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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이 있다. 받지 않는 전화의 신호음처럼 아래아 한글의 커서가 깜빡거린다. 키캡 위에 아까 올려놓았던 손가락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
글 하나에 애정을 쏟지 않고 그저 하루를 넘기려고만 하느냐! 갑자기 스스로 야단도 쳐본다.
변명하려 하지 말자. 나는 지금 글을 쓸 기분이 아니다. 사랑니를 뺀 부위가 아프다. 밥을 잘 먹지 못해 몸에 힘이 없고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글도 나오지 않는다. 떠오르는 것을 그냥 타자로 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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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 페이지라는 게 있다고 한다. 매일 기상 직후에 아무 글이나 쓰는 것인데, 그 분량이 꽤 된다. 약 45분 정도를 쓰면 좋다고 한다. 쓸 게 없으면 ‘쓸 게 없다’라고 적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해서 아무 말이나 써내려 가는 것이다. 기상 직후에 쓰는 이유는, 그 시간대가 바로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가장 덜 검열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에 대한 억압 없이 노트에 생각을 쏟아낸다. 페이지는 넘어가고, 또 넘어간다. 그러다 보면 뭔가가 나온다고 한다. 뭔가가.
사실 모닝 페이지라는 행위에는 글 쓰는 것 자체에 초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매일 아침 꾸준히, 시간을 정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꾸준함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 그리고 그걸 해낸다는 충족감과 성취감.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모닝 페이지, 며칠 해본 적이 있다. 어렵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고 그래서 ‘뭔가’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요컨대 모닝 페이지의 영향력을 느껴보지 못했다. 다시 한번 요컨대, 그걸 해내는 사람은 다른 무언가를 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그런 말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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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커니 서 있던 손가락들이 여기까지 움직여줬다. 모닝 페이지의 가르침에 따라,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으로 시작한 이 글이, 남루하지만 그래도 한 편의 뭔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