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부부 이야기

Ep 18. Between Two Couples

by 롤라

한국인들은 해외 어느 나라에서든 금세 알아볼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옷차림이나 행동만 봐도 '아, 한국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카메라를 맡긴 후 그 순간만큼은 전문 사진작가에게 빙의하여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준다.


다년간의 해외 경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린 것은- 찍어주신 분의 손가락이 사진에 더 크게 나오거나, 이곳이 바로 이 나라의 명소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풍경 하나 안 보인 채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나오거나, 도저히 의도를 알 수 없는 신기한 각도의 사진들은 대체로 외국인들의 작품이었다. 사진은 한국인이 찍어줘야 왠지 안심이 된다..


번지점프를 위해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유명한 액티비티 중 하나인 제트보트 예약 시간을 앞당긴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곳에서, 아주 소중한 인연이 된 6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 중년 부부와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한국인 신혼부부를 만났다.


https%3A%2F%2Fsubstack-post-media.s3.amazonaws.com%2Fpublic%2Fimages%2F196ea33e-bbe1-49af-8b80-32634ab7442f_4096x2730.png 두 부부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들

혼자 여행을 할 때의 장점은 어떤 여행지에서든 새로운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짜릿한 제트보트 여정을 함께한 후 자연스럽게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퀸스타운의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며 이 도시의 명물이라는 퍼그버거를 나눠 먹으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년 부부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았다. 중학교 공부방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함께한 평생 친구이자 부부인 두 분은, 이제 아이들도 다 키우고 직장도 은퇴한 후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살고 계신다고 했다. 여행사 패키지나 자식들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두 분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그 누구보다 신나게 여행을 즐기고 계신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특히 어릴 적 함께 본 영화 속 장소들을 찾아다니신다고 하셨는데, 두분이 좋아했던 1976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었던 프랑스 몽생미셸, 1969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다녀온 얘기를 하실 때는 너무 행복해 보이셔서 듣는 내가 울컥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같이 영화를 보며 저긴 대체 어딜까- 궁금해했던 곳들을 실제로 보니까 참 신기하더라고요." 남편분이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아내분이 "이 사람이 그때도 지금도 이렇게 로맨틱해요"라며 장난스럽게 받았다.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게 눈에 보였다. 함께 기억하는 영화 속 도시들을 하나씩 밟아가며 젊은 날의 추억을 소중히 꺼내어보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여행, 이보다 낭만적인 삶이 또 있을까 싶었다.


신혼부부도 인상적이었다. 아내분은 나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영어학원 원장이 된 멋진 커리어우먼이었고, 남편분 역시 대기업에서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분이셨다. 이 커플도 중년 부부와 마찬가지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같이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할 짝꿍과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두분의 프로포즈 스토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남편분이 눈물이 없는 편이라 아내분이 이 사람을 꼭 한번 울려봐야지- 결심하고, 결혼 준비 통장 하나를 개설해 꾸준히 돈을 입금하면서 입금자명이 기입되는 칸에 프로포즈를 위한 메시지를 계속 써나갔다고 한다. 결국 남편분이 이 통장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또륵 흘렸다는 해피엔딩!


이 사랑스러운 두 커플과 이야기하며 나의 결혼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봤다.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들을 만나거나 20대 후반이 되어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한다면 어떤 일상을 꾸려나가고 싶은지, 아이를 낳는다면 언제가 좋을지, 내 커리어 목표와 출산과 육아가 함께 갈 수 있을지 같은 것들.


일과 가족 중 굳이 우선순위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언니의 결혼식에 가겠다며 콜롬비아 교환학생을 미뤘던(그리고 코로나로 결국 못 가게 된..) 선택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듯이, 가족의 곁에 있고 싶어 중남미에서 일하는 삶을 후순위로 미뤄두었듯이, 내 인생의 제1원칙은 가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욕심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커리어와 가정 모두 잘 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가족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내가 결혼과 아이 생각까지 있다는 걸 듣고 깜짝 놀랐지만, 아직까지 나는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면서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천진난만한 꿈을 꾸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중년 부부처럼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추억과 안정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하면서, 신혼부부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성장하면서도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소소한 행복들도 챙기면서 살아가고 싶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우선순위에 두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나도 내 원칙을 지키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욕심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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