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이 Sep 20. 2022

인간과 함께 살기위한 개의 노력은 결코 작지 않아

펠라 임보 일기 5

펠라가 구조된 외양간은 내딛는 곳마다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오물과 분뇨가 쌓여있었고, 모기와 파리가 득실대고 벽 틈엔 구더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그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비슷비슷한 외모와 모색을 가졌다. 갇힌 공간에서 관리 없이 일어나버린 자가 번식이다. 동물구조단체 위액트가 구조를 하러 간 날에도 며칠 전 출산한 것으로 보이는 핏덩이의 아기 강아지가 아무 보호도 없이 더러운 바닥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만삭 상태의 개도 있었는데 급히 구조해 깨끗한 환경에서 출산했으나, 태어난 아기들은 뭐가 급했는지 대부분 강아지 별로 떠났다.  

 

위액트 구조당시 찍힌 펠라(feat.얌전) 출처 : 위액트 공식 인스타그램

이 공간의 주인은 길에 다니는 강아지가 불쌍해 보여 데려다 몇 마리 키우기 시작한 것이 결국 42마리 개가 감금된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걷잡을 수 없어지자 외양간 문을 걸어 잠근채 아이들을 가두고 그저 방관했다. 책임감이 결여된 동정심은 무관심만큼 나쁘다.


테어나서 구조되기 전까지 약 5개월 간 매일매일 펠라가 눈에 담아온 지옥을 닮은 그 풍경에 비해 펠라의 눈은 한없이 맑고 투명하다. 첫날과 둘째 날 까지는 우리 가족을 경계하고 우리 집 강아지 무늬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된 지금은 내게 배를 보이며 쓰다듬어 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주방에서 화장실로 내가 다니는 곳마다 바쁘게 쫓아다닌다. "왜 그래 펠라?" 하고 아는 척하면 괜히 신나서 삼각김밥 같은 짙은 검정의 세모 귀를 펄럭이며 방방 뛰어다닌다.  

폭신하고 보드라운 곳을 좋아하는 펠라

이렇게 빨리 마음을 활짝 열어준 펠라를 보면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짠하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구조되어 다시 사람과 살아야 하는 얄궂은 반려견의 운명. 늘 먼저 용기를 내주는 존재를 위해 내가 할 일이라곤 가만히 기다리고 지켜보다 아주 조금의 도움을 주는 일뿐이다.  


임시보호의 목적 중 하나는 앞으로 영원히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운명을 가진 강아지를 위한 인간학 오리엔테이션이다. 특히 펠라 같은 방치견, 유기견 등 태어나서 인간과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 일상의 사소한 면을 차분히 그리고 꾸준히 보여줘서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목욕도 스파도 드라이도 다 처음이었을 펠라

그런 의미에서 펠라는 매우 영특하다. 인간의 편의만 고려하여 조성된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강아지로서 살기에 쉽지 않을 텐데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하나씩 습득하고 있다. 이젠 거실에 있다 방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아도 놀라거나 짖지 않는다. 문 뒤에 공간이 있고 방금 들어간 사람이 좀 이따 똑같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다. 현관문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거나 우리가 나갈 수 있는 집 밖의 연결 공간이고, 주방은 맛있는 자신의 밥이 만들어지는 가장 좋은 곳, 서재방과 옷방은 내가 들어갈 수 없으니 궁금하긴 하지만 재미가 없는 곳으로 생각하나 보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자기 것도 아닌데 괜히 설레는 얼굴로 내 발밑 근처에 엎드려 있는다. 문득 내려다보면 엎드려 있는 펠라 몸이 만들어낸 작은 곡선이 사랑스럽다.


펠라가 배변패드에 배변을 하지 않으면 속상하다. 배변 교육 공부를 하며 어떠한 리액션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꾹꾹 참긴 하지만 조금 화도 난다. 요즘엔 이틀은 잘하다 하루는 실수한다. 임시보호를 많이 하는 베테랑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무언가 불편하거나 헷갈리는 상태일 테니 지정 장소에 배변을 하면 폭풍 칭찬을 해주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펠라로서는 참 황당하긴 할 듯하다. 하루 아침에 낯선 곳에 왔는데다 그것도 모자라 갑자기 왠 처음 보는 종이 쪼가리 같은 곳에 배변을 하라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10번 하면 7-8번은 패드에 완벽하게 성공한다. 내가 펠라였어도 그거보다 잘 했을리 없다. 그러니 이젠 속상해하지 말자.

너도 매일매일 조금씩 생각이 많지? 다 알아 펠라.

가장 기분이 좋은 건 펠라가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먹을 때 기쁘고 즐거워 보인다는 것이다. 반려견 무늬는 입이 짧고 음식도 많이 가려서 입양 초반에 엄청 애먹었고, 지금도 그런 편이다. 무늬가 먹는 간식도 가리지 않고 다 잘 받아 먹어서 함께 놀거나 짧은 교육을 할 때 함께 즐거워진다. 퍼피용 사료 1알만 있어도 앉고 일어나다니.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하루 2번 작고 예쁘고 반짝이는 갈색 조약돌 같은 변을 본다. 전에 임시보호 했던 달이는 변질이 좋지 않아서 우리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어서 속상했던 걸 생각하면, 펠라는 이것 조차 기특하고 대견하다. 반려 동물 가족이 있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우리집 반려동물이 잘 먹고 배변을 잘 하는 것만 해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펠라는 오늘도 조금씩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작은 노력을 쌓아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니 임보자여, 배변 패드에 오줌 좀 안 눈다고 일희일비 하지 말자. 펠라는 온 삶을 걸고 내게 온거니.



더 많은 펠라의 사진과 소식은 이 곳에서!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ella/

     

이전 04화 낮져밤이 강아지 펠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