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는데 위장에 크게 불편감이 없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사랑니 발치 후 약을 먹으면서 이번엔 또 얼마나 고통받을까 했는데 예상외로 멀쩡하다. 다만 발치 부위가 아파서 먹는 게 곤혹스럽다. 배가 고프다. 없던 식욕이 생긴다. 맛있는 게 먹고 싶다. 나 그동안 배불렀구나.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소염진통제가 족저근막염도 치료 중인 건가 싶다. 요즘 발이 꽤 괜찮다. 도로 아미타불 하지 말고 이대로만 갔으면 좋겠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조금 괜찮아지니 관리가 소홀해진다. 끊임없이 무진장 관리하자.
/
우울증 약은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다. 친구 같다. 그냥 먹는다. 언제쯤 그만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얼마 남지 않은 게 아닐까? 저녁에 먹는 약은 일종의 안정제인데, 참 편리하다. 잠이 드는 시각을 임의로 조정할 수 있으니까. 일찍 잠들고 싶으면 일찍 먹으면 된다.
그래도 그 편리함에 기대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약을 먹지 않더라도 잠에 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마음이 유독 힘든 날은 불면의 밤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휴대폰만 멀리해도 입면이 훨씬 쉬워진다.
말이 쉽지, 침실에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휴대폰은 부작용이 심한 안정제다. 그러니 휴대폰을 멀리 하는 것이 입면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첫 단계이다. 그 이후부터는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 밴드의 도움을 받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어둠 속에서 염증처럼 퍼지는 온갖 관념들과 무거운 생각들을 다스려야 한다.
예전에, 불면과 관련해서 블로그에 쓴 글이 있다.
깊은 밤, 매트리스에 누우면 머리맡의 창밖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다가오고 멀어져 가는 자동차 소리,
미친 오토바이 엔진 소리,
개 짖는 소리,
철없이 몰려다니는 학생 무리들,
술에 취한 아저씨들,
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쓰레기 수거 차량.
육중한 바퀴 소리와 엔진음, 삐- 삐- 거리는 경고음, 무어라 소리치며 신호를 주고받는 공무원들, 차량 어딘가에 척 척 적재되는 무언가... 불면에 시달리다 기어코 이 소리를 듣게 되면,
아, 벌써 아침이 다 왔구나- 한다. 그렇게 눈을 슬며시 뜨면, 처음 침대에 누울 때의 그 칠흑 같던 밤은 이미 어스름한 아침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채였다.
잠에 드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어려웠다. 정신과에 방문한 후부터 약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휴대폰은 소염제가 아니다. 부작용이 강한 안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