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26. When Faith Doesn't Become Hatred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를 우연히 보게 됐다. 날씨가 좋아 기분 좋게 친구들과 만나 카페 야외석에 앉아 있는데, 하필 우리가 있었던 카페가 반대 시위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의도치 않게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을 마주했다.
확성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들, 손팻말에 적힌 문구들- 온갖 혐오의 표현이 응집된 시위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일부 교회에서 나온 분들이 성경에 대해 언급하며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성 소수자 반대 목소리를 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시위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체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종교의 본래 모습은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날이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신앙을 가지지 않기로 선택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릴 적 좋지 못한 방식으로 종교를 강요받았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수업이 끝나면 하굣길에서 교회에서 오신 분들이 학생들을 붙잡고 전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께서 내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시며 교회에 가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아주 무서운 말과 표정으로 계속 나를 설득하려 하셨다. 어린 친구들에게 그 방식이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 오히려 반발심이 가득 피어올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씩씩거리며 불교 신자이신 우리 할머니와 유교의 시대였던 조선의 내가 아는 모든 위인들의 이름을 대며 이분들이 다들 지옥에 간다는 소리냐며 울먹거리면서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내가 초등학교 2-3학년 정도였던 터라 정말로 내 가족이, 내가 지옥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참 무섭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그날의 상황과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모든 교회의 신념이나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일반화하는 것은 절대 아니며, 지금은 친한 기독교 지인들도 많고 해외에 있을 때 감사한 분들도 많이 만나 오히려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더 크다.)
이 경험이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지 그때 이후로 교회에 가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프로그램의 한 코스로 방문한 교회를 방문한다고 했을 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교회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날 방문한 교회의 목사님께서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교회에 나오도록, 특정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덴마크 사회에 기독교가 이미 널리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믿음은 선택의 영역이라고 강조하시는 그분의 목소리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설명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그리고 이 교회는 실제로 동성 결혼식이 거행되는 곳이기도 했다. 덴마크는 세계 최초로 동성 시민결합 제도를 도입했고, 국교회 내에서도 동성 결혼식을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다. 교회 안은 평범했지만, 누군가의 사랑이 ‘죄’라고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공간을 더욱 편안하고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목사님께서 담담하게 말씀하셨던 “우리는 특정 교리보다 사회 통합과 관용, 평등의 가치를 우선시합니다.”라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퀴어 반대 시위에 참여한 분들도, 어린 시절 만났던 그 아주머니도 모두 그들 나름의 선의로 행동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어떤 종교든 그 본질은 사랑과 포용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적어도 믿음이 누군가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거나 존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