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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자유

스무 살

by 홍지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이자 온실 속 화초였던 나. 양서류이자 식물이기도 했던 그 괴상한 혼종의 시기를 딛고 일어나 비교적 무사히 스무 살을 맞이했고, 다시 사람이 되었다. 열아홉은 고3과 수능을 빼고는 채울 말이 도저히 없었다. (그런데 난 수능을 보지 않고 대학생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고2에서 고3이 된 1년, 고3에서 대학교 1학년이 된 1년. 양적으로 같은 1년을 보냈지만, 후자는 나를 향한 세상의 대접이 완전히 달라진 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많은 것을 손에 쥐게 되었다. 학교에 갔지만 강의를 듣지 않아도 되고, 하굣길을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오전에는 제주에서 온 동기를 만나고 오후에는 강릉에서 온 선배와 밥을 먹는다.


이 많은 불규칙한 가능성과 선택권을 일컬어 나는 ‘자유’라고 크게 묶어 부르곤 했다.


스무 살이 보장해 주는 자유의 모양은 한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강물의 물결과 닮아 있었다. 나를 태운 지하철을 받아 그린 수면은 바람에 따라 크게 울렁거리다 이내 잠잠해지다 지면에 다다르면 찰랑거렸다. 강을 건널 정도로 멀리 온 건가. 부모의 말이 잘 닿지 않자 그들이 만들어놓은 중력이 약해졌음을 느꼈다. 불과 몇 달 전에는 교복에 책가방을 매고 오로지 학교와 집을 오갔는데. 순식간에 삶의 범위가 측정 불가능한 수준으로 늘었다. 그 혼란함이 나는 좋았다.


고2 때부터 만났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스무 살에도 우리가 자란 도시에 남기로 했다. 집 근처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원하는 대학 입학에 다시 도전하기 위해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잔잔한 질서를 가진 이별이었다. 둘이 입을 모아 하나, 둘, 셋을 센 뒤 서로 잡았던 손을 동시에 놓았달까. 스무 살답지 않은 성숙한 헤어짐이었다. 지금은 안전 이별을 기원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때는 관계는 시간을 먹고 성숙해지는 것이며 서로 신뢰를 정직하게 쌓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절이었다. 혹은 우리가 썩 괜찮은 연애를 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도, 변함없는 사실은 나의 첫 남자친구는 늘 사려 깊었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대학교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가까스로 양서류와 식물의 티를 벗고 사람이 된 나는 사람답게 강당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털썩거리며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애. 그 애는 지금은 나의 남편이지만, 그때는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동급생이자, 나의 동갑인 사촌 동생(생일이 나보다 늦어)의 절친이자, 나와 같은 입시학원에 다닌 친구이자, 내 고등학교 절친의 엑스가 된, 미립이었다.


우리는 같은 도시에서 자라 그곳에 있는 각기 다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자연스레 서울로 통학하는 경기 도민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사이가 되었다. 학과는 달랐지만 새내기 필수 교양과목을 맞춰서 시간표를 얼추 포개 버렸다. 등굣길에 이용하는 빨간 광역버스에 내가 먼저 타면 그다음 정거장에서 미립이 탔다. 미립과 함께하지 않은 날의 난 그 당시 즐겨 읽던 요시다 슈이치나 오쿠다 히데오, 아사다 지로 같은 일본 작가의 가볍고 작은 소설책 몇 쪽을 읽다가 금세 유리창에 머리를 콩콩 박으며 졸다가 버스가 사당역에 닿았다는 매우 확실한 브레이크를 몸으로 느끼면 황급히 일어나곤 했다.


버스에서 지하철, 다시 버스로 이어지는 현란한 환승 동안 우리는 내내 대화했다.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거다. 영화만 해도 어제 본 영화, 오늘 볼 영화, 그리고 고등학생 때 몰래 틈틈이 봤던 영화까지 소급적용. 책은 또 어떤가. 선배들이 자주 했던 ‘1학년 때 학생증을 찍고 도서관에 가면 그 즉시 학생증이 폭발한다’는 농담이 진짜라면, 우리는 중앙도서관을 붕괴시킬 만큼 도서관을 자주 가던 애들이었다. 음악도 질 수 없었다. 살짝 겹치는 취향에서 출발한 가지가 어디까지 뻗어나갔는지 말하다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했다. 그렇구나. 스무 살이란 마음이 맞는 친구와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구나. 우리의 스물은 푸릇푸릇한 대화의 세례를 받고 더없이 성스러워졌다. 그리고 술. 술도 빼놓을 수 없지. 술은 스물의 낭만이고 곧 자격이었으니.


하지만 그때의 우린 ‘너만 좋아’ 아니라 ‘너도 좋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범람하는 인간관계의 바다에서 쉽게 통용되는 ‘친구’라는 호칭을 서로에게 붙였고 그 밖을 넘어설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지하철만큼 미묘한 긴장감을 주던 그 애의 눈빛. 내가 아는 남자애 중에 가장 고른 단어를 쓰는 그 애의 말투. 애틋함과 다정함, 불안함을 마구 교차하던 달뜬 그 마음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몰라서 ‘우정’으로 치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의 스무 살은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부풀려 되돌려주던 동갑내기 남자애, 온통 ‘미립’이었다.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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