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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작가 Apr 01. 2021

일단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큰다구요?

결국 책임은 우리 몫이잖아요

결혼한지 2년이 지났는데도 아기 소식이 없으니 양가부모님께서는 슬슬 애가 타신 듯 하다. 특히 친정부모님께서는 손주가 빨리 보고싶어 결혼도 일찍 하길 바라셨으니. 결혼 후 찾아뵐 때마다 아기는 언제쯤 가질건지 물으시다 1년, 1년 반이 지나니 도대체 아기를 언제 가지려고 하냐며 답답해하시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혼하고 지방으로 내려와 지내느라 자주 뵙지 못했을 뿐더러 부모님께서도 세 번 묻고 싶으신 걸 애써 한 번 말씀하시는 게 느껴져 우리도 스트레스랄 것 없이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동갑 부부인 우리는 27살에 결혼했으니 기왕 일찍 결혼 한 거 서른 살을 넘어 출산하고 싶진 않았고, 서른 살 쯤 남편 이직의 시기도 있을테고 나 또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시작해야 하니 도대체 어느 시기에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다 서른 살이 점점 가까워져오니 진지한 고민으로 와닿았다.


손주 소식을 기다리시는 어른들과 이야기하며 이런 고민에 대해 꺼내놓았다. 아이를 키우려면 지출도 늘어날텐데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됐다 싶을 때 아기를 가져야 하는 거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우선적이었다. 일반적인 상황과는 달리 몇년 후에 있을 이직의 시기를 대비해 저축의 비중을 크게 잡고 있었고, 바로 이직이 가능한 분야가 아니라 1년 정도는 수입보다 이직을 위한 교육에 힘 써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시기에 아기가 있다면 너무 불안정하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계획적으로 미래를 그리고 그 계획대로 진행해오던 우리의 청사진에 아기에 대한 계획까지는 차마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이후 고민들은 앞에 이야기한 고민에 따른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남편의 교육 및 이직 시기에 내가 경제활동을 해야하는데 아기가 있다면 그 아기는 누구의 양육을 받아야 하는가. 내가 경제활동과 육아를 온전히 다 맡아서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내가 경제활동을 한다면 남편이 육아와 병행하며 이직 준비를 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일정하지 않은 시간에 외부에 나가 있어야 하니 결국 아기를 주로 맡아 양육할 대상의 부재가 발생한다. 


남편은 지방에서 지내야 했기에 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이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수도권으로 올라와 주말부부로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잇따른다. 유아교육 전공자로서 내 아기의 영유아 시절은 꼭 엄마가 함께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주말부부도 원치 않았고, 육아도 직접 하고 싶었는데 상황상 포기하고 감당해야 하는 부분들을 애써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은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남편은 혼자 지방에서 지내고 나는 수도권에서 육아와 경제활동을 병행하며 책임감이 배가 되어야 했기에.


유아교육 관련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시 돌아가야 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해야할 지, 거주지는 어디에 잡아야 하는지, 어른들께서 과연 아기를 봐주실 수 있는건지, 그렇다면 어느 집이든 부모님댁에 얹혀 지내야 하는지 등의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우리는 늘 고민하고 앞이 캄캄해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는데 어른들께서는 큰 일이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일단 낳아놓고 보면 애들은 알아서 어떻게든 큰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물론 상황이 닥치면 결국 해나가게 되어 있고, 나 역시 그런 마인드로 여태껏 지내왔지만 육아에 대해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않나 싶다.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좀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일텐데 단순히 '일단 낳아놓고 보자'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조금도 와닿지 못했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쭉 해나갈 상황이라면 마음이 내킬 때 아기를 가지면 되겠지만 우리는 많은 변수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더 어렵지 않았나 싶다. 아기야 물론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하루하루 스스로 성장해나가겠지만 결국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져야 하는 거 아닌가! 수 많은 고민들 속에 얽혀있는데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앞이 그려지지 않는데 어떻게 '일단' 낳아놓고 보란 말인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을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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