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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Oct 02. 2022

그 개는 우리에게 다 주고 갔잖아

펠라 임보 일기 8

이제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2021년 여름, 무늬의 입양을 도와준 동물 구조 단체의 인스타그램에서 한 아이를 봤다. 아이의 이름은 달이. 달이는 온몸에 보송보송한 검은 털이 나 있고 귀는 뾰족, 눈은 동그랗고 쳐진 게 볼 수록 순둥한 인상이었다. 이상하게 국내에선 검은 강아지는 인기가 없다. 단체에 연락을 해보니 역시나 달이는 자기보다 늦게 온 작고 하얀 친구들이 각자 임보처를 찾고 입양을 갈 동안 오래도록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마침 다른 지방에서 구조한 아이들이 한 차례 병원 신세를 질 예정이라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인지라, 단체 관계자는 달이를 언제 데려갈 수 있는지 물었다. 가족 행사 일정이 있어서 대략 사나흘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럼 여기저기 연락이 오고 있긴 하니 임시보호 여건이 되는 분 가운데 되도록 빨리 오실 수 있는 분께 달이를 보내신다고 했다. 

인스타에서 본 달이의 임시보호 공고

그렇게 잠시 달이를 잊었다. 


며칠이 지났다. 달이 글 내용이 임시 보호 완료로 변경되지 않고 있었다.  


'00님, 달이 잘 갔나요?'

'달이 아직 못 가고 병원에 있어요. 저희가 지금 구조한 아이들이 많아서 여력이 안나네요. 더 적극적으로 알아봐야 했는데.'

'어머 그렇군요.'

'병원 유리장 안이 좁고 답답할 텐데 애가 착해서 그런지 한 번 찡찡거리지도 않더라고요.'

'...'


재택근무 중이던 남편에게 대화 내용을 보여줬다. 그와 평소 임시 보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지라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동물병원에 가서 달이와 만났다. 8kg이라고 들었는데 장모견이라 그런지 6kg인 우리 집 반려견 무늬보다 제법 커 보였다. 무늬의 하네스 가동 범위를 최대로 늘려서 달이에게 씌우려 했다. 달이는 비협조적이라기보단 하네스와 리드줄이란 도구를 착용하는 게 어색한 듯 했다. 수의 테크니션 선생님이 달이의 다리를 잡아주셔서 겨우 입혔다. 병원과 집은 차로 10~15분 거리였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뒷자리의 카시트에 탄 달이는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리며 긴장감을 표현했다. 분홍 혀 끝에 맺힌 침이 적당히 묵직해질 때마다 리드미컬하게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우리는 임시보호 자체에도 서툴렀지만, 결정도 성급했다. 대충 예상은 했으나 무늬는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달이의 동작이 크거나 짖음이 크면 극도로 겁을 내며 몸을 떨었다. 방을 자신의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달이는 무늬를 보며 으르렁 거리기도 했다. 둘의 사이는 더 좋아질 수 없었다. 무늬는 달이가 있어도 못 본 척 무시했다. 

달이와 무늬 하나도 안 친함 ㅠㅠ

무늬와 달이의 합사는 실패로 결정했고 분리해서 생활하기로 했다. 달이는 무늬가 없을 때 거실에 나왔고 주로 방에 머물렀다. 그렇다고 달이는 불평하지 않았다. 우리가 방에 있으면 신나서 껑충거리며 뛰어다녔다. 방에서 나가면 아쉬워하다 이내 혼자 놀고 낮잠을 잤다.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배변도 잘 했다. 다정하고 똑똑한 아이었다. 

바둑돌 자매. 지만 쇼윈도 자매 ㅠㅠ 무늬가 달이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달이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에 제법 많은 문의가 왔다. 


'견종이 뭔가요? 스피츠 같은데 검은색이네요. 검정 스피츠도 있나요?'

'털 많이 빠지나요?'

'집에 아이가 있는데 무서워할까요?' 


진지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 반려견 커뮤니티에 임보 일기를 올리고, 그걸 복사해서 자주 쓰진 않지만 종종 끄적이는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다. 응원의 댓글은 달렸으나 입양하고 싶다는 종류의 글은 없었다. 포인 핸드 어플에도 올렸다. 귀여운 외모 덕에 글 조회수가 높았고 역시나 댓글로 격려와 응원을 많이 받았으나 달이를 가족으로 봐주는 분은 없었다.

옆테가 예술인 달이. 예쁘다 

달이는 종종 짖었다. 갑자기 생각난 듯 아무 때나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도 뜬금없이 짖었다. 혹시나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무서워서 그런가 싶어 유리에 신문을 붙여 줬다. 하지만 이유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달이 짖는 소리가 1층에서도 들릴 만큼 컸다. 달이가 야속하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도 거실로 나와 우리와 매 순간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무언가 문득 무서워져서였던지. 달이는 태어난 지 고작 8개월된, 1살도 안된 아가였으니까. 


남편과 나는 초조했다. 무늬에 비해 자주 짖는 달이가 부담스러웠다. 정이 들까봐라는 이유로 이미 우리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은 달이의 사랑과 애정을 쳐내려했다. 달이를 불편해하는 듯한 무늬가 집에서 편히 지내지 못하는 것 같아 예민해진 무늬에게도 미안했다. 

사랑해 달이야

하지만 우리는 달이가 너무 좋았다. 병원에서 데려올 때부터 온 몸에 힘을 풀고 쏙 안기는 두툼한 몸의 아이가 가진 묵직함이 좋았다. 금세 우리집 사람들을 잘 따르는 수더분한 성격과 구김살 없는 명랑함이 사랑스러웠다. 최고의 반려견이 될 준비가 된 아이었다. 모두에게 줄 사랑이 차고 넘치는 아이 달이. 하지만 달이의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지쳐보였다. 


입양 문의가 많지 않은 건 달이 네가 크고 검은 믹스견이라서 그래. 어느 새 나 역시 달이를 인기 없는 개로 재단하고 있었다. 그때쯤 단체에서도 국내 입양자가 없다면 해외도 슬슬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운을 띄웠다. 해외에도 달이를 사랑으로 품어줄 좋은 가족이 있을 수도 있었다. 겨우 자리 하나 내어주고 밥이나 챙겨주는 주제에 달이가 해외로 나가는 건 또 싫었다. 철딱서니 없이 까부는 달이가 좁은 켄넬에 실려 몇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으로 간다는 생각에 아이처럼 덜컥 겁이 났다. 


한 분이 계셨다. 달이와 똑 닮은 아기 강아지를 입양해서 늠름하고 젠틀한 성견으로 키워낸 가족들이 달이에게서 반려견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인다며, 달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고 하셨다. 두 번째 반려견 입양이라 아무래도 기존 반려견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라 했다. 

눈 마주치고 웃어주는 달이


그래서 만났다. 우린 달이를 데리고, 그분은 자신의 반려견을 데리고 늦은 밤 한적한 공원에서 만났다. 15kg 정도의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아이와 함께 오셨다. 그 아이의 어릴 적 사진을 보니 동배라고 말해도 믿었을 만큼 달이와 쏙 빼닮았다. 성격이 좋고 온순한 개여서 달이와 평행 산책을 하는데 오히려 처음 보는 달이를 행인들로부터 지켜주려 했다. 


산책은 평화로웠다. 딱히 별말씀이 없던 분께서 산책을 마치고 나서 말했다.

'저, 달이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

벤치에 앉아 계신 분께 달이를 안아서 무릎에 앉혔다.

'달이야, 너 우리 집 갈래? 아이고. 아가. 안 되겠다. 우리 집 가야겠다. 너'

   

단체를 통해 이미 먼저 반려견을 입양한 데다 물심양면으로 훌륭히 반려하시는 분이라 단체에서도 신뢰가 두터운 분이었다. 덕분에 입양 수속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기존 반려견과의 사이를 걱정했는데 두 아이의 짧은 산책에서 우려를 거둬내셨기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그분은 달이가 몇 kg인지, 배변을 가리는지, 짖는지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으셨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달이를 안아주신 것에서 나와 남편 역시 믿음이 생겼다. 분명 달이를 달이 그 자체로 품어주실, 그러므로 달이에게 가장 좋은 가족이 되실 분들이라는 걸. 

산책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아이. 달

함께 산책을 했던 공원에서 만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달이는 산책을 나온 줄 알고 신나게 걸었다. 달이의 짐이랄 것도 없었다. 혹 새 가족이 불편할 수도 있을 듯해 달이가 좋아하던 장난감이나 간식, 사료도 일부러 챙기지 않았다. 달이는 처음 왔을 때처럼 맨몸으로 떠났다. 리드 줄을 건넸다. 함께 걷는 줄 알았던 우리가 가만히 멈춰있자 달이는 동그란 눈으로 연신 뒤를 돌아봤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차 뒤로 숨었다. 차장 너머로 달이의 모습을 훔쳐봤다. 주춤주춤하는 듯 싶더니 이내 새로운 가족과 발걸음을 맞춰 신나게 걸어갔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달이가 종종 깨물어서 벗겨진 문지방 몰딩을 보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저 앉아 엉엉 울었다. 안도감과 미안함, 허탈함, 부끄러움, 후련함, 아쉬움과 같은 다양한 마음이 둥둥 떠다녀 머리를 어지럽혔다. 짧은 기간 달이는 매 순간 멈춤 없이 온 마음으로 애정을 다 쏟아놓고 갔다. 그래서 걘 그렇게 훨훨 날아갈 수 있었나 보다. 


상처 받지 않으려 마음을 아꼈던, 잔머리 쓰던 우리만이 미련 덩어리가 되어 달이를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지금은 최고로 훌륭한 가족의 품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달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달이를 마음 한켠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사랑한다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꼭 안아줄 것 같다. 옹졸했던 그 때의 작은 나도 함께 꺼내 그 땐 미안했다고 끝 없이 사과하며. 착한 달이는 분명 괜찮다고 하겠지만. 

달이야 영원히 널 사랑해
달이를 입양 보내고 나서 인스타에 올린 글.



인스타를 통해 보는 달이는 그야말로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애교 많은 막내딸로서 부족함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입양 간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잠시 쉴 곳을 내어준 정도의 노력 치고는 분에 넘치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임시 보호는 분명 준 것에 비해 받는 게 훨씬 많은 일인 것 같다.    


듬직한 오빠랑 막내동생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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