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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300장 정도의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내가 쓴 것 중에 가장 긴 호흡의 소설이다. 다시 읽어보면 엉망진창에 구제 불능이지만. 아무튼 거기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자오’이다.
처음 자오라는 인물을 구상할 때는 나의 모습을 투영하지는 않았었다. 소설 속 자오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적어도 겉보기에는) 건강한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자오라는 이름은 그냥 붙인 것이었다. 아무 뜻도 없었다. 단지 두 글자로 맞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 소설을 쓰던 무렵에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고 있었다. 소설을 완성하고 난 후에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프카와 자오, 두 이름 사이에는 신기한 연결점이 있었던 것이다.
Kafka가 체코어로 까마귀라는 뜻이라고 한다. 까마귀를 한자로 하면 오(烏)이다. 그래서 자오라는 이름에 자줏빛 까마귀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 후부터 자오라는 인물에 나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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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반짝이는 걸 보면 물어온다고 한다. 나는 새하얀 종잇장을 물어올 테다. 매일 종이의 낱장을 쌓을 것이다. 그게 항상 반짝이는 건 아닐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