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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이며 건너온 주말

by 홍지이


훌쩍



1. 액체 따위를 단숨에 남김없이 들이마시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바이바이. 월요일 첫 비행기를 타고 남편이 날아가고 있다. 공항 담벼락과 마주한 해안공원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았다. 다음 주말을 기다리며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기로 한다. 남편과 함께하는 주말에는 들기름으로 촉촉하게 코팅된 고사리 파스타도, 커피 아몬드 크림을 잔뜩 머금은 오페라 에클레어도 한 입에 아웅 하고 먹고 싶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제주에 온 이후부터는, 주중 아침에는 눈뜨면 눈바디 체크로 시작한다. 거울 속 내 모습에 찌푸려지는 인상의 정도에 따라 공복 유산소 시간을 결정한다. 주중에는 탄수화물과 절교. 철저히 저속노화 식단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이게 된다. 유튜브에 가득한 레시피 선생님들 덕분이다. 양배추를 베이스로 한 다양한 한 그릇 음식을 돌려 먹으며, 음침해지려 하는 마음도 훌쩍 마셨다. 씩씩하고 건강하게 보내야 한다. 우리들의 주말을 위하여!


2. 콧물을 단숨에 들이마시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제주도에 살아야만 알 수 있는, 이곳이 간직한 비밀 중 하나를 풀까 한다. 제주는 무지개 인심이 후하다. 인생에서 볼 무지개의 대부분을 제주에서 마주쳤다. 지난 수요일, 오전의 글쓰기 수업을 하고 돌아가는 길.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평화로를 타고 집으로 향할 때였다. 도로를 감싸듯 완벽한 반원을 그린 선명한 무지개가 만든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잽싸게 유튜브 뮤직에게 말했다. '조규찬의 무지개' 틀어. 오전 내 내린 보슬비가 그치며 비구름이 물러가는 중인 하늘은 높고 파랬다. 완벽히 맑아지기 전, 찰나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 아, 다정도 깊으면 병이라던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영락없이 떠오른다. 언제 오나. 주말도, 무지개를 같이 보고 싶은 사람도. 주말은 멀었고, 감출 필요 없는 눈물은 또르르, 코만 훌쩍였다.


뒷산 위에 무지개가 가득히 떠오를 때면
가도 가도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따라갔었죠

무지개(1992)| 조규찬

3. 단숨에 거볍게 뛰거나 날아오르는 모양.


드디어, 목요일. 주말이 시작하려는 하루에 어제보다 가볍게 훌쩍 올라탔다. 이제는 정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주말 부부의 주말은 조금 빠르게 시작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제주를 향해 날아오는 남편이 공항에 내리며, 카카오톡(우리는 라인을 쓰지만)이 살아날 때, 바로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이다.


주말 부부가 되기 전에도 거의 매일 주말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의 회사원으로 살던 시절,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속으로 읇조렸다.

"아, 퇴근하고 싶다."

점심시간에 문득, 일하다가 딴생각 모락모락 피우며 문득, 퇴근길의 달리는 차 안에서 문득. 떠올렸다.

"주말에 뭐 하지?"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더니 여전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나와 남편, 반려견 무늬의 주말은 당신의 주중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4. 거침없이 가볍게 길을 떠나는 모양.


금요일 저녁, 서울을 훌쩍 떠나온 남편이 제주에 왔다. 곧장 집으로 가기엔 금요일의 제주는 언제나 아름답다. 석양이 예쁘게 드리운 날에는 늘 이호테우 해변의 공원에서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알작지 해변 도로의 벤치에 앉아 환히 불을 켠 고깃배를 바라봤다. 편의점에서 산 딸기 우유와 삼각 김밥을 먹으며 토요일과 일요일의 일정에 대해 남편과 종알거렸다. 주말을 상상하면 어김없이 같은 모양의 그림이 나온다. 서울에서 날아온 남편이 평온할 것, 주말에 터뜨리기 위해 조신하게 주중을 보낸 내가 까르르거려야 할 것, 착하고 또 착한 우리들의 반려견 무늬가 편할 것. 매주 완벽하진 않지만, 봄에서 시작해 여름의 끄트머리를 향하는 지금 까지는 실패의 이름표를 달만한 주말은 없었다. 우리가 그려놓은 그림의 스케치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색을 칠했다. 확실하다. 우리 둘은 여전히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반려견의 의견은 묻지 못했으나 좋아하는 것으로 퉁치겠다ㅎㅎ)


5.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크거나 커진 모양.


“우리 이번 주말엔 뭐 할까?”


월요일 저녁의 통화 주제도 주말의 계획이다. 남편은 늘 '지난 주말에 너무 좋았는데!'로 말을 시작하며, 홀로 서울행을 한 자의 쓸쓸함을 지워내는 듯하다. 나는 다시 철저한 식단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씩씩한 월요일을 살 것이다. 우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엔 각자 열심히 살 목표를 정해, 더욱 단단해지기로 했다. 행복한 주말 부부가 되기 위해, 하룻밤만에 훌쩍 커져버린 그리움을 잠재우며.



훌쩍이며 주말을 건너고 있던 중
우연히 알게 된, '훌쩍'의 사전적 정의가 무려 다섯 가지나 되는 사실이 재밌어서
글로 풀어 보았다. :-)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https://brunch.co.kr/@mag-in/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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