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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약과 바른자세

02

by 자오

정형외과, 치과, 정신과를 오간다. 이게 그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그런 건가? 척추가 휘었고, 사랑니를 뽑아야 하고, 매일 가루약을 삼켜야 한다.


내 방 쓰레기통을 비웠는데 약 봉투가 수북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매일 꾸준히 한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나는 약을 거르지 않고 먹었다.


그게 뭐? 네가 약을 안 먹으면 어쩔 건데? 그렇게 반문하면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칭찬해 주겠지.


가루약. 나는 모든 약을 가루로 먹는다. 알약을 삼키지 못한다. 무엇이든 내 치아로 직접 씹지 않으면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심리적인 요인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가루로 해달라고 말하면, 그곳 모두가 나를 쳐다본다. 한껏 의아한 표정과 함께. 뭐여? 성인 아니여? 뭔 가루여? 웅성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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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는 원래 좀 휘어있었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 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급격하게 악화된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자세를 바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른자세. 초등학교에서 복무할 때, 수찬이한테 ‘바른 자세’라는 말을 무진장 많이 했다. 그 말을 할 때는 특유의 음을 담아서 해야 했다. 그러면 수찬이는 잠시나마 바르게 앉았었다. 정작 내 자세는 구부정했지만.


어젯밤에 수찬이가 (또) 꿈에 나왔다. 스읍, 이제 그만 나올 때도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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