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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사진이 있는 책갈피
이제 제법 후끈하게 데워진 바깥공기가 집안의 응달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오후의 아파트 방 안에서 나는 책장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내 옆에는 한창 진행 중인 <마의 산>이 놓여있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새로운 텍스트를 원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두 눈이 책 하나에 휘말렸고,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카뮈에 관한 책이었다. 몇 년 전에 한 번 읽었었지만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책의 내지를 빠르게 훑었다. 지중해의 생생한 삽화가 담겨 있는 이 책을 지금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서 띠지도 벗기지 않고 표지를 펼쳤다. 양복을 입은 멋진 모습의 카뮈가 담벼락에 앉아 있었다. 이후 수록된 몇 개의 사진을 감상한 후, 글을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난 후에 나는 이 책에 쓸 적합한 책갈피를 떠올렸다. 그건 부산에 여행 갔을 때 사 왔던, 바다 사진이 있는 책갈피였다. 그런데 그게 보이지 않았다. 분명 멀지 않은 과거에 그 책갈피를 사용했었는데 어디에 둔 것인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책장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을 펼쳐보았다. 없었다. 나타나지 않았다. 서랍까지 뒤져봐도 그것만은 없었다. 속이 상했다. 나는 내가 아직 아침약을 먹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일단 약을 털어 넣고 다시 책장에 눈을 돌렸다. 바다 사진이 있는 책갈피, 사진전 기념품으로 사 온 특별한 책갈피, 지금 이 책에 꼭 사용하고 싶은 그 책갈피, 도대체 어디 있나!
결국 나는 책갈피를 찾지 못 한 채 걷기운동을 나갔다. 우울한 기분이었다. 밖에 나가서 햇빛이라도 받아야 좀 괜찮을 것 같았다. 공원을 걸었던 10분 남짓한 그 시간에도 내 머릿속엔 책갈피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책장을 살폈다. 꽤 더워서 속옷만 입은 채였다. 나는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 잠시 후 엄마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현관문이 쿵 닫히는 그 순간 내 눈에 노란색 책 하나가 들어왔다. 내가 아까 이 책을 펼쳐봤었던가? 책갈피가 나타나길 기대하며 노란색 책을 펼쳤다. 있다. 그곳에 있었다. 바다 사진이 펼쳐진 그 책갈피가! 나는 한순간 온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노란색 책을 다시 책장에 꽂아 넣고, 찾아낸 책갈피를 프롤로그 다음 장에 끼워놓았다.
# <클래식 클라우드 – 카뮈> 1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텍스트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기록한다.
p. 25 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겨우 창조할 수 있다. 나의 타고난 천성은 부동으로 쏠리는 쪽이다. (...) 일상적인 행동과 (...) 기계적인 것의 매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게는 여러 해 동안에 걸친 고집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바로 그 노력에 의해 쓰러지지 않고 버틴다는 것을, 그래서 만약 단 한순간이라도 그 사실을 굳게 믿지 않게 되면 벼랑으로 굴러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병으로부터, 포기로부터 벗어나 전력을 다해 머리를 쳐들고 숨을 쉬며 극복한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 절망하는 방식이며 나름대로 그 절망을 치유하는 방식이다. -『작가수첩 2』, 191쪽
카뮈는 습관의 세계를 경계했던 것 같다. “일상적인 행동”과 “기계적인 것”은 습관의 영역에 가깝다. 습관에 머무르는 것은 “부동으로 쏠리는” 것, 진전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쉽다. 그저 습관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병으로부터, 포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p. 25 불안이나 공포, 섣부른 희망과 위안도 모두 떨쳐버리고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의 부조리한 조건들에 명징한 정신으로 대면한다. 그 명징한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절망과 전쟁과 신과 죽음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게 하고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나는 얼마나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삶을 대면하고 있었으며 그럼으로써 얼마나 많은 패배를 거두었는가.
p. 26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낌 없이 사랑할 권리다. (...)” 거리낌 없이, 아낌없이, 남김없이 ‘사랑’한다는 것, 그 또한 최초의 인간이자 마지막 인간으로서 우리 각자가 삶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수행해야 할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한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듯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자꾸만 꺼내 올린 문장이 있다. ‘사랑은 꼭 필요합니다.’ 이 문장이 위의 텍스트와 다름없다는 것을 느낀다.
p. 31 카뮈는 내게 좀 더 완벽한 여행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호시탐탐 우리를 마비시키려 드는 일상과 현재로부터 벗어나서 고행과 훈련의 시간 속으로 들어서야 한다고 충고한다.
p. 31-34 여행의 가치를 이루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어느 한순간, (...)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문득 우리를 사로잡을 때, 옛 습관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밀려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 교양이라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 즉 영원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교양을 위하여 여행하는 것이다. -『작가수첩 1』, 32쪽
“우리를 마비시키려 드는 일상과 현재”는 역시 습관의 영역이다. 그것에 대한 “본능적 욕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라고 카뮈는 말하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서 삶을 생각할 수 없듯이, 습관에 대한 욕망을 인지하지 않고서 저항과 극복을 행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뮈는 여행을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에 대한 훈련이라 말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