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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Sep 29. 2022

오줌 대마왕에서 배변 천재가 된 강아지

펠라 임보 일기 7


우리 집 강아지 무늬는 확신의 실외 배변파다. 그래서 내가 출근을 하던 때에는 아침저녁으로 2회 길게 산책을 했었고, 집에서 글을 쓰는 요즘엔 새벽, 점심, 저녁 3번은 꼭 챙기고 일과 중에 무늬와 외출을 할 일이 있거나 날씨가 너무 좋을 땐 한번 더 나가기도 하니 하루에 많게는 4회 산책을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장마철이나 태풍, 폭설 등 날이 궂을 때에는 심란해진다. 어쩌다 하루 종일 비가 올 때는 '어쩜 한 번도 안 그치냐?' 라며 하늘을 향해 야속함을 내비치는 나에 비해, 정작 무늬는 '인간, 우리 언제 나가? 이제 나갈 거지?'라 말하는 듯 초연한 얼굴을 하고 날 뚫어져라 바라본다.

비 오는 날 산책하고 현타 온 무늬
눈 오는 날 산책하고 파파 할아버지가 된 무늬
우비와 함께 swag을 얻은 반려견 무늬


임시 보호 하숙견 펠라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한 전날. 집에 무늬가 있다 보니 웬만한 반려견 용품은 다 있었지만 배변 패드와 배변판이 없었다. 이럴 때 믿을 건 역시 로켓뿐이라면서 급히 주문한 배변 용품이 펠라보다 빨리 오기를 바랐다. 우선은 펠라가 머물 공간을 정한 뒤 반려견 놀이매트를 깔았다. 동굴형 침대와 침대 바깥에도 누워서 쉴 수 있도록 포근한 담요를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간엔 장판을 새로 까는 마음으로 모두 배변 패드를 깔았다. 펠라의 공간을 배변 패드로 포위한 듯했다. 펠라, 너는 꼭 이 중 하나에 오줌을 눠야 할 거야. 그땐 그렇게 될 거라 굳게 믿었다.


울타리 안 촘촘하게 깔아놓은 배변 패드


늦은 저녁에 도착한 펠라는 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배변 패드에 쉬를 했다! 남편과 나는 천재 강아지, 착한 강아지라며 폭풍 칭찬을 날렸다. 사람의 감정과 표현을 낯설어하는 펠라는 '쟤네 왜 저래?'라는 듯 덩실 거리는 우리를 힐끔 거리며 쳐다봤다. 이튿날부터 펠라는 (지금 보니 펠라를 너무 과소평가했지 싶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녔고, 밤이 깊어질수록 광란의 장난감 놀이 시간을 가졌다. 뾰족한 코로 바닥을 쓸며 거실 구석구석 냄새를 맡으며 탐색전에 돌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부터 펠라는 우리가 정한 곳보다 더 좋은 위치의 화장실을 찾기 시작했나 싶다.


울타리는 금세 쓸모를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울타리 안의 작은 공간만 제외하고 거실 전체가 펠라의 공간으로 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울타리 안쪽에 정을 붙이라고 밥을 그 안에 줬더니 밥만 먹고 후딱 나오게 되었다. 거실이 곧 펠라의 놀이방이자, 침실이자, 식사 장소, 그리고 화장실이기도 하게 되었다.

소파 위 극세사 매트에도
쉬를 해서 갈아버린 민트색 비치타월 위에도
아끼는 러그 위에도 오줌을 눴다. 오줌 대마왕 펠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강아지, 펠라.


나는 초보 임보 자인 데다 퍼피 케어를 해본 경험이 한 15년 전 본가의 강아지 때의 까마득한 기억뿐이었다. 매일 세탁기를 돌리며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펠라가 멋진 강아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서, 신중하고 사려 깊은 가족을 만나게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펠라가 우리 집에 익숙해지는 속도에 맞춰 퍼피 교육의 진도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시급한 배변 교육은 더욱 중요했다. 결국 임시보호를 자주 하는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장문의 톡을 남겼다.  

이른 아침에도 칼답으로 내게 구원을 준 임보박사 친구


배변패드로 오줌 대마왕을 더욱 넓게 포위했다. 어떠냐 펠라!

친구는 강아지의 최종 배변 장소는 화장실일 때 가장 편하다 말했다. 강아지도 조용한 공간에서 편히 볼일을 보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보호자도 위생적이고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며. 펠라를 위해 우리 집 화장실로 가는 레드카펫을 깔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가는 길 걸음걸음 폭신하도록 극세사 카펫과 비치타월을 이중으로 깔아주었다. 펠라야, 만족하니?


 


펠라의 주요 거처도 화장실과 먼 곳으로 옮겨 주었다. 울타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혹시나 펠라가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해서 그랬다. 문을 열어놓고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게 해 줬다. 그랬더니 다행히 울타리를 뛰어넘어 다니진 않았다. 좋아하는 장난감과 노즈 워크를 넣어뒀더니 혼자 들어가서 노는 시간도 제법 늘었다. 하지만 동굴 침대는 사용하지 않았다. 펠라가 폭풍 성장을 하고 있어서 금세 작아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왼쪽에 있는 무늬의 침대와 소파에 더 오래 머물렀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없었다. 아니, 펠라의 마음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펠라도 답답했겠다.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날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패브릭 소파에 자세를 잡고 소변을 보는 펠라. 아, 라는 탄식이 나올 사이 이미 상황은 종료되고 난 주섬주섬 챙겨 와 또 세탁기를 돌린다. 펠라가 집에 온 지 열흘 정도는 매일 빨래를 했다. 그 사이 나도 요령이 생겨서 펠라가 배변 실수를 하는 바닥의 유형을 알게 되었다. 방수형 놀이 매트만 남기고 패브릭 소재 러그와 매트는 모두 걷어 붙박이장에 봉인했다.


소거법이라고 하면 거창한 걸까. 소변을 보지 않는 위치의 배변 패드를 치웠다. 어느덧 현관 앞 배변패드 1장만 남게 되었다. 이젠 10번 중 9번은 패드에 배변을 한다. 그곳에 배변을 할 때마다 상냥한 말투로 너무 잘했다고 말하며 애정의 눈빛을 쏴준 뒤 소소한 간식을 줬다. 이젠 그 장소에 배변을 하고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우릴 바라본다. 기특하고 대견한 펠라. 오줌 대마왕에서 배변 천재 강아지가 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건 심플했다. 칭찬, 시간, 그리고 보호자의 기다림. 내가 초조함을 들키면 펠라는 더 크게 동요하며 불안한 나머지 배변 실수를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100% 배변을 가리는 건 아니다. 드라마 같은 반전, 감동의 성공 스토리 따위 없어도 괜찮다. 나도 펠라에게 100% 좋은 임시보호자는 아닐 테니까. 펠라가 날 이해해주는 만큼 나도 펠라를, 아니 내가 더 펠라를 감싸안아줄 거다. 왜냐하면 펠라가 나보다 백배 천배 더 귀엽고 사랑스럽고 착하고 다정한 가족이니까.

(우리집 기준) 배변 천재로 거듭난 펠라


더 많은 펠라의 사진과 소식은 이 곳에서!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ella/


위액트 펠라의 입양 공고

http://weactkorea.org/base/adopt/adoptab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114&com_board_id=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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