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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작은 책방에서는 왜 자꾸만 인연이 이어지는걸까

제주도 작은 책방, 그리고서점 이야기 (2)

by 홍지이

전편

https://brunch.co.kr/@redmanteau/232


책방지기님이 내어주신 커피는 한 잔이 되고, 두 잔에 되고, 세 잔이 되었다. 제주도의 공공도서관이 운영하는 희망도서 바로대출 시스템(원하는 책을 도서관 대신 지정 지역 서점에서 바로 대출·반납할 수 있는 제도)을 잘 이용하게 되었는데, 늘 그리고서점으로 책을 빌리고 반납하러 갔다. 한두 번은 문이 닫혀 있기도 해서, 책방 지기님께 전화를 걸었다. 근처 학교도서관에 납품을 가셨다며, 번호키의 비밀 번호를 알려주셔서 따고 들어가기도 했다.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들어가서도 책을 못 찾아서 허둥대기도 했지만, 몇 번 하니 제법 능숙해졌다.


한 번은 서점에 들렀다 마침 사고 싶었던 책이 입고된 것을 봤다. 그런데 결제 금액의 10%(그때는 행사기간이라 무려 15%였다!)를 환급해 주는 제주 지역 화폐인 탐나는전 카드를 집에 놓고 온 것. 2권을 사려다 보니 환급금이 눈에 밟힌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린 뒤, 혹시 이 책 찜해 주시면 내일 오전에 잽싸게 와서 결제해도 되냐 여쭈었다. 대뜸 책 먼저 가져가시란다. 오마이갓. 책방 슨생님, 정말 이렇게 장사하셔도 되는 거셔요? 내게 책을 안겨 보내시려는 걸 잽싸게 피한 뒤 후다닥 나왔다. 집에 가는 길,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넉넉함이 넘치시는 책방 지기님과 이 느슨한 서점, 각박한 세상에서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물론 둘 다 기분좋게 크게 웃으며.


올여름엔 제주에서 내내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 늘 학인 분의 글을 읽고 이메일로 답장을 드리고 있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누군가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쓴 글을 읽는 건 언제나 참 좋다. 그중 호흡이 짧은데도 단단한 문장을 잘 쓰시는 한 학인 분이 계셨다. 첫 주에 쓰신 글부터 '분명 이 분의 팬이 되겠군.' 싶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그런데 그분이 쓰신 글에 그리고 서점이 등장했다. 나처럼 반겨주시는 지기님과 커피를 드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시고, 근처 동네에 대해 알려주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수업을 하고 있던 지역공공기관에 대해 알려주셔서, 나의 수업에 학인 분이 오실 수 있었다는 것! 마침 그 글을 쓰신 학인 분과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 차를 타게 되었다. 슬며시 글에 대해 말씀드리며, 나 또한 그리고 서점과 작지만 소중한 인연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학인 분과는 글모임도 함께 하게 되며 더욱 귀한 인연이 되었다. 그분을 수업으로 인도해 주신 분이 책방 지기님이기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올해 5월에 출간한 책 <여기 다 큰 교사가 울고 있어요>를 선물로 드리기 위해 챙겨서 서점에 갔다. 서점에 가니 오랜만에 문이 열려있었다. 고구마라테를 한 잔 권하셨다. 아는 맛이 무섭다더니, 또 거절하지 못하고 덥석 받아 마시는, 몰염치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려나 싶은 나. 아무튼 준비한 사연을 이야기 하던 중에, 서점에 한 분이 들어오셨다. 책방 지기님의 지인 혹은 단골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셋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고구마라테를 먹고 나니 텁텁하지 않냐며 커피를 또 내어 주셨다. 늘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자꾸 주셔서 어떻게 하냐니까, 지기님은 안 그래도 서점 운영비보다 커피 원두값이 더 든다며 개구쟁이처럼 웃으셨다.


내가 책을 고르는 사이, 두 분이 '지난해 단호박보다 올해 단호박이 달다'는 말씀을 나누셨다. 단호박?


"이이가 요 옆 작은 도서관 총무인데, 올해는 단호박 농사를 했어요."
"작가님, 단호박 좋아하세요? 그럼 하나 줄까요?"



단호박이라니. 나는 이 서점에만 오면 거절을 못하는 병에 걸리나보다. 투명한 마음만큼이나 빠른 혀가 이미 '아이고, 주시면 감사하죠.'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총무님은 날랜 동작으로 차에 다녀오시더니 단호박 10여 개가 든 망태기를 바닥에 내려놓으셨다. 몇 개를 꺼낼까요?라는 말과 함께 끈을 풀려했더니


"아뇨, 그거 다 가져가셔요."


네????? 어차피 이게 마지막 나눔 단호박이라는데 오히려 나를 만나 다행이라는 총무님. 정말 받아도 되나 우왕좌왕 중인 나는, 이 서점의 분위기에 이끌려 그렇게 또 귀한 것을 너무 쉽게 얻고 말았다. 어쩔 줄 모르다가 그럼 나중에 두 분께 커피 원두라도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총무님은 자연스레 자신은 산미가 없는 커피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덕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것이 제주도 작은 책방에서 벌어진 단호박 사건의 전말이다.


그런데, 끝날 줄 알았던 서점과의 인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단호박 데이 뒤로부터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익숙한 번호인데? 곰곰 생각해 보니 그리고 서점 지기님의 핸드폰 번호였다.



"안녕하세요, 부탁을 하나 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아, 부탁이요....?"

(계속)


6.jpg 그리고 서점은 제주도에 정말 있어요. 상상 속의 서점이 아니랍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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