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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훔친 마루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그의 일상

습관

by 홍지이


큰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뒷북을 울리게 생겼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확실히, 너무나 명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내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심지어 난 오랫동안 이상형은 없다고 부르짖던 강성반이상형 연합의 비공식 수장이었다.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상형은 말 그대로 이상형일 뿐이라는 생각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나 이상형을 만났어!'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은 '나 버스 정류장에서 유니콘을 봤어!'라고 말하는 것과 진배 없다. 이상형은 상상 속 동물과 같다. 일말의 가능성의 틈을 두고, 어딘가 다른 차원에 존재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생은 아닐 거라는 것.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바로 이 문장. 얼마 전 한 낮의 제주, 책상에 앉아 키보드 보다 찌뿌둥한 몸 여기저기를 두들기고 있었다. 몸 어딘가에 숨겨둔 문장이 불쑥 튀어나와 좀처럼 나아가지 않는 글의 가장 적당한 자리에 풀썩 하고 앉기를 바라며. 그 때 이 문장이 튀어나왔다. 우연한 기회로 깨닫게 된 나의 이상형의 정의는 생각보다 단촐했다. 게다가 좋은 습관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 아닌가. 함께 떠올린 습관이란 이를 테면 이런 것이었다.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할 때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한다.

주차는 늘 꼼꼼하고 성실하게 라인에 꼭 맞게, 1자로 한다.

하루에 물을 2리터씩 마신다.

잠들기 전에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한다.

매사에 진지하지만 말장난과 농담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만약 놓치면 진심으로 아쉬워한다.

아침저녁으로 반려견과 공원을 산책한다.

사용한 물건은 바로 제자리에 둔다.

눈이 마주치면 아무 이유 없이도 싱긋 미소를 짓는다.

이 좋은 습관으로 일상을 가득 채우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의 일상은 야물게 짠 물걸레로 방금 훔친 마루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듯 보였다. 확실히 그 사람은 작은 것들의 가치를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그렇기에 사소한 것들의 소중함 역시 금세 알아채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멋진 사실은 바로 그 사람과 함께 살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은 나의 구남친이자 현남편이다. 그의 하루를 채우고 있는 좋은 습관 덕에 나를 포함한 우리의 덧없는 일상이 더없이 빛나게 되었다.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편 - 남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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