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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Sep 19. 2022

낮져밤이 강아지 펠라

펠라 임보 일기 4

펠라가 오고부터는 남편, 나, 무늬, 펠라 모두 거실에서 함께 자게 되었다. 아무래도 침대가 낯선 펠라가 자다 침대 아래로 떨어지거나 우리에게 깔리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간 봐온 펠라는 낮에 비해 어둑어둑 해 질수록 활발해지는 아이였다. 벽과 지붕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해서 언제 쓰러졌어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던 허름한 외양간에서 태어나서 5개월을 보냈을 것이다. 어둠이 깔리면 작은 발자국 소리, 멀리서 비췄다 사라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작은 자극들 조차 온몸을 엄습해올 정도로 두려웠을지 모른다. 작은 몸을 친구에게 기대며 한껏 주변을 경계하느라 편히 잠들지 못했던 기억이 본능처럼 남아서 그런 걸까. 

내 자리는 어디인가요 강아지들?

둘째 날 밤 11시쯤이었나. 자기 위해 작은 무드등만 켜 놓은 어두운 거실에 다 함께 누웠다. 조금 뒤척이는 듯싶던 펠라가 갑자기 탄성이 높은 농구공이 튀는 것처럼 푱 하고 울타리를 넘어 튀어나왔다. 낮의 조용하고 얌전했던 모습과 달리 찾는 거라도 있는 듯 거실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며 잰걸음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랑 남편은 무슨 소리라도 내면 펠라를 자극할까 봐 꼼짝도 못 하고 누워서 눈빛만 교환한 채 무늬와 펠라의 눈치를 살폈다. 펠라는 강아지용 침대에 코를 박더니 두 앞발을 마구 교차하여 비벼대며 부스럭거렸다. 거실 소파에서 점프를 해 뛰어 내려와서는 우다다 달려 주방 끝까지 다녀왔다. 현관 앞에 있는 수납장에서 물티슈와 손 소속제를 건드려 보더니 떨어뜨리고는 소리에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무늬가 너무 놀라는 듯했고 다음날 남편이 출근을 해야 했기에 둘을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펠라는 그러거나 말거나 한참 하고 싶은 걸 다 하더니 새벽 1시가 넘어셔야 조용해졌다. 나는 잠들었지만 작은 소리에도 놀라 다시 깨서 펠라를 살펴보느라 아침에 일어났지만 거의 잠을 못 잔 듯 몸이 무거웠다.

나른한 강아지들. 평상시 낮의 바이브. 

셋째 날, 낮의 펠라는 얌전했다. 가끔 무늬와 놀다 무늬가 낮게 으르렁 거리면 놀라서 파드닥 거리며 뛰어다니긴 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켜봤다. 그런데 해가 지려하니 갑자기 가슴이 뛰고 어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음 한편에 '혹시 펠라가 오늘도 우리가 잘 때 까불고 업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싹트고 있었다. 남편과 그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지만 뭔가 뚜렷한 대처방법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의 상황을 봐줄 리 없는 밤은 제시간에 딱 맞게 찾아왔다. 잘 준비를 하느라 거실과 방,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데 화장실에서 거실로 나온 남편을 본 펠라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도 봤고 오늘도 봤고 저녁 시간도 함께 보냈는데 무서운 사람을 본 듯 경계성 짖음을 보였다. 그러더니 남편 가까이 와서 남편 다리 냄새를 맡고 낮게 짖다가 점차 멈췄다. 가슴이 또 세게 뛰었다. 늦은 시간에 강아지 짖는 소음으로 주변에 민폐를 끼친 것 때문에, 그리고 내가 펠라가 두려워하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무지에서 오는 막막함 때문에. 

왜그래 펠라야. 말해줘 제발 ㅠㅠ

넷째 날 밤이 왔다. 오늘은 생각보다 펠라의 텐션이 낮았다. 점점 배변도 잘 가려서 폭풍 칭찬을 해줬고, 무늬와 사이도 점차 좋아지는 듯 보여서 즐거운 저녁시간을 나눴다.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았다. 왠지 자신이 붙어 오늘 밤에는 펠라가 좀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자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펠라는 나란히 누운 우리 옆이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작게 달그락 거리며 야크츄(딱딱한 야크치즈 간식으로 이가 가려운 강아지가 씹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먹는 것)를 씹다가 조용해졌다. 살짝 보니 편히 누워 있었다.


작은 소음에 잠이 깼던가. 생각해보니 남편이 새벽에 축구를 본다고 했다. 작은 모니터로 소리를 줄이고 봤지만 옆에 누워 있어서 그런지 잠이 깬 모양이다. 무의식 중에도 펠라는? 하고 살피니 소파 아래 매트에 누워 있었다. 잠이 깬 김에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아뿔싸. 펠라가 왕왕 짖으며 화장실로 뛰어 왔다. 몽롱한 상태였다가 찬 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 2시였을까, 3시였을까. 몇 시인들 무슨 상관인가. 분명한 건 이웃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뭐지? 왜 그러는 거지? 펠라야, 언니야.라고 말했지만 펠라는 나 역시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을 하고 경계성 짖음을 이어갔다. 화장실에 다시 들어갔지만 펠라는 멈추지 않았다. 남편도 놀란 나머지 그냥 나와봐. 아니다 있어봐. 펠라야? 아니 어쩌지? 얘 왜 그러지?처럼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거실 불을 환하게 켰다. 화장실에서 천천히 나왔다. 놀란 무늬는 몸을 부르르 떨며 멀찍이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펠라는 내게 다가와 내 발밑에서 연신 짖었다. 옆걸음으로 걸어갔더니 종아리 냄새를 맡다가 짖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 점차 잦아들다가 멈췄다. 2-3분가량 되었던 것 같은 시간이지만 3시간보다 길었다. 손과 발에 땀이 잔뜩 나 있었다. 조심스럽게 다시 자려고 누웠고 펠라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편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펠라가 또 짖을까 물어보지 못했지만 남편도 오랫동안 다시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뭐가 문제야 쎄이 썸띵! 

거의 웬 종일 새벽의 짖음 사건이 트라우마처럼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배변 실수를 하거나 무언갈 물어뜯는 건 괜찮다. 하지만 밤에 짖는 건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로선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모든 게 펠라에게 달려있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섯째 날. 어제의 일이 꿈이었다는 듯 고요하고 평온한 밤이었다. 펠라는 내 곁에 누워 잠들고 밤새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닌 듯했지만 아침이 되니 다시 내 옆에 와 누웠다. 내가 몸을 뒤척이자 아는 척을 해달라는 듯 배를 보이며 기지개를 켰다. 살짝 손을 뻗어 배를 쓰다듬어 줬더니 기분 좋은 얼굴로 사랑스럽게 눈을 마주쳤다. 잠이 덜 깬 듯했지만 반짝이는 눈은 모처럼 푹 잔 아이의 눈처럼 맑고 투명해 보였다. 무늬와 남편도 우리가 부스럭 거리는 걸 느끼고 조용히 일어났다. 남편이 살짝 고개를 들어 펠라를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우리 넷 모두 숙면을 취했다. 다행히도 펠라가 외양간보다는 비와 바람을 잘 막아주는 우리 집과 여전히 못 미덥지만 그래도 친구들보다는 강해 보이는 남편, 나, 무늬가 조금은 든든하다고 느꼈나 보다. 

평온한 아침, 마침내 배를 허락한 낮져밤이 강아지

그렇게 우리는 다섯 번째 밤 만에야 눈을 감은 채 서로의 밤을 지켜주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진 않겠다. 펠라ㅎㅎㅎ)


똥꼬발랄 펠라의 일상

https://www.instagram.com/dearest_p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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