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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지른 글쓰기

03

by 자오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때는 잘 오지 않았고, 그런 때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글만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요컨대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게 두려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흩날리는 글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먼지, 불에 탄 재, 쌓이지 않는 진눈깨비, 허공을 향해 사라지는 글.

그런 글쓰기는 멈추고 싶었다.


요즘 저출생이 문제인 것처럼 글이 잘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그런 국가적인 문제를 한낱 개인의 글쓰기에 비유하나, 싶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그 정도의 문제다-라고 하면 조금 변명이 될까.

출산장려금처럼, 뭐랄까 글쓰기에도 포퓰리즘 정책을 바라게 되는 심정이다(농담이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브런치북을 연재하는 게 두려웠다.

매거진에 발행하는 것과는 달리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수정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일단’ 시작하지 않으면 밑도 끝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재를 결정했다.


그런데 연재 브런치북을 만드는 페이지에서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일주일에 몇 번 연재하는 게 좋을까.


길지 않은 고민 끝에, 당장 그리고 주 5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저질러 버렸다-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야 이젠 고민하는 것도 지겨웠다.


/


자기 전에 안정제를 먹기 시작한 후로 나에게 새벽 시간은 없어졌다.

새벽에 쓰이는 글도 이젠 없다.

예전엔 깊은 밤에 많이 썼었는데, 이제는 낮 또는 저녁에 쓴다.


낮에 쓰는 글이 어색하다.

이상하게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

낮에 쓴 글은 저녁에 수정되기 일쑤다.

시간을 타는 글쓰기라니.

그건 아직 글쓰기가 내 일부가 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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