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역사_17
이 글은 필자의 석사 논문인 『문화적 엔클레이브 이태원의 한국인 상인들』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다 대중적으로 이태원의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논문이 가진 학술적인 측면은 축소하고 인간 중심의 역사적 서술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태원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고유의 색을 잃지 않는 이태원이라는 이국적 공간, 그리고 그곳이 터전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태원이 언제부터 어떻게 이국적인 공간이 되었고 이국성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에 대해 그려볼 생각입니다.
‘세계음식거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은 이 시기 이태원을 주거지로 삼기 시작했던 새로운 성격의 외국인과 연관된다. 2000년대에 들어 이태원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 이들은 초기 이태원의 이질성을 만들었던 미군, 1980년대 이후 이질성을 만들었던 외국인 관광객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 외국인으로 1990년대에 시작한 산업연수생 제도와 관련이 있다. 1993년 외국인 산업연수생제도가 생기고 연수생이 1994년부터 입국하면서 한국 전반에 장기체류외국인이 증가하게 된 상황이 이태원에도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다만 이태원이 차이를 보였던 것은 1990년대 이후 산업연수생제도로 인해 외국인이 유입되기 시작한 한국의 다른 지역의 경우 대부분 비슷한 국적의 외국인으로 지역이 구성되었던 것에 비해 이태원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이태원에는 한국에 가장 많이 유입되었던 조선족은 물론이고, 이슬람중앙사원 덕분에 이슬람국가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또한 많이 유입되었다(서울역사박물관 2010 :95-96). 이외에도 이 시기는 한때 아프리카 골목[이화시장]을 만들고 상인들의 기억에도 인상 깊게 남을 정도로 나이지리아 사람이 대거 유입된 시기이기도 했으며, 경리단 인근으로는 앞서 말한 다양한 국적의 영어강사 또한 유입되고 있었다. 이전 시기 외국인 관광객이 그저 잠시 머물러가는 사람으로서 이태원의 표면적인 다양성을 보여주었다면, 이들은 비교적 장기간 머물며 구성원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돈 쓰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돈 벌러 온 애들이 와 있으니까.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교포, 조선족 그런 애들이 있지. ..지금은 아프리카 쪽 애들이 많이 들어왔지 예전에 텍사스촌[유흥지대]에는 미국인 아니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쪽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다 장악했잖아. 이제 살기도 많이 살고 걔네들 먹는 음식점 뭐 재료 파는 것도 많이 들어 왔고.
이동석, 남, 64세
2000년대 새로이 유입된 외국인이 가졌던 특징은 이태원 의류상인들 사이에서는 일명 ‘돈 벌러 오는 외국인’으로 정의되곤 한다. 이들이 과거 이태원의 문화적 이질성을 만들어냈던 외국인과 경제적인 격차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의류상권의 입장에서 이들의 유입은 자신과는 관련 없는 일로 다가왔다. 새로운 유형의 외국인은 맞춤옷과 짝퉁 같은 비교적 고가의 물건들을 살 여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외국인과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하였기 때문에 굳이 이들과 부딪히며 살지 않을 뿐이었다. 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각자의 영역 안에 머물렀다(송도영 2011: 31).
그리고 새로운 유형의 외국인의 유입이 과거 이태원이 미군과 관련된 공간이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주었던 유흥지대의 쇠락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유입 또한 과거의 발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방서 인근 유흥지대는 1990년대를 지나며 점차 쇠락해갔고, 유흥지대가 비어감과 동시에 이곳에서 일했던 여성들의 자리 또한 비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흥업에 종사하며 이태원 여기저기 분포해 있던 단칸방에 살던 여성들이 떠나면서, 낙후한 시설 때문에 서울에서도 싼 임대료를 자랑했던 이 지역은 외국인 노동자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 싼 임대료뿐 아니라 외국인과 함께해온 오래된 역사 덕분에 이들을 대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로 가득 찬 이태원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꽤 훌륭한 주거지로 여겨졌다(서울역사박물관 2010: 97).
그렇게 2000년대 유입된 새로운 성격의 외국인은 이태원을 민족적, 종교적, 계층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이태원의 새로운 문화적 이질성을 형성해가며 2000년대 이후 한국정부가 표방하던 이상적인 ‘다문화’를 떠오르게 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게 된 2000년대의 이태원은 1980년대의 ‘국제화’와는 다른 모습으로, 정부가 표방했던 ‘다양한 문화집단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간과 가장 가까운 형태로 여겨질만 했던 것이다(구본규 2013:7). 실제로 위의 그림을 보면 용산구가 이태원을 ‘다문화’ 공간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태원을 구성원 측면에서 다양하게 만들어 준 새로운 성격의 외국인은 더 나아가 공간적 변화를 가져왔다. 즉 이들이 유입되어 이태원에 외국음식점이 증가하면서 이태원의 새로운 문화적 이질성을 대표할만한 공간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공간은 마치 이태원에 새로 유입된 외국인의 다양성을 표현하듯,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국적 음식이 집합된 공간으로 발전한다.
참고문헌
구본규, 2013, “다문화주의와 초국적 이주민:안산 원공동 이주민 집주지역의 사례”, 『비교문화연구』 19(2): 5-51
서울역사박물관, 2010, 『이태원 : 공간과 삶』,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송도영, 2011, “도시 다문화 구역의 형성과 소통의 전개방식 –서울 이태원의 사례”, 『담론』 14(4): 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