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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부터 다른 이의 이야기는 우리 집에 들일 곳이 없다

by 홍지이


대체로 평온한 평일 저녁의 우리 집. 오늘은 따로 또 같이 보내는 자유시간의 날이다. 그럼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 전 까지는 오로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태양경배자세로 전신 순환을 하고 유튜브에 계신 pt 샘과 홈트레이닝을 할 계획이다. 남편은 주말 직전으로 약속한 온라인 글모임 구성원과의 합평 준비를 한다. 나는 운동매트와 덤벨을, 남편은 노트북 스탠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집에서 각자 좋아하는 구석으로 가서 자리를 잡은 뒤 한 집에서 짧은 이별을 고한다. '잠시만 안녕. 이따 만나.'



"언제 잘 거야?"

해석_나는 다 했어. 너도 마무리해. 이제 그만 자자.


상대방이 자리한 구석에 찾아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묻는다. 나일 때도 있고, 남편일 때도 있다. 먼저 자유 시간을 마친 이가 하는 대사다. 그럼 몇 분 뒤에 침대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는다.(사실 이렇게 쓰면 집이 엄청 넓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상대에게 말도 없이 혼자 양치질을 하고 잘 준비를 마친 뒤 침대에 먼저 눕는다? 그럼 '배신자'. 거기에 먼저 잠들기까지? 그럼 '진짜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각자 시간을 보내더라도 동시에 침대에 누워야 하는 것. 우리 부부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대부분 남편이 먼저 잠든다. 남편은 눕자마자 마취총이라도 맞은 듯 혼절하여 자는 개인기가 있다. 그리고 나는 먼저 잠든 남편의 숨소리를 덮고 잠든다. 고요한 밤, 우리 집 안방을 채우는 그 소리는 온전히 내게만 들린다. 사랑하는 이가 곤히 잠든 채, 열심히 숨을 쉬고 있구나. 그 소리만큼 나를 안심하게 하는 게 있을까.




주말부부가 된 후에도 우리의 따로 또 같이 자유시간은 지속되고 있다. 영상 통화를 켜 놓고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다. 제주집에는 반려견 무늬가 있어서, 가만히 있는 나 대신 토도도도 발자국 소리나 하품하는 소리, 때때로 트림을 하거나 방귀도 뀌며 살아있는 이의 소리를 낸다. 하지만 남편이 있는 서울집은 조용하다. 어느 날인가 남편이 혼잣말로 '하, 네가 없으니 우리 집 진짜 조용하네.'라고 말했다.


남편은 원래 말이 없다. 난 원래 혼잣말도 많고 행동을 하며 의성어나 의태어를 입으로 말하는 웃기는 버릇도 있는 사람인지라 우리 집 소리 지분의 90% 이상이 나였고 9%가 반려견 무늬였다. 심지어 화장실의 샤워부스 투명한 벽에는 늘 때에 맞춰 좋아하는 시를 써 놓았다. 냉장고에도 메모를 할 수 있는 보드를 붙여두고 먼저 먹어야 하는 식재료, 마켓 컬리에서 시켰는데 맛있었던 상품,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 등을 큼직하게 써 놓곤 했다. 소리가 닿지 않는 곳이라면 글로도 시끄럽게 종알거리던 나. 남편은 재잘거리는 내가 없어 허전하단다.




주말에 만나면 할 말이 너무 많다. 주말이면 제주집에 남편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다. 그제야 제주집이 우리의 집 같다. 이 집에는 생각보다 많은 책이 있고, 반려견의 쿠션과 침대 따위도 제법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 집의 가장 많은 곳을 채우는 것은 나와 남편의 이야기일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비스킷과 쿠키로 집을 지었다는데, 우리는 단어와 문장과 에피소드로 해마다 새로운 집을 짓는다. 결혼을 한 뒤 몇 번의 이사, 몇 번의 새로운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언제나 거실에는 집에 비해 과하게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도 TV는 없었다. 애초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집에 들일 곳이 없었다.


남편이 주말에 제주에 오면 늘 그렇듯 주로 말하는 사람은 나. 남편은 듣는 사람이다. 워낙 쌓아놓은 이야기도 많지만 더 열심히 재잘거린다. 우리의 이야기를 잔뜩 꺼낸 뒤 남편의 몸에 치렁치렁 둘러 주듯. 그렇게라도 해야 조용한 서울 집에 가서 꺼내 놓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편 - 남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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