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타인을 좀 먹으며 그곳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다. '좀 먹는다'는 건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자꾸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하루 이틀 정신적으로 좀 먹히게 되면, 어느 날 영문 모를 이유로 피폐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처음엔 괴롭힘인 줄도 몰랐다. 팀장이니까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지적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팀장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매일 14시간 이상 근무를 해도 나는 내 일을 잘하고 싶었다.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파트장으로 승진을 했고 나의 능력을 믿어준 회사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왜 이렇게 했냐'라는 말도 안 되는 피드백이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광고대행사였기 때문에 최종 컨펌은 브랜드에서 하는 것이었음에도, 팀장의 승인이 나지 않아 일이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속절없는 야근이 반복될 때쯤, 자정이 넘은 시각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엄마와 크게 다투었다. 나올 필요 없는데 왜 나왔냐고 화를 냈다. 밤늦게까지 딸을 기다린 엄마에게 나는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을 했다. 하지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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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건이 터졌다. 코로나 시기라 재택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실장은 지금 당장 회사로 출근하라고 말했다. 집에서 광화문까지 가려면 2시간이 넘는 거리라,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회사를 향했다. 실장은 내 밑에 있던 친구들과 나를 모두 부르더니,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하냐는 식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대화의 요지는 내 밑에 친구들이 일할 때 실수가 많아 팀장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나보고 팀장에게 사과를 하고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했다. 장담컨대, 내가 맡은 팀은 브랜드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고, 일정을 맞추지 못한 적도 없다. 그런데 멀리 사는 친구들까지 갑자기 출근시키더니 실장이 하는 말이라곤 고작 '팀장이 힘들다잖아'라니, 기가 찼다.
나는 '제가 책임지고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회사를 다닌 지 9개월도 안 되었을 때였다. 뒤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그 회사에, 그 인간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바로 다음 날 퇴사를 했고, 브랜드 대리님한테 연락을 했다. 왜 갑자기 퇴사를 하냐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렸다. 나는 내가 수주해온 브랜드였고 적어도 12월까지는 책임을 지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퇴사를 하고도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팀장과 실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맡았던 브랜드 담당자는 9번이 바뀌었다. 내가 했던 일을 만만하게 봤던 회사의 착오였다. 다행히 나는 바로 이직하여 1년이 되지 않은 경력으로 인한 피해는 보지 않았다.
회사에 누군가 당신을 좀 먹고 있다면,
만약 이미 그 정도를 지나쳤다면, 그곳을 떠나라.
절대 같은 공간에 있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겨냈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문득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혀 온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처럼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