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일상

Ep 28. The Weight of Peace

by 롤라

덴마크 IPC(International People’s college)의 여름학기 오후 수업은 보통 덴마크의 사회, 정치, 문화, 역사에 관한 주제들로 채워진다. IPC 선생님 혹은 외부에서 초청된 연사분이 오셔서 한 주제에 대해 강의를 해주시고 다 같이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거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루는 그린란드 출신 덴마크 선생님이 오셔서,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역사와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신다고 했다.


부끄럽지만 이 시간 전까지 나는 그린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해 이슈가 되었다는 것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린란드는 한국의 23배 크기의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약 80%가 빙하로 덮여 있어,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인구가 약 5만 6천 명에 불과하고, 수도인 누크에만 2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관계는 복잡했다. 그린란드는 18세기부터 덴마크의 식민지였고 1979년에 자치권을 얻었으나 여전히 완전한 독립국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린란드만의 깃발, 언어, 정부와 의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 안보, 경제는 모두 덴마크의 통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시절의 동화정책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당시 덴마크는 강제 피임 정책으로 그린란드 여성들의 신체에 동의 없이 코일을 삽입했다고 했다.


IPC에는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있다. 나를 포함해 몇몇 친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필리핀, 브라질, 폴란드.. 우리나라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들 출신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왔지만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었다. 강의실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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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는 덴마크와의 관계를 재협상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완전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덴마크의 원조가 그린란드 전체 공공 수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린란드가 독립국가가 되기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음에도 식민지 시절의 아픔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부분을 덴마크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린란드 사람들의 상황이, 심지어 이제는 미국이라는 또 다른 강대국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고통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강연이 끝나자 많은 학생들이 강단 앞으로 나가 질문을 이어갔다. 나 역시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질문을 드렸다. 우리나라도 같은 역사의 아픔이 있어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일본과의 관계가 참 복잡한데, 그린란드 사람들은 덴마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쭤보았다. 내 질문에 그녀는 자신은 그린란드 사람이기도 하지만 덴마크에 오래 살아 이제 동시에 덴마크 사람이기도 하기에, 두 나라를 모두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 어려운 지점이라고 답했다. 그 마음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덴마크는 평화로운 나라다. 사회 복지도 선진적이고 거리도 안전하고 사람들도 친절하다. 하지만 그 평화 뒤에는 과거의 역사가 있고, 그 과거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 우리의 과거도 누군가의 침략 속에 있었으며,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조국을 떠나 난민이 되고, 누군가는 평범한 아침의 일상을 기도하며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경제가 풍족하고, 범죄가 적고, 거리가 깨끗한 것만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평화란 그런 안정 속에서도 자신과 다른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를 직시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적어도 함께 짊어져야 할 것들에 대해 인지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계속 질문을 던지면서- 기억하고 말하며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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