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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작은 책방에서 처음 만난 분께 단호박을 받다

제주도 작은 책방, 그리고서점 이야기 (1)

by 홍지이

조수석의 진녹색 손님


읏차.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수석에 보기보다 묵직한 손님이 올라탔다. 쓰러지거나 혹은 쏟아질까 싶어 야무지게 안전벨트도 매 주었다. 출발 전, 흘깃 바라보고는 풉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름 상상력이 풍부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지도 못한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어서였다. 반지르르한 피부결에 소담스러운 진녹색이 매력적인데, 그와 함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떠올라 자꾸만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오늘 옆자리 손님은 단호박이다.


단골이 되어가는 중이었던 동네 책방에서 단호박 한 뭉텅이를 얻다니. 이 이야기는 우연히 찾은 동네 책방에서 시작하여 책방 지기님과의 뜻밖의 커피 타임으로 넘어간다. 그 후 단호박에서 절정에 이르고, 독서 모임에 초대받는 것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글의 흐름을 이렇게 요약해 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발랄한 청소년 소설을 갈무리한 것만 같다. 이 일들은 마치 서로 관련이 없다는 듯, 어느 하루에 불쑥 나타나 씽긋 웃더니 다른 날 비슷하게 생긴 에피소드를 가져와 나를 몇 번이나 놀라게 했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집 근처의 책방에 간 날부터 더듬어보자. 사실 이야기는 이미 제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뭍에서 찾아온 내가 그 이야기의 흐름에 올라탄 곳이 책방이었다 말해야 더 정확하다. 제주로 이주를 한 후, 집 근처에 있는 서점들을 하나 둘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서점‘은 집에서 출발해 신호운이 좋으면 10분, 느긋하게 달리면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다. 가깝다 보니 오히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서점에 비해 방문을 미루고 있던 곳이었다.


첫 방문 날, 출입구에서부터 매장의 끝까지 난 단 하나의 오솔길을 제외하고 바닥 대부분에 책이 쌓여 있었다. 그 길의 끝에 서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계셨다. 입구에서 그 길에 계신 다른 손님들을 피해 겨우 시선길을 열어 눈인사와 가벼운 목례를 하며 기척을 했다. 내가 들어간 것과 동시에 책방에 먼저 분들이 나가셔야 해서 뒷걸음으로 후진을 해서 다시 입구까지 나왔다. 길 끝의 사장님이 ‘커피 드시겠어요?’라고 여쭤보셔서, ‘좋지요.’라고 대답을 하고는, 커피를 파는 곳인가 보다 했다. 그러고 보니 손님들 대부분이 한 손에 컵을 들고 계셨다.


커피를 기다리며 책을 살펴봤다. 읽고 싶었던 고수리 작가의 책이 있길래 반가워하던 찰나, 입구 바깥쪽에서 다른 분들이 서성이는 것을 봤다. 매장 안이 복잡해 보여서 못 들어오시는가 싶어 사장님께 혹시 커피를 안 하셨다면 다음에 마시겠다고 했다. 집이 가까우니 조금 여유로운 시간에 다시 오면 되겠다 싶었고, 실은 차 안에 반려견을 두고 왔는데 더울까 싶어 문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은 종이컵을 꺼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득 따라 내어 주셨다. 계산을 하려 하니, 서점을 찾은 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그냥 드리는 거라는 말씀과 함께. 앗, 테이크 아웃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한 데다 서두르게 해 드려 죄송하다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씀과 함께 나왔다. 그리고 그날 마셨던 첫 커피는 다음 커피, 그리고 그다음 커피, 몇 번의 커피로 이어지게 되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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