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 맞지?

펠라 임보 일기 11

by 홍지이


무늬는 거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 한 장 조차 밟지 않는다. 길에서 살아가며 배운 최고의 생존 스킬이 조심성인 듯하다. 최근 종이 가구에 관심이 생겨서 현관 옆에 놓은 작은 테이블을 종이 가구로 살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그걸 안 지인이 집에 무늬가 있는데 종이 가구가 얼마나 가겠냐 걱정했다. 이미 원목 책장, 흰색 몰딩, 각종 전선이 모두 다 살아남은 집이라 걱정 없었다. 역시나 무늬는 종이 가구 따위 관심 없었고, 혹여나 제 몸에 닿을까 가벼운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피해 다녔다.

IMG_6626.jpg 물론 밖에서 놀 때는 산적두목이 되기도 하는 깔끔쟁이 무늬

무늬는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이미 성견이었다. 유기견답게 몸보다 마음이 더 먼저 자란 어른 아이 었다. 엄마와 자매견이 함께 입소했다고 전해 듣긴 했지만, 셋이 어울려 다녔는지는 무늬가 말해주지 않는 한 영원히 알 수 없다. 입양 초기 무늬는 사람의 시그널은 당연하고 다른 강아지의 시그널도 잘 알지 못했다. 사회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다행히 입질과 짖음 같은 공격성이 없어서 산책 중 만나는 다른 사람과 강아지를 위협하지 않았다. 반려견 운동장에서 만난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당했지 먼저 공격을 한 적도 없었다. 무늬가 조금 더 편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사회성을 기르고자 1:1 강아지 클래스도 다녀보고 공부도 했다. 모두의 노력으로 무늬의 사회성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개나 사람과 발랄하게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무늬 원래 성격이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220912_185910 (1).jpg 펠라 도착! 시큰둥한 표정으로 뒤에 누워있는 무늬

슈퍼 대문자 I 무늬가 사는 집에 펠라가 왔다. 펠라는 외양간에서 태어나 함께 방치된 3-40여 마리의 개와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다. 시끌벅적한 그곳에서 다른 건 몰라도 강아지 간의 시그널을 파악해나갈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집에 왔을 때부터 펠라는 자기보다 2배나 크고 의젓한 무늬를 곧잘 따랐다. 무늬가 앉아, 엎드려, 손 등의 개인기를 하며 간식을 먹자 곧장 따라 했다. 무늬가 편히 쉬는 곳, 물 마시는 곳, 밥 먹는 곳을 꼭 함께 쓰려했다. 무늬는 소유욕이 없는 개라 사이좋게 공유했다. 무늬를 데리고 짧게 낮 산책을 다녀올 때 집에 남은 펠라가 안절부절못해했다. 나와 떨어져서 두려운가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늬와 떨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


산책을 할 때도 펠라는 무늬 곁에 찰싹 달라붙거나 무늬의 뒤꽁무니에 코가 닿을 듯 바짝 붙어서 따라 걷는다. 너무 붙어서 하마터면 무늬의 소변이 펠라 얼굴에 묻을뻔한 적도 있다. 그래도 좋다고 따라간다. 무늬는 오랫동안 단독으로 산책을 해온 아이라 그런지 그런 펠라를 조금 귀찮아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펠라는 혼자 산책할 때 자꾸 아파트 입구를 쳐다본다. 무늬 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걸까. 우리에게 마음을 주듯 무늬에게도 애정을 잔뜩 줘버린 이 작은 강아지의 마음에 우리가 자리해 있다니. 강아지들의 다정함엔 조건이 없어 자꾸 최선을 다해 보답하고 싶어 진다.

20221013_194337.jpg 장난치기 10초 전 표정. 무늬는 장꾸 표정 시작, 펠라는 평온함(1초 후에 바뀜)

조금 지나니 둘이 투닥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처음엔 간식을 먹기 전, 혹은 우리가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신나서 방방 뛰는 무늬를 보고 펠라가 따라 했다. 그런 펠라의 큰 움직임에 무늬가 움찔했다. 자신의 향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잠자는 시간, 매트리스 토퍼를 깔면 그 위에 올라와 신나게 뛰는 무늬를 보고 펠라가 또 따라 신나 했다. 우리는 신난 강아지 둘을 보며 엄마 아빠 미소를 지었는데 무늬는 '엥?' 하는 표정으로 자기처럼 뛰는 펠라를 쳐다봤다.

펠라가 신나서 까부는 무늬의 행동을 따라 하거나 동조하며 둘이 함께 까불기 시작했다. 둘이 함께 거실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다. 엉덩이는 든 채 상체만 낮춰 플레이 바우 자세를 취하거나 서로 입을 벌려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까불이 펠라가 팔딱거리면 무늬가 작게 '으르렁!' 거리기도 했는데, 신나서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책에서 보기도 했고 펠라가 별로 개의치 않아해서 그냥 두었다. 그러다 며칠 뒤엔 무늬의 으르렁에 펠라가 켕! 하는 소리로 응수했다. 무늬는 잠시 놀랐지만 더 크게 으르렁 거리다 웡! 하고 짖었다. 으르렁, 켕, 웡, 다시 으르렁이 반복되며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했다. 너희들 싸우는 거 아니니?


"얘들아, 그만해."


주로 소파 위에서 투닥거리는 두 아이 사이에 앉아서 아이들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마치 복싱 경기장의 심판처럼 엉켜있던 두 선수를 떼어놓고 흥분을 가라앉힌다. 노는 건가 싸우는 건가 확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헷갈리지 않게 비슷한 상황에서 일관되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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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찐형제 다운 진한 케미를 보여주는 쿠키와 마일로

"아, 저거 노는 거예요."

언젠가 투닥거리는 마일로와 쿠키를 보고 내가

"H야! 쟤네 쟤네.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다급히 말하자 평온한 목소리로 H가 한 말이 생각났다. H의 반려견 마일로와 쿠키는 어디서나 자주 투닥거리며 놀았다. 둘을 보고 나는 몇 번인가 "어? 쟤네!" 하고 외쳤다. 싸우나 싶어 개입해야 하지 않나? H를 보면 H는 늘 "저거 노는 거예요."라고 말하고, 가끔 놀이로 앙앙 깨물 거리다 실수로 세게 물어서 물린 아이가 화가 났거나 손짓 발짓의 강도가 심해서 맞는 아이가 아프지 않나 관찰하다 개입하면 된다고 했다.


펠라가 우리 집에 온 지 어언 한 달. 이젠 무늬와 펠라 둘만 두고 짧게 외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있을 땐 싸우는지 노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과격하게 투닥거리더니, 둘만 있을 땐 웹캠으로 보면 각자 편한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다. 요즘엔 둘이 다정하게 함께 하는 순간이 있다. 거실에 해가 가장 길게 들어오는 정오, 따뜻한 창가 소파 자리에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잔다. 환기를 할 때 찬바람이 들어와 추울까 봐 담요를 덮어주니 둘이 사이좋게 덮고 잔다. 둘이 포개져서 자는 모습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면 둘의 평화로운 무드가 깨질까 싶어 화장실도 가지 않고 꽤 오래 참기도 했다. '언니, 쟤는 왜 밤에도 자기 집에 안 가?'라고 묻는 듯한 얼굴로 펠라가 한 집에서 먹고 자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던 무늬도 펠라가 함께 사는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된 듯하다.

IMG_20221011_201818_683.jpg 개플룩 입으니 찐자매 바이브 느껴지나요?

임시보호를 할 때 임시 보호자와 임보견과의 관계 형성만큼 동거견과 임보견의 관계 또한 중요하다. 조용하고 독립적인 무늬가 펠라를 받아들여 준 건 온전히 두 아이의 다정한 성품 덕이다. 물론 보호자가 두 개 사이에 적절히 개입하고 조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같은 상황이라면 동일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개가 그릇된 행동을 할 때 섣불리 다가가 안거나 쓰다듬기, 혹은 이름을 부르는 리액션을 하면 개는 해당 행동을 잘해서 칭찬해준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욱 하고 화가 올라오려 할 때면 속으로 '나는 개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AI다.'라는 자기 암시를 건 적도 있다. 암시가 효과 있기보단 그렇게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어 픽 하고 웃음이 나와서 욱하던 마음이 잦아든다. 펠라가 좋은 가족을 찾을 때까지 무늬와 펠라가 다정한 친구가 되어 지금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관계로 지내길 바란다.

20221007_150401.jpg 이미 충분히 사랑스러운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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