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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과 따뜻한 마음

by 벤자민 Benjamin

춥다. 바람이 쌩하고 불어 코가 시렵다. 마음도 시려왔다. 건조한 공기가 입술 주변을 하얗게 태웠다. 내 머릿속도 새하얘진 것 같다. 몸만 추운 게 아니라, 마음도 덩달아 메말라 갔다.


태양의 기운이 꺾였다. 괜히 나도 한풀 꺾인 기분이다. 따뜻했던 온기는 밀려나고, 냉랭한 냉소가 마음 한 켠을 차지했다. '이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 다 돈 아닌가', '쟤는 왜 저럴까' 텅 빈 생각들이 낙엽처럼 온몸을 뒤덮었다.


울창했던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것처럼, 여태 잘 갖춰놓았던 습관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늦잠 자서 출근이 늦어졌고, 버스 안에서 영어앱 대신 유튜브를 켰다. 멍한 동태눈깔로 일과를 보냈고, 운동도 이따금 빼먹었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내가 가꿔놓은 마음의 정원을 다 망쳐버렸다.


가만히 있지는 못하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무기력과 초조함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게걸스럽게 과자를 쿰척이고, 새벽까지 휴대폰만 만지작 거렸다. 책상에는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의자에는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이 걸려있었다. 집이 어질러지는 만큼 마음도 어지러워졌다. 일부러 어질러진 쪽은 눈길도 주지 않다 보니, 점점 눈을 둘 데가 없어졌다.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을 타나 보다." 스스로를 그렇게 진단했다.


더운 여름에는 그늘을 찾아다녔지만, 추운 지금은 해를 찾아다닌다. 햇빛이 비추는 길을 따라 산책한다. 여름보다 나이 먹은 햇빛에 측은해진다. 얼굴 두드리는 햇빛 알갱이를 느낀다.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해를 찾는 해바라기처럼.


일상생활에서도 따뜻한 온기를 챙긴다. 때 이른 목도리를 꺼내 두르고, 혼자 먹던 점심은 동기들과 함께 먹는다. 헬스장에 몸을 끌고 가서 억지로 몸을 데운다. 건조하고 날 선 말 대신, 따뜻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날씨가 점점 추워질수록, 내 온기를 지켜야 한다.


숯불은 바람이 세게 불수록 더 큰 불을 낸다. 차가운 바람은 항상 따뜻한 마음을 앗아간다. 하지만 나는 숯불처럼 은은하게 불꽃을 머금고 있기로 한다. 온기를 잃지 않기로 한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숯불이 더 크게 일듯, 나를 치고 가는 찬바람에 욕한마디 내뱉고 내 안의 온기를 더 강하게 부여잡는다.


추운 겨울, 온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나아가, 나보다도 추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온정을 건네야 한다. 따뜻한 미소, 따뜻한 말, 따뜻한 마음은 얼음장도 뚫고 사람에게 닿는다. 나는 따뜻한 책을 땔감 삼아 이번 겨울도 잘 나 보련다. 뜨거운 글을 써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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