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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Oct 07. 2022

낯선 강아지와 함께 자기 어렵지 않아요?

펠라 임보 일기 9



[가족 구성원] 

남편, 나, 반려견 무늬, 임시보호견 펠라 


다음은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서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로 가깝게 누워 평화롭게 잠들기 위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보낸 한 달 간의 시간을 주별로 총 4번에 걸쳐 기록한 것이다. 과연 두 인간과 두 강아지는 한 자리에 누워 새근새근 평화롭게 잠들 수 있었을까?  (힌트, 네니오)






1주차) 그럼 우리가 여예요? 남이지. 


오랜만에 손님용 매트리스 토퍼를 꺼냈다. 우리 집에서 5개월 아기강아지 펠라와 함께 잘 수 있는 곳은 거실뿐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옥 같은 외양간을 벗어난 데다 사람과도 처음 살게 된 펠라. 세상 만물과 낯 가리는 중이었다. 밤이 되니 펠라는 작은 소리에도 놀랐다. 잘 모르는 소리니 일단 익숙한 자신의 목소리로 덮어버리려는 듯 더욱 맹렬하게 짖었다. 거실 한가운데 매트리스를 깔고 남편과 내가 누웠다. 뒤척거리며 나는 소리가 펠라를 자극할까 봐 처음 누운 자세 그대로 자야 했다. 펠라는 그런 우리가 가장 잘 보이는 소파 위에 자리를 잡고 우릴 내려다보며 잤다. 아니 자는 듯했다. 

낮엔 사이좋게 낮잠 자 놓고 밤에는 다른 강아지가 되는 펠라 그리고 무늬

결론부터 말하면 사이좋게 자는 건 실패였다. 일단 불을 끄고 누웠지만 왜인지 펠라가 흥이 나기 시작했다. 슈퍼 개복치 반려견 무늬가 다 함께 거실 취침의 최초 기권자가 되었다. 펠라의 파닥 거림이 신경 쓰여 영 잠들지 못하고 앉아서 고개도 겨우 돌릴까 말까 움직임을 최소화한 우리 부부를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무늬를 위해 남편과 하루씩 번갈아가며 무늬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가서 잤다. 침대에 누워 거실에 설치한 웹캠으로 어둠 속에 눈만 번쩍이며 빠르게 뛰어다니는 작은 움직임을 봤다. 밤이 되면 나타나는 슈퍼히어로 펠라. 형형한 광채가 가득한 눈을 보면 X맨의 사이클롭스 같았고 슉슉 효과음이 자동으로 지원될 듯한 빠른 속도를 보면 어벤저스의 퀵실버 같았다. 

까불다 지쳐 잠든 펠라(0살 6개월)

까불다가 조용해져서 '이제 자는 거니 펠라?' 싶으면 타박타박 발소리가 난다. 바라보니 현관 쪽 배변 패드로 가서 배변을 하고 있다. 조용히 일어나서 배변 패드를 새 걸로 바꿔주고 다시 눕는다. 정신이 맑아지고 겨우 온 잠이 다 달아난다. 새벽 1시. 나에겐 내일이 온 지 1시간이나 지났는데 펠라는 아직 어젯밤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게 아닌 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펠라와 우린 정말 남이구나 싶었다. 우리, 이대로 괜찮을까? 



2주차) 펠라는 확신의 야행성 


밤이 되면 펠라가 왕이다. 꼭 그렇지도 않지만 낮의 억눌러놨던 기운을 방출하듯 펠라는 광란의 밤을 보낸다. 거실과 연결된 주방의 끝까지 전속력으로 내달린다. 그곳에서 궁금했던 것들의 냄새를 꼼꼼히 맡는다. 그러다 작은 물건을 떨어뜨리기도 하면 깜짝 놀라는 듯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지 신나게 뛰어 반대편으로 뛰어간다. 가끔씩 다가와서 누워서 어쩔 줄 모르지만 의연한 척 중인 나와 남편 머리카락의 냄새를 맡는다. '꺅'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 축제에 와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나버린 아이 같다. 

누워만 있을 뿐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한 펠라

어느 날엔 어둠 속에서 자기 몸집만큼 커다랗고 바스락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 걸 물고 뜯고 있었다. '저게 뭐지?' 하고 어둠을 응시하니 익숙한 장난감이다. 펠라가 가지고 놀기 크고 시끄러워서 장난감함 안에 넣어둔 건데, 켄넬을 밟고 올라가 꺼낸 듯했다. 일어나서 다른 장난감을 줬다. 펠라가 무얼 하든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고 침착하게 행동하려 하다 보니 이럴 수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졌다. 12시가 넘었는데. 


여전히 남편과 교대로 침실에서 잤다. 내일이 있는 우릴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예민한 무늬를 위해서가 크다. 다행히 거실은 한창때의 에버랜드처럼 카니발 분위기이지만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침실에선 무늬가 거짓말처럼 숙면을 취한다. 아침에 방에서 나온 가족을 향해 펠라가 짖었다. 아마 놀라서 그런 것 같았다. 처음엔 너무 당황했지만 우리도 곧 요령이 생겼다. 알람을 맞춰둔 남편이 먼저 일어나서 전화를 한다. 거실에서 자는 사람은 펠라를 안아 올린다. 침실 문을 열고 무늬가 나오고 그 뒤로 사람이 나온다. 방과 방, 거실과 화장실 개념이 있을 리 없는 작은 펠라에게 막힌 공간인줄 알았던 곳이 열리는 데다, 심지어 그 곳에서 불쑥 누군가 나타나면 놀라는 게 당연할 듯 하다. 아무튼 그렇게 천천히 나오면 펠라가 한 두번 짖고 멈춘다. 

멈추지 말고 쓰다듬어라 인간

그래도 이젠 누워있는 우리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잔다. 더 가까이와도 되는데 손을 뻗어 겨우 만질 수 있는 정도의 위치. 그게 현재 우리와 펠라의 거리일까. 아침에 일어나서 함께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기분이 좋을 땐 가까이 다가와서 쓰다듬어 달라고도 한다. 펠라 식의 아침인사 인데 따뜻하고 다정하다. 가볍고 부드럽게 머리부터 등, 분홍색 배를 쓰다듬는다. 우리가 펠라의 촉감을 느끼며 서서히 익숙해지듯 펠라도 우리의 손길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어색함을 지워가겠지. 그렇지, 펠라?  



더 많은 펠라의 사진과 소식은 이 곳에서!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ella/


위액트 펠라의 입양 공고

http://weactkorea.org/base/adopt/adoptable.php?com_board_basic=read_form&com_board_idx=114&com_board_id=11




잘 자는 강아지로 변한 펠라?! 다음편에 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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