기로 만든 물고기다. 햇살 좋은 일요일, 이안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내려왔다. 나는 거실에 앉아서 유튜브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평소 어지간한 일에 화를 잘 내지 않는 그였기에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았다.
“왜?” 내가 한국말로 묻자, 그는 늘 그랬듯 장난스레 “왜~~” 하고 따라 웃는 대신, 이번엔 정색하며 말했다.
“왜가 아니고, 물고기가 깨졌어. 네 조카가 깬 거 아니야?”
그 물고기는 파란빛이 도는 도자기 장식이었다. 손잡이처럼 잡아당기면 불이 켜지는 독특한 전등 스위치였다. 이안이 20년 넘게 애지중지하던 물건이었다. 신혼 초에 내가 실수로 세게 잡아당겼다가 튕기면서 한 번 깨뜨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는 괜찮다며 본드로 정성껏 붙여 놓았었다. 그런 물건이 이번에 또 깨진 것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 조카가 깼다는 확증 편향의 말에 화가 났다.
“뭔데 내 조카를 끌어들이는 거야?”
“여기 너 아니면 나, 그리고 조카밖에 없잖아. 네가 깼다면 얘기했을 테고, 나는 아니니까 결국 조카겠지.”
3주 전부터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영국에 온 두 번째 조카가 우리 집에 머물렀다.
첫 번째 조카가 영국에 온다고 했을 때 그는 꽤 너그러웠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이니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야. 취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 있으라고 해. 한 달이면 되겠지?”
그의 제안에 고마우면서도 불안했다.
“한 달 안에 취업이 안 되면?”
“계속 같이 살 수는 없어. 우리도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그 이상은 무리야.”
단호한 말투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혹시 취업하지 못한 조카를 내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집이라고 유세하는 거야 뭐야?’ 속으로는 불만이 일었지만, 사실 나는 가끔 마더 테레사라도 된 듯 부탁을 선뜻 받아들이고,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선의가 오히려 나에 대한 비난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때는 그의 단호함이 야박하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옳았다. 데드라인이 있었기에 조카는 한 달 안에 취업했고, 지금은 4년 차 직장인으로 잘 지내고 있다.
그다음 온 조카는 모든 면에서 조심스러웠다. 이모 집이라 해도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 집이 없다는 서글픔은 쉽게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유학 시절, 낯선 이와 화장실을 나눠 쓰며 이 넓은 세상에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방 한 칸조차 없음을 절실히 느꼈다. 반짝이는 집 불빛을 바라보다 눈물 흘리던 밤도 있었다. 남의 집이라면 차라리 편했을지 모른다. 오히려 이모 집이 더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조카는 성실히 취업 준비를 했고, 3주 만에 일자리를 얻어 4주 차에는 이사를 나갔다. 그리고 남은 건, 깨져있는 이안의 도자기 물고기 스위치였다.
“붙이면 되지.”
“깨질 수는 있어. 붙이거나 새로 사도 돼. 하지만 말은 했어야지.”
이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이사 준비하느라 너무 바빴나 봐. 내가 문자로 물어볼게.”
우리는 종종 ‘내가 사소하게 여기는 건 남도 사소하게 여길 것이다’라는 착각에 빠진다. 가령 엄마가 만들어 준 손수건이라던가 이름이 새겨진 하나뿐인 펜이 될 수도 있다. 물건에 추억이 붙으면 사소하지 않은 것이 된다. 조카에게 도자기 물고기는 그저 작은 물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안에게는 20년의 추억이었다. 혹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감사하다는 말은 쉽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내 잘못을 인정하는 듯해 꺼려질 때가 있으니까.
한국 여행 중 식당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 때 누군가 주의를 주면 죄송하다는 대신 “애들이 다 그렇지!”라며 당당한 부모들을 볼 때면, ‘저 아이들은 커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못 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사소한 일에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배우며 자란 탓일지도 모른다. 혹시 내 조카도 그런 어른이 된 건 아닐까 싶어 울적해졌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망설이던 어느 날, 조카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다.
“이모, 그동안 감사했어요. 너무 정신없어서 말씀 못 드렸어요. 물고기는 미안해요. 덕분에 이사도 잘하고 출근도 잘하고 있어요.”
다행히 내 조카는 ‘감사합니다’와 ‘미안합니다’를 말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