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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Sep 24. 2022

임시 보호는 사랑을 싣고

펠라 임보 일기 6


펠라와 함께 산지 일주일이 조금 넘은 즈음, 우리 집에 처음으로 가족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왔다. 첫 방문자가 된 H는 내가 펠라를 임시 보호하기로 용기를 낸 데에 큰 역할을 한 친구들 중 하나였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강아지 임시 보호를 꾸준히 하고 있다. 경험이 많은 그에게 펠라의 거주 환경, 펠라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교육 방법에 대해 조언을 얻고 싶기도 했고 낯선 사람, 그렇지만 개에게 호의적이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펠라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기도 해 겸사겸사 집으로 불렀더니 역시나 흔쾌히 와 주었다. 

왼쪽부터 반려견 무늬, H의 반려견 마일로 그리고 쿠키

H는 나의 반려견 무늬와 비슷한 크기의 반려견 마일로, 펠라와 비슷한 크기의 반려견 쿠키를 반려하고 있다. 둘 다 H를 닮아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해 평소 개 친구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무늬와도 잘 놀아주곤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두 강아지도 함께 왔다. 무늬와 마일로, 쿠키는 몇 차례 만난 적 있었기에 연신 꼬리를 흔들고 서로 쫓거나 쫓기는 식으로 뛰어다녔다. 동시에 입을 크게 벌려 가까이 대며 서로의 입 크기를 확인하는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이 모든 상황이 낯설어 어리둥절해 하던 펠라는 H를 보며 뒷걸음질 쳤고, 내게 가까이 붙은 채 H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개의 습성을 잘 아는 H는 눈을 피하고 몸의 방향을 측면으로 틀었다. 서서히 거리를 좁혀 펠라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굽히고 앉아 펠라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펠라의 짖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H에게 흥미를 잃은 펠라는 뉴페이스 강아지인 마일로와 쿠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우리 집에 누군가 와서 처음엔 놀랐지만 두고 보니 모두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잘 해냈다. 펠라, 조금 느리지만 제법 똑똑한 녀석.     

우리집에 온 사람과 강아지 손님들을 본 펠라! 어리둥절해 

펠라를 보호 한 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H에게 물어볼 게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H는 펠라의 공간에 쳐 놓은 울타리를 보자마자 높이가 낮다며, 아마 펠라는 울타리 넘기를 놀이처럼 생각할거라 말했다. 정확했다. 펠라에게 울타리는 이미 이틀 만에 울타리가 아니라 뛰어넘기 재밌는 허들이 된 상태였으니. H와 강아지 친구들이 와도 별문제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펠라가 좀 더 큰 판단을 마친듯 했다. 얼마 안가 펠라는 H가 있는 곳으로 먼저 다가가 옷깃의 냄새를 맡고 꼬리를 살랑였다. H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목 아래 부분과 허리, 머리 순으로 펠라를 쓰다듬었다. 다른 친구를 쓰다듬어 주려 하자 펠라가 H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이렇게 귀여운 자신도 봐 달라는 듯 고개를 들어 깜찍하게 눈을 맞추며. 

작은 몸 안에 대형견의 영혼을 담고 있는 터프가이 쿠키 

H는 펠라가 처음 본 자신을 향해 짖은 건 위협을 하겠다는 의도보다, 오히려 겁이 많아서 경계하는 짖음으로 보인다고 했다. 원래 사람도 겁이 나면 주절주절 아무 말이나 하듯 겁쟁이 강아지들 역시 작은 소음이나 변화에 헛짖음으로 응수하는 경우가 많다. 펠라에게 생활 소음을 더 자주 들려줬어야 했나, 아니면 낯선 상황에 처해도 자신을 보호하는 든든한 보호자가 있다는 믿음을 아직 주지 못했나 싶었다. 마일로, 쿠키, 그리고 무늬는 다들 성견이라 그런지 부산하게 움직이는 퍼피 펠라가 조금 귀찮은 듯했지만, H의 반려견인 쿠키와 마일로는 임시보호 강아지와 동거를 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펠라를 금방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무리에 끼어주었다.     

상냥하고 착한 순딩이, 정마일로

H는 펠라도 펠라지만 반려견 무늬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이 날 친구들이 들어올 때부터 무늬의 기운이 우렁차긴 했다.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인 몸짓으로 친구들을 반겼고, 결이 잘 맞는 강아지 친구 1에게 먼저 장난을 걸어 함께 놀자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H는 무늬가 펠라와 함께 살며 강아지와 어울리는 방법을 견고히 익혀가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엔 진짜 그런가? 했다가, 나 역시 바로 뒤 강아지들이 함께 간식을 나눠 먹을 때 확연히 달라진 무늬의 모습을 발견했다. 원래의 무늬라면 간식을 받아먹기 위해 쪼르륵 모여있는 친구 무리와 거리를 두고는 뒤쪽을 배회하거나 멀찍이 서서 바라만 봤을 것이다. 안 먹어도 그만이라 듯한 쿨함으로 위장했으나 굉장히 간절한 눈빛을 발사해서 늘 안쓰럽고 애처로워 보이던 무늬였는데, 이 날 무늬는 처음으로 친구들과의 간식 먹기 경합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그리고 평화롭게 참여했다!     

나란히 누워있는 무늬와 마일로

며칠 전부터 펠라에게 앉아, 손, 기다려 등의 기초 교육을 하고 있었다. 그때 보니 펠라는 무늬가 하는 걸 보고 곧잘 따라 하는 듯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둘이 함께 교육을 했었는데 아마 그때 무늬는 친구와 함께 간식을 나눠먹는 게임은 무서운 게 아니라 재밌는 거라 깨달은 건 지도 모르겠다. 소심하고 조용한 무늬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H도 달라진 무늬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바로 임시보호의 순기능인가 봐요."

갈색 강아지 뒤에 쿠키 있어요. 모두 네 마리!


펠라 역시 새로운 면을 보여줬다. 강아지 넷이 우당탕탕 거리면서 노는데 펠라가 자꾸 무늬 뒤쪽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잠시 쉬는 듯할 때도 펠라와 무늬가 붙어서 앉거나 엎드려 있었다. 둘이 있을 때는 무늬가 펠라를 좀 귀찮아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곤 했는데 이 날은 둘이 세상 가까운 자매같이 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게 된 건가. 평소 자기 한 몸 챙기기도 버거운 겁쟁이 무늬가 이 날만큼은 작은 펠라의 든든한 언니 같아 보였다. 


펠라 손이 무늬 등에! 평소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우당탕탕 거리던 아이들도 가만히 두면 하나둘씩 편안한 자리를 찾아 잠을 자기 시작한다. H와 내가 너무 사랑하는 강아지들의 낮잠 타임이다. 널브러진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우리에게도 최고의 힐링 타임이다. 자고 있는 무늬 등에 펠라가 손을 뻗어 자고 있다. 우리 목소리에 깰 리 없지만 H에게 쟤네 보라며, 죽고 못 사는 자매 같이 군다고 나직이 속삭였다. 

마일로, 쿠키, 무늬 우정 뽀레버

사실 H를 알게 된 건 2년 전, 펠라처럼 동물 보호 단체를 통해 구조되었던 유기견 무늬의 임시보호자로써였다. 무늬를 임시보호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시작으로, 점차 서로의 반려견의 안위와 행복을 염려하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종종 만나다 보니 마음이 잘 맞았을뿐더러 사려 깊은 H를 닮은 H의 반려견들이 친구 사귀기에 서툰 무늬를 잘 품어주었다. 그 후 함께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도 다녀오고, 근교 여행도 다녀오며 인연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펠라를 임시보호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한 발 더 나아갔다. H의 독려와 응원 덕에 펠라를 맞이할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임시 보호가 만들어낸 선(善)의 연결고리 덕분에 요즘 펠라와 함께하면서 살며 가본 적 없는 따뜻한 감정에 가닿고 있다. 이렇게 임시 보호는 사랑을 싣고 우리의 삶에 더운 공기를 퍼뜨리고 있다. 임시 보호로 더욱 끈끈해진 나와 H, 우리 강아지들, 그리고 펠라 덕분에 우리들의 올해 가을과 겨울도 내내 따뜻할 것이다.



더 많은 펠라의 사진과 소식은 이 곳에서!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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